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 주간 신문“성경으로 과거를 해명한다! 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한다! 성경으로 미래를 예언한다!”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합니다
성경과 현실

성경과 현실

백년대계 위한 교권 회복을 위해

GOSPEL TIMES
이 기사 공유

교권 붕괴의 원인과 대책 …

성경은 스승과 학생의 관계와 역할에 대해 분명한 기준 제시해 주셔 (히 13:17, 요 13:15, 시 32:8,9)

개념 확장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극복할 주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가 학교에서 경험하는 작은 상처나 불편까지 아동학대라는 큰 범주로 확대한다면, 부모가 교사와 터놓고 대화할 여지는 사라진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교사로부터 필요한 조언을 얻는 등의 건강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자녀에게는 좌절을 견디고 일어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는 가정보다 덜 친절하고 내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는 당연한 교훈을 학교생활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래야 사소한 불편과 좌절을 참고 견디는 심리적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는 게 많은 소아청소년 전문가의 조언이다. 부모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과도하게 부풀려 대처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배우는 건 무엇보다 안타깝다. 학생들이 교사를 향해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겁박을 서슴지 않는다는 걸 보면 어른들의 극단적인 갈등 해결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번 사태로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내놨다. “가정에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사랑과 교육을 교사에게 강요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무절제와 방종을 낳고, 이렇게 이기적이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게 자란 자녀들은 결국 부모에게 족쇄로 돌아올 수 있다.” 악당은 존중이 사라진 교육현장을 조장하고 교권 붕괴에 무관심한 학부모, 교육 관계자 모두가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가르칠 권리로서 교권을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교권 추락의 원인인 현행 법령 체계를 손봐야 한다.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법,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 시행령 등 다양한 법의 적용이 확대되면서 교권도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됐다. 한 예로 아동복지법에 제3조에서 정서적 가혹행위와 아동 방임행위를 아동학대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정의가 추상적이고, 제17조 5호 정서적 학대행위, 6호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처벌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교사의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와 관련해 구분하기 어렵다. 교사의 아동에 대한 형법상의 폭행, 모욕, 명예훼손, 재물손괴도 아동학대범죄로서 형법보다 우선 적용되게 된다. 따라서 아동학대법에 의한 가중처벌과 수강명령 또는 이수명령을 병과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법 규정상의 문제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를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교사가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간접 체벌(복도에 서있게 하기 등)을 하게 하면 법원에서는 실제로 해당 교사를 처벌하고 있다. 교사가 학생지도를 더욱 움츠리게 만드는 실질적 원인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사들의 교권 확립 요구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 마련’이라는 방향으로 관련 법들이 개정돼야 한다.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법령 개정이 만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몇몇 법령을 개정한다고 교권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더 이상의 교권 추락을 막고 교권 침해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법령 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 인권을 낮춰야 교권이 높아진다는 시소 게임적 사고는 없어야 한다. 교권이 회복되야 학생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다는 상생의 사고 방식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은 교과교육을 대체하는 전문학원과 인터넷 교육강좌가 넘쳐나고 교육 정보도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보편적이 됐다. 교사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것이 교권 침해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교가 입시나 성적 평가 서열의 각축장이 아닌 인성교육의 온실이 돼야 한다는 교육의 본래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그 일번이 교사의 행정업무 간소화다. 교사들은 출근하자마자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NEIS)에 접속해 처리해야 할 하루 평균 공문 약 20여건, 1년에 1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교육 선진국인 핀란드가 연간 약 5건, 캐나다가 연간 약 6건 등 매우 적다는 것과 비교된다.

또한 교권에 대한 침해 조사, 구제, 지원을 전담시키기 위한 ‘교권보호 담당관’ 제도 및 ‘교육활동보호팀’ 설치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장관(제2023-12호) 고시 제2조의 교권 침해 항목에 ‘보호자의 악성 민원’을 신설해야 한다. 지금은 교사들이 어떤 보호도 받고 있지 못하므로 사회에 ‘무고죄’가 있듯이 학부모의 정당하지 않은 반복적 민원과 모욕적 언사를 악성 민원으로 규정해 피해를 입은 교원의 치유와 교권 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해당 학부모에 대한 특별교육과 미이행시 과태료 부과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도록 한다.

