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 기능 사라진 의회가 휘두르는 포퓰리즘 칼날 …
예수님은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라” 규정 (마 7:15~20, 12:33-37)
의회 민주주의 제도의 목적은 견제이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서로 견제와 균형 속에 더 좋은 정책으로 경쟁하고 그 결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부를 구성하고, 또 그 결과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민주제도의 이데아이다. 그런데 견제 기능이 무너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치집단의 성격 상 아주 쉽게 독재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갖추게 된다. 어떻게든 이 같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가 된 정치집단은 말 많은 정책 경쟁보다 손쉽게 대중의 마음을 얻는 방법으로 포퓰리즘을 선호한다. 단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밑밥인 포퓰리즘은 결국 국민과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야 만다. 요즘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한국 정치는 역사 이래 가장 저급하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중우(衆愚)정치의 끝단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은 과거처럼 군사독재나 공산주의 혁명과 같은 급진적 방법에 의해 민주주의가 훼손되는게 아니라, 합법적 절차로 당선된 지도자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서서히 후퇴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는 2006년 62%로 정점을 찍은 후 매년 감소해 2017년 51%로 위축됐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처럼 민주적 선거에 의해 당선된 후 급진적인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이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낚시꾼의 밑밥과 같은 포퓰리즘이다.
낚시꾼이 밑밥을 던지는 이유는 물고기가 예뻐서도 아니고 불쌍해서도 아니다. 밑밥은 결코 물고기를 위해 주는게 아니다. 더 큰 것을 얻어내려는 자신을 위한 유인책인 미끼일 뿐이다. 더욱이 정치인이 무슨 돈이 있어 밑밥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세금과 국가 부채, 미래 세대의 부담을 지우면서 마치 자신이 선심 쓰듯 한다.
결국 국민 삶이나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든 권력을 잡고야 말겠다는 정치집단의 포퓰리즘은 다수의 독재를 용인하는 민주주의의 약점을 파헤치는 마약인 셈이다.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다수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민주주의가 다수의 만능과 횡포, 이에 따른 입법·행정의 불안정, 여론 정치, 정부의 타락, 정치인의 포퓰리즘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정당이 의회에서 견제 기능이 사라진 다수를 차지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헝가리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 집권당은 다수의석을 이용해 상대당 의원들까지 포섭하고, 기업을 지배하여 자신들의 경제공동체로 만든 뒤, 법원을 조종하고, 선거제도까지 일방적으로 변경했다. 집권당 대표 빅토르 오반은 범법할 필요도 없었다. 부여받은 입법권으로 자기의 필요에 따라 법을 바꾸면 됐기 때문이다. 비밀경찰을 이용해서 정적을 제거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정적들을 언론이나 세무관청 같은 비폭력적 방법으로 얼마든지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 기사(2019.9)에 따르면 헝가리는 외형적으로 민주국가이나 사실상 일당독재의 나라가 되었다.
이로 가는 불안한 기조가 거대 야당을 차지한 민주당에서 보이고 있다.
첫째, 징조는 이재명 반대 세력을 공천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만든 일극체제이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이재명 대표는 사상 초유의 85.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공산독재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높은 득표율이다. 이재명 대표는 22대 총선에서 많은 잡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이재명계로 진용을 꾸려 당내에 철옹성을 만들었다.
둘째, 포퓰리즘의 남발이다. 지난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거대 야당의 포퓰리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재명 1호 법안으로 ‘전국민 25만원 지원법’이 통과됐다. 법의 명분은 ‘민생회복’이다. 절대 다수 의석을 점한 민주당에겐 25만원법 통과쯤이야 어린애 팔목 비틀기였다. 과연 25만원이 민생회복의 마중물일까.
앞서 문재인 정부 때를 상기해 보면 자명하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에 지친 국민들 위로”라며 2050만 명에게 통신비 2만원 씩, 4100억원을 통신사에 바로 줬다. 국민 혈세로 국내 최고 고임금 대기업인 3대 통신사 배만 불렸다. ‘통신비 2만원’에 4100억원을 썼더니 다음 해인 2021년 10월 물가(3.2%)가 9년9개월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물가상승률이 평균치인 2.5% 선이었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고용·생산 부가가치 하나 만들지 못한 최악의 포퓰리즘 중 하나였다.
2024년 봄 22대 총선에서 대승한 민주당이 밀어붙인 ‘전국민 25만원’을 위해서는 나라빚 13조원을 내어야 한다. 지금은 고금리에 물가마저 3%대로 높은데, 13조원이 일시에 풀리면 물가가 더 오를 것이 불문가지이다. 물가상승으로 서민들의 실질소득이 낮아지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물가 상황인데 현금을 풀면 역효과가 난다고 반박하는 분석보고서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국가재정은 ‘승수효과’를 내는 데 신중하고 소중히 쓰여야 한다. 현대차가 울산에 건설 중인 연 20만대 전기차 전용공장 투자비는 2조3000억원. 13조원이면 이런 공장 6개를 만들어 1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4년 전 ‘통신비 4100억원’을 국내 최초 돔 공연장을 짓는데 투자했다면 세계적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월드투어 서울 공연도 가능했을 것이다. 올 2~3월 일본 도쿄돔, 싱가포르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스위프트 공연으로 7000억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봤다고 한다. 공돈은 당장은 달지만 장래의 독이 되는 사탕과 같다. 미래 세대를 담보로 빌린 몇 십만원이 그렇다. 새로운 부가가치도 만들 수 없다. 국가재정은 우리의 성장잠재력과 미래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한다. 형편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찾아 더 포용하며 양극화를 줄여가는 데도 재정이 많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남아도는 쌀 보관과 처리에만 수조원이 드는데도 지난 5일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발의키로 해 농업을 망치려 한다. 나랏빚이 늘어나도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 빚을 갚으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조차 서슴지 않는다. 말은 그럴싸 하지만 나라를 망가뜨리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정부는 쌀 공공비축량을 매년 늘리지만 쌀 소비가 줄어 남아돈다. 올해 45만t을 매입하는 데만 1조 1250억원이 든다. 농식품부는 2028년까지 국내 쌀 가공산업 시장을 17조원 규모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쌀 산업의 자생적 활로는 생각하지 않고 전량 국가재정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양곡법을 시행할 경우 쌀 매입·보관비용으로 3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과 동남아에서 양곡법과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가 재정 부담이 크게 늘고 농업 경쟁력이 오히려 약화된 사례를 유념해야 한다. 자칫하면 쌀 산업을 부양하는 대신 정부 보조금에만 기대는 ‘연명 치료’에 그칠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최근 ‘먹사니즘’(먹고 사는 문제)을 표방하며 민생과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중도층까지 끌어안겠다는 포석이지만 과도한 규제 혁파와 노사분규 문화 개선, 국가 재정을 악화하는 선심성 포퓰리즘을 과감히 배척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이 있어야 해결되는 문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