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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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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야욕에 숨은 제국주의 망령

독도 야욕에 숨은 제국주의 망령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기존 복음신문 「독도 야욕에 숨은 제국주의 망령」 기사 사진 · 사진 복음신문 제공 · 복음신문 보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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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토침탈 단계적으로 진행 … 거짓 벗어야 하나님 아는 나라 될 수 있어

일본 정부는 14일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자국의 고유 영토로 주장하는 내용의 명시를 끝내 강행했다. 내용에 “독도 관련 한일간 주장의 차이는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라며 러시아와 분쟁관계인 쿠릴열도의 4개섬과 같은 반열에 올렸다. 단순한 영유권 주장을 넘어서 향후 반환요구 의도까지 내포됐다.

일본의 교과서는 해설서를 기준으로 집필되므로 실제적인 영향이 막대하다. 게다가 일본은 해설서가 적용되는 4년 후를 기다리지 않고 내년부터 독도에 대한 영토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공영 NHK방송이 15일 보도했다.

일본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조치들을 단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독도 영유권 주장을 대내외적으로 확인하려는 국제분쟁화 의도와 국제사회의 여론이 유리해졌다는 판단때문이다.

올 5월 23일에 있었던 싱가폴-말레이시아간 도서영유권 분쟁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서는 양 당사국의 ‘공식 발간물’상의 영유권 관련 기술을 실효적 지배보다 더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 홍보용 팜플렛’을 제작하고 문부성은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주장의 강화를 시도하므로써 정부의 공식 발간물상의 근거를 축적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는 2차대전 패전 후인 1951년 연합국과 강화조약을 맺고 재독립할 무렵부터이다. 당시 일본은 점령한 영토의 반환목록에서 독도를 제외시키기 위해 미국측에 강력한 로비를 펼쳤다. 영국 등 다른 연합국의 반대로 결국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일본은 그 후 독도 강탈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구체화해왔다.

일본이 의도한 ‘독도 분쟁’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기정사실화돼가고 있다. 영국 BBC는 18일 독도분쟁의 원인을 “가스가 매장돼있는 풍부한 어업지대기 때문”이라면서 “한국과 일본 모두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끊임없는 분쟁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미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11종의 세계 유수 지도책에 ‘독도’를 한국영토로 밝힌 곳은 한곳도 없다. 해외 백과사전과 유명 포털사이트의 독도 표기는 ‘리앙쿠르 바위’로 급속히 대체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에도 독도는 “한국과 일본이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일본해’ 위에 ‘리앙쿠르 록스’로 표기돼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한일간 리앙쿠르 록스로 인한 분쟁’ 사실을 적시했다. 세계 인터넷사이트에서 ‘리앙쿠르 록스’ 표기는 2005년 2만개 수준에서 2008년 3만 8,000여개로 폭증했다.

미 의회도서관의 ‘리앙쿠르 록스’ 변경 계획을 16일 가까스로 저지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김하나씨(토론토대 동아시아도서관)는 “이렇게까지 된 데는 일본측의 조용하고 오랜 노력이 숨어있다”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강경한 목소리가 아니라 자료를 모아서 미국의 지리전문가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의회 도서관측은 “미국 지리원과 미국 지명위원회가 이미 독도 명칭을 ‘리앙쿠르 록스’로 변경했다”는 점을 변경추진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1988년 미국 지리원이 독도의 명칭을 리앙쿠르 바위로 바꾼 것을 알면서도 20년간 대응을 하지 않았음이 18일 드러난바 있다.

우리 정치권은 일본이 한국을 자극하고 ‘치고 빠지기’ 전략을 구사할 때마다 여론에 편승해 비난과 즉흥적인 대책을 쏟아내고, 시민사회단체는 규탄과 항의로 격렬하게 맞섰지만 매번 그것으로 위안삼는 수준에서 끝나고 말았다. 격앙된 감정만 앞세웠을뿐 체계적인 대응책은 없었다.

오히려 1998년 신 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양국이 공동 관리하는 중간수역 안에 포함시켜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정부는 영토문제와 관련이 없는 단순한 중간수역이라고 말하지만 일본은 이를 근거로 소유가 명확하지 않은 잠정수역이라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명백한 대한민국의 섬이자 엄연한 이름이 있는 독도가 프랑스의 포경선이 1849년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포경선의 이름을 딴 ‘리앙쿠르 바위’로 불리운다는 자체가 얼마나 서럽고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러나 이는 일본이 부단히 노력해온 의도된 결과다. 독도의 역사를 19세기말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게 되고, 당시 주인 없는 땅이던 독도를 1905년 2월 일본 각의 결의로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는 ‘무주지 선점론’이 유리해 진다.

그러나 당시 영토편입을 결정했던 일본 관리들조차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여러 증거로 처음 밝힌 사람은 일본의 역사학자 나이토 시네마대 명예교수다.

나이토 교수는 “일본은 러일전쟁을 위해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고도 강탈했다”고 잘라 말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땅이라고 하면 한쪽의 일방적 주장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 ‘유주지’였다.

1905년 훨씬 이전부터 한국의 영토였음을 증명하는 사료들은 한국과 해외에서, 일본 내에서까지 발견되고 있다.

이제는 이것들을 일본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증거로 체계화하고 다각도로 국제기구와 기관, 단체 등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끊임없는 외교적 노력으로 일본이 억지를 부릴수록 불리해진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역사적 공동연구를 통해 일본이 실체적 진실 앞에 나오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이 독도 침탈을 계속하는 것은 과거의 제국주의의 체질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금 군국주의의 부활의 칼을 갈며 영토약탈을 위해 다가오는 일본과 철저히 우리의 힘으로 맞서야만 한다.

최근 일본 방위성은 이지스함을 투입하는 등 독도 공세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독도 방어훈련을 해마다 축소해 오다 올해는 취소한 것과는 달리 일본은 동해에 자위대 전력을 전면 개편하고 독도를 포함한 도서부 침략에 대비한 해상 훈련을 강화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일본은 소위 ‘평화헌법’으로 불리웠던 전범국의 항구적 무장 금지를 규정한 헌법9조의 개정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미 2007년 일본 국회는 헌법 개정 안건을 통과시켰다. 국민투표법 통과 후 3년이 지나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헌법개정으로 일본의 교전권 인정과 정식 군대를 보유하게 되면,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전쟁 도발로 2천만명 이상이 희생된 한국과 아시아국가에게는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힘과 지혜를 자랑하며 약탈을 정당화하던 앗수르 제국주의의 결말은 하나님의 진노 뿐이었다.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사 10:13,14) 한국은 약탈을 당한 약자였다. 그러나 최종 승리는 힘에 있지 않다. 약자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약탈을 일삼던 미디안족을 기드온을 불러 300명의 결사대로 치게 하셨다. 기드온의 300 용사는 자신의 힘이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13만의 대군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다(사 7:1-8:28).

오늘날 일본은 영토침탈을 위해 세계국민을 속이고 다시금 군국주의의 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고 있다. 내세를 알지 못한 채 현재의 영화를 위해 거짓을 말하며, 우상을 섬길지언정 하나님 알기를 싫어하고 있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 내가 이 일들로 말미암아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렘 9:6-9) 겉과 속이 다른 바리새인을 “회칠한 무덤”(마 23:25-28)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질타가 오늘날 일본에 임할까 두렵다. 이웃 일본이 해악를 꾸미는 입을 거두고 양심을 회복하게 되기를, 손에 든 칼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진정한 동북아 평화의 손을 펼치기를 기도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