셋째,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교육선진국의 교육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핀란드의 교사들은 판사나 의사와 비슷한 대우와 연봉을 보장받는다. 하루 4시간 이하의 수업을 하며 2시간은 수업 준비와 연구 시간을 갖도록 배려해 준다. 따라서 핀란드 교육의 질이 우수하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여기에다 핀란드 학생들은 시험이 없고, 숙제가 없으며 처벌도 없다. 교실에서의 스트레스가 약한 만큼 교권 침해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교사에게 문제 학생과 상황을 통제하도록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학교 교칙을 위반하거나 교권 침해가 이뤄질 경우 문서 경고 또는 2시간 미만의 정학실 구금을 통해 징계한다. 다른 학생을 위협하거나 위협할 가능성이 있을 땐 교사가 무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고, 학생의 소지품을 검사해 위험물을 압수할 수 있다.

영국은 한 때 노터치 정책을 시행했으나 교사들이 상식적 수준의 생활지도도 포기하게 되자 비판 여론이 일었고, 학교폭력이 배로 급증해 결국 노터치 정책이 폐기됐다. 노터치 정책 폐기 후에는 직접적인 물리력으로 학생을 제지할 수 있게 됐다. 교사의 지도에 불응하는 등 지속적으로 교실 내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 교장은 정학과 퇴학을 결정한다.

독일은 학교법에 따라 문제행동 학생에 대해 교원이 훈육·징계조치를 할 수 있다. 훈육조치로는 학부모와 학생 면담, 수업 제외 등이 있고 징계조치로는 학급 교체, 정학, 퇴학, 주 전체 공립학교에서의 교육권 박탈까지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만약 학부모가 교사에 대한 불만으로 민원을 넣으면 학교장과 카운슬러가 해결의 전적인 책임을 진다. 학교장의 조치에 불만을 가지면 학부모는 다음 단계로서 교육위원회에 항의할 수 있는데 교육위원회 조사원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조사하고 결론 낸다. 교사가 이리저리 불려 다닐 필요가 없다. 문제 학생이 지속되는 경우 다른 반에 배치하거나 낙제처리하고 심한 경우 부모를 방임죄로 고발한다. 생활지도 의무는 학부모 책임이기 때문이다. 교사보호법에 의해 교사 생활지도에 면책권을 부여하고 있고 교사 폭행 등 교권 침해가 발생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선은 폭넓은 교사의 징계권 확보가 필요하다.

교사에게 일정한 조건에서의 소지품 검사와 완력에 의한 문제 행동 제지권 그리고 문제 학생에 대한 다양한 방법의 제재와 징계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 문제 행동의 책임은 학생 자신 혹은 학부모 학생의 문제 행동의 책임을 방임이라는 이유로 교사에게 돌리지 않고 학생 자신 혹은 학부모에게 책임 지워야 한다. 또한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법의 개정을 통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 내지 문제 학생에 대한 제재를 가로막는 관련 규정을 구체화하여 교사에 대한 고소·고발이 남발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

성경은 스승에 대한 태도에 대해 분명히 말한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학생은 스승이 지금의 한국 교육 환경처럼 근심이 아니라 즐겁게 가르치게 하는 것이 으뜸의 방책이다. 스승 또한 몸소 솔선수범으로 가르쳐야 한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 예수님이 그 본이 되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 무엇보다 스승은 단순 기능인이나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개별의 특성 대로 훈계하여 학생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인성, 끈기 등을 터득하므로 무지한 말나 노새가 되지 않게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자이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시32:8,9) 성경의 가르침대로 스승과 학생을 진정한 관계 회복과 역할을 찾으므로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