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교안보 위기 심화 … 미래 한국 열기 위해선 냉전외교의 틀 벗어나 다원외교무대로 나아가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정부의 합동조사요구에 북한은 우발사고라며 불응하고 있다. 관광객이 관할지역에서 불미한 사고를 당했다면 잘잘못을 떠나 일단 합동조사에 응하는 것이 순리다. 오히려 북한은 3일 금강산 지역의 남측인원추방담화를 발표하므로써 남북 경색의 벽은 더 높아가고 있다. 이같은 초강수는 남북이 지난달 24일 아세안안보포럼(ARF)에서 금강산사건과 10·4 정상선언 문제를 놓고 충돌한 뒤의 연장선에 있다.
정부는 ARF에서 국제공조를 얻어 북한에 합동조사수용을 압박하려고 했다. 그러나 ARF 의장성명에 한국이 제기한 금강산문제 외에 북한의 로비로 ‘10·4 정상선언 이행’ 문제가 나란히 실렸고, 당황한 우리측이 수정을 요구하자 의장국인 싱가포르가 형평에 어긋난다며 두 문제를 의장성명에서 아예 삭제해버렸다. 한국의 외교력이 이제 막 테러지원국에서 벗어나려는 북한보다 못하다는 국내의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망신만 당한 채 무위로 끝나버린 정부의 국제공조시도는 오히려 남북대결국면과 북한의 주장을 강화할 기회만 제공한 셈이 되었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나. 우리나라의 외교가 남북대결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냉전외교의 틀에 갖혀 4강 외교만 중시하다보니 같은 아세안 국가들로부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
4강 당사자국들은 어떤가. 지난 5월 27일 한중정상이 만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천명한 같은 날 중국 외교부는 “한미동맹은 냉전시대 군사동맹”이라고 맹비난했다. 차별성을 강조하려던 정부의 성급한 한미복원시도가 오히려 주변국에 외교적 편향성을 부각시켜 한중 관계에 찬바람이 부는 원인이 되었다. 먼저 4월 21일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래지향적 한일 신시대를 선포했지만 일본은 7월 14일 일본교과서 해설서에 독도영유권명기를 강행하므로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4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간과한 쇠고기졸속협상은 국가적 난국마저 초래했다. 4강외교의 단기성과에 집착한 한국외교가 오히려 역이용당할 틈새를 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국제관계에서 무시당하는 이유는 남북관계의 경색에 큰 원인이 있다. 형제끼리 다투는 집안을 얕보지 않을 이웃은 없다.
남북한이 서로를 고립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있는 사이 미국.일본.중국은 제각각 북한과 실리외교를 강화하고 6자회담의 응집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일본은 약화된 한국의 고립국면을 틈타 독도도발을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한일간 독도분쟁이 커지는 것이 일본이 실효지배중인 센카쿠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해온 자국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은 아직 말뿐인 “독도 수호”를 외치고 있다. 독도 관련법 개정안 3개와 결의안 1개가 아직 국회정상화가 미뤄지는 가운데 낮잠을 자고 있다.
오늘날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속에서 약소국 한국의 살길은 무엇인가. 우리의 약점을 강점으로 살릴 길은 어디에 있나
첫째, 중재국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카타르는 인구 80만의 작은 토호국이지만 중동 분쟁의 중재 ‘대국’으로 각광받고 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에 먹구름이 닥쳤을때 한국은 6자회담내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윤활유역할을 하므로써 6자회담을 북핵 사태를 관리하는 효율적인 다자 틀로 정착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남북 공조는 한국의 영향력을 키우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중재자로 나서는 길이다. 중재의 표본은 예수님이셨다(딤전 2:5). 그는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가 되셨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너희에게..평안을 전하셨으니”(엡 2:16,17)
둘째, 환상을 버리고 실사구시로 임해야 한다.
국토면적이 서울 면적과 비슷한 약소국 중 약소국 싱가포르가 오늘날 세계 국가들 위에 우뚝 설수 있었던 것은 일찌기 주변 강대국들 틈새에서 생존하는 철칙으로 ‘환상 버리기’ 원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변 국가들이 우리가 원하는 조치를 취해 줄 것이란 착각이나 환상을 대외정책에서 배제하고 철저히 ‘실상’의 기조위에서 실사구시를 추구했다. 세계를 향해 문호를 활짝 열어놓았을 뿐 아니라 서로 적대관계인 중국과 대만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적극적인 우호외교를 펼치므로써 번영의 원동력을 삼았다. 한국의 4강 외교에서처럼 막연한 기대를 우선한다면 실제로 얻는 것 없는 쇠고기 파동, 독도도발 같은 위기를 다시 부를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환상이 아니었다. 좌나 우의 흑백논리나 명분에 멎었던 바리새인들의 탁상공론과 같지 않았다. 실상의 가장 가까이에 다가가셔서 각자의 처지에 맞는 처방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되시므로 어떤 권세보다 힘이 있었던 실사구시의 삶이었다.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라”(마 7:29)
세째,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해야 한다.
스위스의 안정은 세계의 돈과 기업을 끌어들여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성공도 따라왔다. 한국은 여전히 남북 분단의 한반도라는 약 하디 약한 지반위에 서 있다. 안정이 흔들리고 평화가 깨지면 애써 지은 집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다. 안정이 있은 다음에 미래도 있고 경제살리기도 있을 수 있다. 남북 대결국면이 고조되면 될수록 우리의 외교는 냉전의 틀에 갖혀 스스로 소모적 외교에 국력을 소진하고 자충수를 두게 될 수밖에 없다. 군사로 맞선 에서를 감동시킨 힘은 죽기를 각오한 야곱의 형제애였다(창 33:3-12).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그동안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형제에게 증거하므로 평화를 찾아야 한다.
반쪽으로 시작한 건국 60년은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은 민족의 숙제를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길을 가야만 한다. 지금까지 돈을 위해, 먹고 살기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면 이젠 그때문에 소홀히 하고 잃어버렸던 새 목표를 설정하자. 우리에겐 아직 오랜 이산의 지친 손을 부여잡고 한 울타리를 틀기 위해 기다려야할 형제가 있다. 평화와 안정을 우리 손으로 일궈야 하고 반쪽만 이뤄진 미완의 해방, 미완의 건국을 우리 힘으로 완성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민족 공영의 대의를 위해 가장 우선순위에 둘 국가 목표며 가치가 되어야 한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