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주년 기념 복음신문 개편의 3개 축 …모두가 듣는 복음의 소식지 될 것(롬 10:14~15, 딤후 4:2, 마 5:14~16, 합 2:2, 시 119:105)
66주년 기념 복음신문 개편의 3개 축 …모두가 듣는 복음의 소식지 될 것(롬 10:14~15, 딤후 4:2, 마 5:14~16, 합 2:2, 시 119:105)
복음신문이 66주년을 맞아 새로운 진화를 모색한다. 복음신문 66주년은 자랑이 아닌 감사이다. 업적이 아닌 사명 감당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다. 인간의 계산이나 잇속을 바랬다면 지금의 복음신문 66주년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들을 회상만 해선 안될 시점이다. 미래를 위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변화란 다른 것이 아니다. 뜨거움을 되찾는 것이다. 잠을 안 자도 될 만큼 사명감으로 불타 올랐던 창간 당시가 그랬다. 창간의 목표는 분명했다. 복음신문이 66주년을 맞아 새로운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창간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고 나운몽 목사는 복음신문 창간 당시 매우 분명한 말을 남겼다. “세상 소식을 전하는 신문은 많아도 하늘 소식을 전하는 신문은 없다.” 이 말은 복음신문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처음부터 복음신문은 세상과 담을 쌓은 신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되 성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신문이었다. 시대의 사건을 외면하지 않고 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신문이었다. 따라서 복음신문의 전도는 단순히 종교적인 문장을 반복하는 데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쟁과 가난, 나라와 민족, 교육과 농촌, 청년과 다음세대, 사회의 변화와 미래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복음의 길을 찾는 것이었다. 그것이 복음신문의 전도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그렇다. 오늘 사람들은 신문을 통해 세상을 배우기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만난다.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와 영상, 짧은 콘텐츠가 쏟아진다. 사람들은 교회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세상이 무엇을 말하는지 먼저 접한다. 그렇다면 복음신문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시대의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질문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아파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이것이 66주년 복음신문이 다시 확인하는 창간정신이다. 이 맥락에서 복음신문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변화를 추진한다.
첫째, 온라인 뉴스를 활성화한다. 실시간 뉴스와 현장 중심의 기독교 종합언론으로 분명한 방향을 설정한다. 66주년을 맞아 복음신문은 온라인 뉴스의 역할을 대폭 강화한다. 온라인은 단순히 종이신문의 기사를 옮겨 싣는 공간이 아니다. 오늘의 교계 현장을 오늘 전달하는 실시간 기독교 종합 뉴스 공간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의 교단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 루터교, 성공회 등 다양한 교단과 교파가 함께 한국교회를 이루고 있다. 복음신문은 창간정신에 따라 특정 교단의 이해를 넘어 초교파적 시각으로 한국교회의 전체 모습을 담는 언론이 되고자 한다. 또한 지역교회와 작은 교회의 이야기, 선교현장의 소식, 다음세대 사역, 기독교 교육, 사회봉사와 나눔, 해외선교 등 한국교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다. 또한 교회 안의 뉴스만 바라보지 않는다. 저출생과 고령화, 청년 문제, 교육, 가족, 돌봄, 인공지능, 과학기술, 환경, 노동, 이주민, 지역소멸 등 오늘의 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다룬다.
왜 기독교 언론이 이런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가. 복음은 교회 건물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 복음의 가치가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복음신문의 온라인 뉴스는 세상의 뉴스를 교회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그 현실을 성경의 가치로 성찰하는 언론을 지향한다. 빠르게 전하되 가볍게 다루지 않고, 현장을 전하되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며, 사실을 전하되 그 의미를 함께 묻는 언론이 될 것이다.
둘째, 인쇄 지면을 개편한다. 칼럼 중심에서 뉴스·기획·특집 중심으로 본연의 기록의 가치를 회복한다. 온라인이 속도와 현장성을 담당한다면 인쇄신문은 깊이와 기록의 역할을 강화한다. 그동안 복음신문 지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칼럼과 신앙적 글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오늘의 독자에게 충분하지 않다. 66주년을 계기로 지면을 뉴스·기획·특집·현장·오피니언이 조화를 이루는 기독교 종합신문으로 확대한다. 교계의 주요 사건을 충실하게 취재하고, 중요한 이슈는 여러 차례에 걸쳐 깊이 있게 분석하며, 한국교회의 미래를 좌우할 문제는 기획특집으로 다룬다. 또한 교회가 바라보아야 할 사회의 문제를 취재하고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는다.
무엇보다 사람을 중심에 놓는다. 목회자뿐 아니라 평신도, 청년, 어린이, 선교사, 교회학교 교사,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교회와 사회의 현재를 기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면은 단순한 교계 소식지가 아니라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한 시대를 기록하는 기독교 종합신문이 될 것이다.
셋째, 전도지로서 창간정신을 회복한다. ‘우리끼리 보는 신문’에서 세상이 읽는 신문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세 가지 개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복음신문은 다시 전도신문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기사를 종교적인 이야기로 채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세상의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어야 한다. 왜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가. 왜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왜 노인들의 고독이 심각해지고 있는가. 왜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는가. AI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지역은 왜 사라지고 있는가. 우리 사회의 갈등은 왜 깊어지고 있는가. 다음세대는 왜 교회를 떠나는가. 이러한 질문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성경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문서전도다. 과거의 문서전도는 종이 한 장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동시에 뉴스를 만날 수 있다. 도구가 달라졌을 뿐이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고전 9:22~23)” 문서로 복음을 전한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온라인 뉴스의 활성화는 복음신문의 전도정신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신을 오늘의 시대에 맞게 확장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주의 말씀을 푯대로 나아가는 “성경으로 과거를 해명하고, 현실을 인도하고, 미래를 예언한다”는 복음신문의 사시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이 세 문장은 복음신문이 무엇을 보도하고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과거를 기록하되 말씀을 통해 오늘에 필요한 교훈을 배우고, 현실을 다루되 성경의 가치로 방향을 찾으며, 미래를 바라보되 인간의 욕망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소망을 발견한다. 이것이 복음신문이 말하는 ‘시대 속의 복음’이다. 말씀은 시대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새겨야 할 사람들의 환경은 바뀐다. 따라서 말씀의 진리를 시대에 맞게 설명하고 적용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진다.
66주년을 맞은 복음신문은 바로 그 일을 다시 시작한다. 전도의 사명으로 무장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와 신앙인의 모습과 사명을 생각케 하는 신문이 될 것이다. 66년전 복음을 싣고 기차를 따라 전국으로 달려갔던 그 복음을 온라인을 타고 더 빠르게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오늘의 사람들이 듣고 읽을 수 있도록 전하기 위해서다. 이 일에 함께 공유하는 신앙인들과 독자제현의 응원이 큰 힘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