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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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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중심, 십자가의 역설(Paradox)

복음의 중심, 십자가의 역설(Paradox)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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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불(행 2:1~4) / 화가 임윤임

역설의 십자가, 승리주의적 기독교를 향한 도발: 능력은 어떻게 약함 속에서 완성되는가?(고전 1:18, 고후 12:9, 빌 2:6-8)

기독교 복음의 심장부이자 그 변혁적 능력의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세속화된 사회와 번영에 도취된 교회의 맥락 속에서, 십자가는 종종 그 본연의 전복적이고 도발적인 성격을 상실한 채 단순한 종교적 장식물이나 안락한 위안의 상징으로 전락해 버렸다. 인간의 얄팍한 상식과 이성으로는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십자가는, 본질적으로 세속적 통념과 인간의 오만한 세계관을 향한 맹렬한 도전이다. 고대 로마 사회라는 척박하고 잔혹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십자가형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장 수치스럽고 극악무도하게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는 처형 방식이었으며, 철저한 패배가 확정된 자리였고, 군중의 멸시와 조롱이 난무하는 현장이자 완전한 무력함의 표지였다. 이토록 끔찍하고 저주받은 형틀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 우주적 역사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의 지점에서, 인간의 논리를 철저히 붕괴시키는 복음의 가장 위대한 역설(Paradox)이 찬란하게 시작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의 선언을 통해 이 인식론적 단절을 명확하게 규정한다. 그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역설하며, 세상의 눈에는 완벽한 실패처럼 보이는 이 비극적 사건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시각에서는 구원의 위대한 능력임을 천명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세속적 성공, 타인을 지배하려는 영향력, 대중의 인정, 그리고 끝없는 세력의 확장 등 이 모든 현상은 결국 ‘힘’이라는 일원화된 언어로만 설명된다. 그러나 복음은 이러한 인류의 지배적인 본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전혀 다른 대안적 길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군사적,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여 세상을 강제로 변화시키는 방식을 철저히 배격하셨다. 그분은 오히려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숭고한 자기 비움(Kenosis, 케노시스)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역사 속에 온전히 성취하셨고, 그 길의 절대적 절정이 바로 십자가인 것이다.

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십자가는 억압적인 인간의 폭력과 자기를 끝없이 내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조우하는 위대한 자리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얄팍한 기득권과 깊은 두려움으로 인해 예수를 철저히 배척하고 버렸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버림받은 처참한 형틀 위에서 온 인류를 따뜻하게 품어 안으셨다. 인간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날 선 조롱과 멸시를 쏟아냈으나, 하나님은 동일한 자리에서 무조건적인 용서를 선언하셨다. 겉으로 관찰할 때 이 사건은 무참하고 비참한 패배처럼 보였으나, 실제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는 죄와 죽음의 폭력적인 권세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결정적이고 우주적인 승리였다. 참된 능력은 결코 외형적으로 과시되는 강함이나 폭력에 있지 않으며, 철저히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 안에서만 그 실체를 온전히 드러낸다는 것을 십자가는 명증하게 증명한다.

이러한 십자가의 역설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고 동의해야 할 건조한 신학적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규정하는 영성의 핵심이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과연 어떠한가? 우리는 종종, 아니 거의 매 순간 하나님께 ‘능력’을 구걸한다. 내 앞의 당면한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는 초월적인 힘, 불리한 상황을 단번에 바꾸는 능력, 그리고 내 삶의 고난과 불편함을 말끔히 제거해 주는 기적만을 기대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승리주의에 도취된 우리의 심장을 향해 매섭게 묻는다. “너는 진정 약함을 통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우리는 약함이 말끔히 제거된 상태의 능력을 원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약함을 제거하시기 전에 오히려 그 뼈저린 약함을 강력한 통로로 삼아 역사하신다.

사도 바울은 이 잔인할 만큼 은혜로운 역설의 원리를 자신의 실존적 삶 속에서 가장 깊이 뼈저리게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육체의 가시’로 인해 극심하게 고통받으며,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여러 차례 간절히 간구했다. 그러나 주님의 응답은 그의 인간적인 기대와는 철저히 달랐다.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위대한 선언을 주셨으며, 이어서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파격적인 진리를 계시하셨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인간이 가진 탁월함이나 강함을 통해 결코 증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철저한 한계와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바로 그 순간, 그 텅 빈 결핍의 자리에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채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십자가의 영성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강함을 증명하려는 ‘자기 과시’의 욕망을 처절하게 내려놓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타락한 본성을 지닌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연약함을 병적으로 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의 약함이 더 이상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대상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맡겨야 할 거룩한 자리임을 분명히 가르친다. 우리가 자신의 약함과 파탄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그 찬란한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를 경험하는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여기서 깊이 주의해야 할 점은, 약함을 인정한다는 것이 결코 수동적인 체념이나 운명론적인 무기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의 길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향한 가장 능동적이고 결연한 순종이다. 예수께서는 원하신다면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얼마든지 피하실 수 있었지만, 스스로 아버지의 구속 계획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셨다. 그 십자가 위에서의 순종은 겉으로는 무력의 극치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행위였다. 결국 진정한 능력은 순종을 통해 발현된다.

오늘 우리의 신앙 현주소는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안락한 삶, 언제나 우위를 점하는 승리의 자리만을 맹목적으로 꿈꾸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참된 복음은, 십자가의 고난이 생략된 값싼 승리를 결코 약속하지 않는다. 복음은 오직 십자가를 통과한 부활을 약속할 뿐이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완전한 허구이듯, 약함 없는 능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십자가의 역설은 개인의 사적인 영성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교회는 세상의 영향력을 따라 강해지는 조직이 아니라, 철저하게 십자가의 정신을 따르는 공동체다. 성도들이 서로의 연약함을 기꺼이 품어주고, 상처를 감추지 않으며, 용서와 화해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세상이 강함으로 유지된다면, 교회는 사랑으로 세워진다.

결국 십자가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너는 무엇을 자랑하는가?” 만일 우리의 자랑이 성공과 업적에 있다면, 우리는 아직 십자가의 깊이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의 자랑이 오직 주님의 은혜에 있다면, 우리는 이미 십자가의 능력 안에 서 있는 것이다. 능력은 약함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신앙의 역설이자 삶의 원리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전함을 통해 일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 그분의 완전함을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자리다.

복음의 중심은 여전히 십자가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오늘도 우리를 부른다. 강해지려 애쓰기보다 은혜에 의지하라고. 스스로를 증명하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라고. 약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약함 속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바라보라고 촉구한다.

십자가의 역설을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우리는 세상의 힘의 논리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그 자유 안에서 참된 능력을 경험한다. 그것은 소리 높여 자랑하는 힘이 아니라, 조용히 사랑을 선택하는 힘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복음의 능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