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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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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기도의 원동력은 하나님 사상”

GOSPE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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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기도원 제3회 학술세미나

소요한 교수(감신대), ‘용문산기도원 구국기도회의 역사적 고찰’서 밝혀

지난 1일 용문산기도원 제3회 학술세미나가 경북 김천 용문산기도원 내 대성전에서 개최됐다. 재단법인 기독교대한감리회 애향숙 주최, 감리교신학대학교 주관으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용문산기도원에서 지난 56년 간 이어 온 구국기도회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이뤄졌다.

발제는 소요한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한국교회사)의 ‘용문산기도원 구국기도회의 역사적 고찰’과 박철호 목사(기념탑교회)의 ‘용문산기도원 구국기도회의 계승을 위한 방안’ 순서로 이뤄졌고, 이후정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가 논평을 맡았다.

이에 본지는 한국교회사에 있어 본격적인 구국기도운동의 시발점이 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하나님 사상의 신앙공동체로 재정립하는 근거로서 용문산기도원의 구국기도회가 갖는 중요성이 큰 만큼 제3회 학술세미나의 내용을 요약하여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용문산기도원 구국기도회의 역사적 고찰

- 소요한 박사(감리교신학대학교/한국교회사)

1. 서론: 구국기도 운동의 배경

1963년 4월 30일부터 시작된 한민족 제단의 구국기도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구국제단은 아실 나운몽 목사(이후 ‘아실’로 호칭)가 1940년 6월 13일 애향숙 창설 이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기도처에서 시작된다. 구국제단 설립 당시 한국의 상황은 불안한 경제와 6.25전쟁 휴전 이후 계속된 전쟁의 불안을 키웠다. 아실은 이 같은 국가 위기는 구국기도 대회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생명 사상이 국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961년 5월 27일 아실은 구국기도대회를 먼저 시작한다. 목회자들만 초대한 구국기도대회에 803명의 목회자들이 참여했고, 이 중 과반 수 이상이 용문산기도원 운동을 이단으로 지목했던 장로교단 목사들이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아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위기 앞에 기도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용문산기도원은 일제강점기 해방과 함께 1947년 재건된 애향숙을 중심으로 신앙부흥운동을 해왔고, 신앙수련회, 일동일교회운동(시골의 교회 없는 마을마다 교회를 세우는 운동)을 이루어 나갔다. 이 시기에 심령수련회가 활발했는데, 특히 1948년부터 시작된 8월 유월절성회는 서울에서 특별수송열차를 편성했을 정도로 활발했다. 1961년 5월 전국교역자 구국기도대회를 위시한 용문산기도원의 활발한 심령집회는 구국기도제단과 곳곳에 기도운동이 일어나게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부흥회와 함께 성장했던 구국제단의 모습은 1919년 4월 30일 56주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한 시도 쉬지 않는 릴레이 구국기도가 되었다. 이는 세계 기독교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구국기도의 본질적인 사상과 의의를 살펴보기 위해 아실의 구국기도를 국가관, 구국기도 사상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아실의 국가관

2-1. 기독교와 국가의 불가분성

아실은 기독교와 국가는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분명히 한다. 그는 기독교와 국가의 분리 이유를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외면하라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종교가 국가의 정치, 경제, 교육에 들어가 빛과 맛을 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 위 인간사회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어찌 종교가 정치와 무관할 수 있겠는가?”라는 주장을 통해 기독교와 국가의 ‘불가분성’을 주장했다.

아실은 더 나아가 더 적극적 해석으로서 성서에서 기독교와 민족의 불가분성을 해석했다. 그는 “기독 정신 속에는 많은 민족혼이 숨어 있다”고 했다. 이 기독교와 국가의 불가분성은 기독교 정신에 민족혼이 있어 성서에 ‘애국애족의 선봉자들의 모습들이 많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말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철저한 민족애에 입각한 정치가였다’고 주장했다.

아실은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애국, 애족의 선봉자였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사는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정치 속에 예수의 빛을 비춰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곧 하늘의 뜻이 반영되는 ‘순천국’으로 가는 반면,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에는 ‘역천국’이 된다는 의미이다. 아실은 정교분리가 주는 의미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국가에 대한 외면’, ‘무관심’으로 일관될 수 있다며 국가와 기독교의 불가분성에 대하여 주장했다 이렇게 기독교와 민족, 국가의 불가분성은 아실이 구국기도를 시작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그가 시작했던 구국기도는 어떤 이념에 치우치지 않았다. 좌, 우 이념 모두를 비판하며 그 대안을 찾아갔던 것이다.

