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루신 기적의 증거가 된 한국 …
앞으로 우리 민족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제국주의가 절정에 이른 1907년 세계평화유지책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세계 44개국 대표가 모였다.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것이다. 한국은 초대장조차 받지 못했다. 잔악한 일본의 위협 앞에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한국은 그 누구보다 이자리에 가야 했다. 고종 황제는 밀서를 들려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파견했다. 그러나 이들은 회의장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이준은 울분을 못이겨 병을 얻어 헤이그의 한 숙소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1905년 일본은 미국, 영국, 러시아와 가쓰라-태프트 밀약, 2차 영일동맹, 포츠머스조약을 차례로 맺고 한국에 대한 강제합병을 인정받은 상황이었다. 나라를 빼앗기는 절체정명의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이 하소연할 데는 없었다.
1945년 미국·영국·소련 정상들은 얄타에 모여 2차 세계대전의 종전후 패전국 처리와 광복을 맞은 민족에 대한 관리·총선 방법 등에 대해 협의했다(얄타회담). 65년 전 우리 민족의 운명이 주요국들에 의해 결정되야 했다. 이후 자립의 역량을 키우기도 전에 냉전의 희생물이 된 한국은 동족상잔의 전쟁에 휘말렸다.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 연합군과 중국·북한은 비밀접촉을 거쳐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맺었다. 한국은 전쟁의 당사자였지만 이 협정에서도 제외돼 있었다. 불과 57년 전이었다.
10일전 한국의 대통령이 G20 회담장에 가장 먼저 서서 연이어 들어오는 세계 주요 정상을 차례차례 맞이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며 웃고 울었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회의체인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 언제 이렇게 많은 세계 정상들이 한반도에 모여 세계의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는가. 게다가 강대국들끼리 만든 약속과 규칙에 따라가야만 했던 나라가 강대국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규칙을 새로 만드는 주역이 됐다. 40년간 나라를 빼앗겼던 국민이 이렇게 부활한 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다. 1960∼2008년 세계경제는 평균 5.8배 성장했다. 그 사이 한국경제는 28배나 컸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참으로 작은 나라, G20 중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에 일어난 기적이 세계에 드러난 현장이었다.
G20 정상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온 외신기자들만 2천명을 넘었다. 이들이 타전한 수천여개의 기사가 세계 각국의 방송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세계 언론들은 “한국을 다시보자”며 연일 한국의 눈부신 성장을 집중 조명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10일 “한국이 글로벌 플레이어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하면서 “시골의 농부와 제주의 어부까지도 조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한국이 G20의 불꽃으로 타오르다’는 제목의 1면 톱기사를 통해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뿐 아니라 OECD 회원국 중 처음으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지는 “40년간 가난의 굴레를 벗은 한국이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고 소개했다. 한국에 대해 비판적 시각에 있던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1일 ‘G20과 한국’이란 제목으로 12개면을 통털어 별도의 특집판을 냈다. 필링 편집인은 특집판 사설을 통해 “한국이 구 세력과 신흥국 사이의 자연스런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이제 막 세계 서열에서 변화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무엇이 오늘날 한국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을까. 불과 50~60년 전, 폐허가 된 땅엔 아무것도 없었다. 일제의 잔인한 탄압에 신음하고, 다시 동족간의 전쟁으로 찢어진 민족의 가슴엔 깊은 상처만 남았다. 국제 원조 없이는 살 수 없던 나라의 참상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빈국’의 이미지가 전 세계인의 뇌리에 박혔다. ‘한국’이라면 한단계 접고 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지금껏 한국인을 따라다녔다.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7)
한국민은 가난과 아픔, 약소민으로 겪는 멸시와 천대를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더 이상 낮아질 데가 없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아들일 토양이 됐다. 6.25동란 이후 한국 땅에서 기독교가 세계 유례없이 성장한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8,29)
‘복음’은 우리 민족의 소망이 됐다. ‘비천한 자’의 처지에서 감격해 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 먹을것이 없는 찢어진 가난에도, 가족을 잃은 극한 슬픔에도 ‘복음’은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고, 소망이 됐다.
겸손한 곳에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 민족을 낮출 대로 낮추신 하나님이 드디어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50~60년대 한국강토를 휩쓴 성령운동 뒤에 70~80년대 급속한 교회성장이 뒤따랐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하나님을 의지한 민족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 19:5)
아직 세계 경제엔 수많은 갈등과 위협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경제권력의 분화, 보호무역, 자원고갈, 환경파괴 등 수많은 도전앞에 이해관계가 첨예화되고 있다. 선진국 부진-신흥국 도약이라는 불균형 성장구조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판로가 막힌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가 찾아올 수도 있다. 세계가 한마음으로 ‘국제공조’와 ‘동반성장’의 길에 나서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다. 세계 현실은 한국에도 도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 내부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사회부조리, 정치싸움, 내수취약, 출산저하, 이념 갈등, 북한위협 등 전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많은 외신이 한국을 극찬한 가운데서도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매서운 비판을 가했다.
“한국의 기적은 끝났다”라는 특집기사에서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지금까지의 성공을 이룬 경제 전략은 이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제 한 번이라도 손쉬웠던 때가 있었던가? 이보다 더한 상황에도 우린 늘 고난을 극복해왔고 오늘의 성장을 일궜다. 이제부터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자만은 금물이다.
지금까지의 위대한 기적이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상위의 가치로서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가르쳐주신 겸손함으로, 나보다 못한 이웃을 먼저 돌아봤던 사랑으로, 어느곳 어떤 상황에서도 처할 수 있었던 강인한 생명력으로 마지막 때에 우리 민족이 완수해야 할 ‘복음’의 사명이 남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