차별과 통제, 불법과 이기주의 심화 가능성 커...
복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교회의 참 역할 넓혀가야 할 때 (마 18 :20, 롬8:28)
코로나19 사태가 인류에게 알린 것은 코로나19 펜더믹이 아니다. 전염병 대유행 시대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사람들은 코로나 블루(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바이러스 감염과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크게 나누면 전염력이 강하지만 치명률이 낮거나 치명률이 높으면 전염력이 낮은 두 종류로 대별된다. 코로나19는 전자에 속한다. 치명률이 가장 높은 80세 이상 노인의 경우 24.79%로 여전히 높지만 확진자 중 사망 비율 평균은 3.9%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치명률이 90%까지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다. 그래서 그나마 감염병 창궐 시대를 이겨내며 삶을 영위하는 틈이 되고 있다.
앞으로 더 암울한 상황이 될 가능성은 있다. 코로나19 가 대유행하고 있는 사이에 또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중복해서 창궐할 가능성이다. 또다른 가능성은 지금까진 전염력과 치명률 중 하나만 위협적이었지만 앞으로는 전염력도 강하고 치명율도 강한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에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 유행을 ‘질병 X’로 명명하며 경고한 바 있다. 어떤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지 모르는 ‘질병 X’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실제로 바이러스의 유행 주기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까지는 대략 6년 안팎의 간격이 있었다. 그런데 메르스 발생 5년도 안 돼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등장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X의 발생 주기가 갈수록 짧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바이러스 감염병 유행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삶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가 이끌었던 지구촌화, 도시화, 금융화의 틀을 ‘질병 X’ 시대가 무너뜨리고 있다. 세계의 대변혁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세계는 지구촌화가 아닌 개별화로 변하고, 도시화가 아닌 탈도시화가 심화되고 있다. 생산력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산업의 동력이 되고, 국가 간, 개인 간 차별화가 심화되어 지금보다 더 심각한 빈부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코로나 사태 후 식량의 불균형으로 인한 세계적인 기근을 경고했다. 정부들은 불확실성과 싸우기 위해 더욱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실제 겪고 있듯이 코로나19 사태 후의 세상은 기본 인권이 도전받고 정부의 물리력이 동원되는 더 강력하고 통제된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 간, 개인 간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 경쟁이 심화되고 명예나 정의보다 내가 먼저 살고 보자는 이기심과 불법이 성행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모습은 더이상 세계의 모범이 아니다. 대내적으론 차별이 심화되고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인권은 철저히 무시될 만큼 통제는 강화되고 있다. 대외적으론 국가우선주의의 선봉에 선 결과 그동안 미국이 가졌던 세계 국가 리더십은 회복불능상태에 이르렀다. 앞으로 자국 우선주의와 사람들의 이기주의는 전염병 그 자체보다 더 큰 삶의 고난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0,12)”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사역하는 교회는 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이 시대에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 나갈까.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교회는 반드시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의 교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가장 먼저 교회가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로 현장예배가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재정 문제가 가장 크게 부각됐다. 지금까지 많은 교회가 성도 수에 집착했던 것의 상당한 이유가 교회 재정에 있었다는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프레임을 바꾸면 새 관점이 보인다. 코로나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이 땅의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마찬가지로 현장예배가 없다고 해서 참 신앙이, 또는 산 예배가 없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는 온갖 환란과 핍박과 힘든 여건 속에서도 예배를 지키고 신앙을 유지하는 참 신앙인들이 걸러지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교회를 외형이 아닌 내면에 초점을 맞추므로 반석 위에 우뚝 서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은 반석 위 기초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동안 교회가 비판받았던 성장제일주의와 세속화의 때를 벗어내고 교회와 기독교 복음의 본질에 충실한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예배는 어떤 형태로든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현장예배를 유지하되 온라인 예배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시공간의 제한 없이 어느 곳에서나 예배 처소가 되어 진정한 산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고 세상의 누구나 복음을 접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교회란 유형의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예배의 본질에 기반하여 코로나를 계기로 다양한 예배 형태가 모색되어야 한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성찰과 복음의 본질을 회복한 교회가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선교적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다. 감염병 시대에 차별과 경쟁, 통제가 심화되고 이기주의가 편만 할수록 개인의 상처와 소외 현상은 더욱 극심해 질 것이다. 대열에서 낙오하거나 고립된 자들과 염세주의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본질을 회복한 건강한 교회로서 이들에게 역할을 해야 한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막 2:17).”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란 믿음, 소망, 사랑의 복음의 본질을 알리고 그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교회는 교회의 사명과 역할이 더 극명해지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와 공감하는 따뜻한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
코로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그동안 방만이나 일탈이 삶의 진지성을 잃게 했다면 코로나는 다시 한번 건강하고 정상적인 삶의 태도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과 동떨어진 먼데 이상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과 동질성을 공유하므로 더 친근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폭을 넓히고, 이에 더해 현세의 축복이 아닌 내세의 소망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