2-2. 좌우 이념을 비판

아실의 사상을 보면, 좌우 이념에 기대지 않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구국기도, 구국제단이라고 하면 어떤 이념에 치우친 기도대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용문산 구국기도 제단은 기도가 계속된 이래로 좌, 우 어떤 이념에도 속해 있지 않은 기도제단이었다. 아실은 애향숙과 용문산기도원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정권 시절에 감옥에 가는 경험을 한다. 아실의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그는 현세의 이념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 이념을 4가지 주의로 나누고 각 주의가 어떤 이념을 가졌기 때문에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아실은 그 시대에 한국의 자본주의 진영도 비판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할 것 없이 모두가 먹을 것을 두고 싸우는 구약의 ‘에서’와 닮았다면서 자기의 이기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했다. 두 개의 자본주의, 공산주의의 주의를 “에서주의”라고 부륵도 했던 이유이다. 좌우이념에도 에서주의가 있고, 현대교회에도 에서주의가 있다고 비판했다. 아실은 ‘에서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그 대안을 제시했다. 물질 중심인 ‘암흑 사상’을 진리 중심인 ‘빛의 사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는 신비주의 계열의 이분법적 사고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물질중심을 타개한다고 해서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해 생명을 가진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순천국’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아실은 기도운동을 하면서 세상적인 권력으로부터 탄압, 강요, 회유 등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의 기도운동에는 더욱 성서가 기준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아실의 구국기도가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구국의 사상이 이데올로기에 기대 있어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경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중도를 걷는 것에 있었다.

2-3. 민족

아실은 민족의 개념을 말할 때 어느 특정 민족이 우수하다는 입장을 지양했다. 그는 차별이 아닌 각각의 차이와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각각의 특징을 바탕으로 예수를 통해서 하나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우리 민족의 전통 종교를 복음화의 가능성으로 살펴본 바가 있기 때문에 타 민족에 대한 종교적 접근도 종교성 그 자체만으로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는 각 민족에게 있는 문화, 종교를 복음화의 가능성으로 보고 접근했다. 아실의 기독교적 민족 구분과 화합은 정체성을 인정하고 종교적인 의미로서 근본적인 추구, “박애주의”를 일치의 근본으로 삼았다.

3. 아실의 구국기도 사상

아실의 구국기도는 단순히 나라를 위해서 기도만 하는 운동이 아니다. 그의 구국기도는 사상, 이론, 행동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결과로 좌우의 이념을 뛰어넘는 “참”이라는 ‘공심’과 ‘일념’의 개념이 담겨져 있다. 다음으로 그에게 나타나는 사상, 이념, 행동이 담고 있는 사상적 의미를 살펴본다.

3-1. 구국기도의 원동력 - 하나님 사상

아실이 말하는 사상이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에게 있어 ‘사상이란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아실은 한국의 기독교인이 “사상”이라는 단어에 편견을 가지는 것을 우려했다. 아실은 특히 ‘사상을 정치운동으로 오해하여 비난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주장’을 바판했다. 아실은 사상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오히려 적극적인 해석을 했다. “피조물 전체가 하나님의 사상 표현인데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사상 실현체가 아닐 수 없다”며 하나님의 사상이 실현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 근거를 주기도문에서 찾는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한 것처럼 그 사상의 실현 근거로 하나님의 뜻인 사상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사상은 어디서 찾아야 되는가? 그 근원은 성서라고 말한다. “기독교인은 모두가 하나님의 사상표현인 말씀을 받아 모든 인민에게 사상을 정돈하여 생활화시킬 수 있도록 체계화된 사상과 주의를 선포해 주어야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아실이 말하는 하나님 사상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그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사람(민족)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축복이고 불순종은 심판’이라는 신명기적 역사관점이 성서해석의 틀로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아실의 하나님 사상은 당시 좌우이념의 대립으로 일관되었던 시대상황 가운데 기독교 국가로 대표되는 미국이 우방국가의 역할을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따를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아실의 “하나님 사상”은 분명히 좌우 이념과는 다른 “하나님-사람 관계”, “순종-불순종”이 중심이 되어 당시 시대상황을 인식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아실은 사람, 민족의 개념을 한민족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함을 알 수 있다. 아실에게 있어 “하나님-한민족”의 개념은 “민족문제”에 심각히 착념하고 부르짖는 근본이 된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한국교회를 향해 질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실은 하나님 사상이 하나님과 한민족 관계 그 자체는 불가분성이 있는 관계로서 설정을 하며 ‘사상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의무다’고 주장한다.

또 아실은 하나님 사상 자체를 “생명이 있는 사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생명사상을 다음과 같이 성서에서 인용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한복음 12장 24~25)”

아실의 생명사상의 핵심에는 희생이 동반된다. 타인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를 기억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명 사상의 희생은 생명이 있는 이론과 생명이 있는 행동으로 실현되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