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4:15)
우리는 우리 한민족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복은 첫째로 청소년들이 잘되는 복이요 그 다음은 경제가 잘되는 복이다. 끝으로 평화를 누리는 복이다.
청소년이 잘되는 복을 성경은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 같다”라고 하였다. 씩씩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들, 그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집이 없어지며 그 나라가 망하고 그 민족이 멸절한다.
청소년은 귀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인류 조상 아담이나 중흥조 노아를 축복하실 때 생육 번성하라는 복을 주셨다. 생육 번성하여야 인류를 통해 영광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뤄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실 때도 네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고 네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들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게 될 것이라 하셨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 한다. 출산율이 높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잘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지고 공부 안하고 약하고 악하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밝지 못하고 나라의 장래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이 육체적으로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것이고 도덕적으로 사상적으로 바르게 자라야 하며 지적으로 지식과 지혜가 뛰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일본의 청소년들보다, 중국의 청소년들보다 뛰어나 그들의 세대에는 일본과 중국이 우리나라를 얕잡아보지 못하고 우리나라 백성을 큰 나라 백성이라 칭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이 되면 이렇게 청소년이 잘되는 복을 받게 된다.
경제가 잘되는 복을 성경은 “곳간에 백곡이 가득하고 양들이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고 수소는 무겁게 실었다”라고 말한다. 곳간에 백곡이 가득한 복은 요셉이 받았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가는 곳마다 그 곳이 복을 받았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집안일을 보자 보디발의 집과 밭의 모든 소유가 복을 받았다. 요셉이 옥에 갇혀 옥의 사무를 맡자 옥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다. 요셉이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자 나라의 곳간마다 백곡이 가득가득 찼다.
양들이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한 복은 야곱이 누렸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야곱이 외삼촌 양을 칠 때 외삼촌이 야곱에게 양 치는 삯을 주었다. 외삼촌이, 양들 중에 점있는 양이 태어나면 그 점백이는 네 삯이다 네 소유로 해라 하면 양들이 점백이들만 낳았다. 외삼촌이 “안 되겠다. 네 삯을 변경해야겠다. 무늬 있는 양을 네 삯으로 해라”라고 하면 양들이 무늬 있는 양만 낳았다. 외삼촌이 아롱진 양이 네 삯이다 하면 아롱진 양들이 태어났다.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수소가 무겁게 싣고 다녔다는 말은 경제가 잘 돌았다는 말이다. 경제라는 것이 많은 물자가 바쁘게 이동하고 돈이 빨리빨리 돌면 잘되는 것 일진데 오늘날 큰 트럭들이 가득가득 물자를 싣고 바쁘게 달리고 기차는 더 많은 물자를 싣고 다닌다. 바다에서는 큰 배들이 컨테이너를 수천 개씩 싣고 대양을 누빈다.
배고픈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지만 건성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 있다. 부엌의 큰 가마솥 뚜껑이 열리는 소리다. 무쇠 가마솥 뚜껑이 열리는 마찰음이 ‘치으응’하고 들리면 그 순간 부엌을 향해 내달린다. 쌀 없이 시금치만 삶은 것, 그래도 메주콩이 가끔 보이는 것을 맛있게 먹었다. 그때는 모두들 가난하였다.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싸오지 못하고 물로 배를 채우는 애들이 많았다. 이렇게 가난하던 우리나라를 오늘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으로 만든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노래가 온 나라 구석구석 울려 퍼졌다. 나라는 나라대로 경부고속도로를 닦았다. 포항 제철소를 만들고 조선소를 만들었다. 중화학플랜트를 설치하였다. 전국의 논에 녹색혁명 통일벼를 보급하였다. 백성들은 백성대로 마을마다 새마을기를 세우고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온통 곳곳이 일터였다. 정부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한 차례씩 끝날 때마다 경제가 쑥쑥 발전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서양에서 수백 년 걸리는 문명을 우리는 수십 년에 압축하여 이뤄냈다. “역사의 단축”이었다.
같은 시기에 종교적으로는 용문산기도원의 성령운동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일어난 성령 역사로 기독교의 부흥과 급성장이 있었다. 세계기독교 역사 상 유래가 없는 급성장이었다. 언젠가 필리핀의 어느 목사님이 수십 명의 교인들과 함께 용문산 구국제단을 매년 견학하러 왔었다. 그가 말하기를 “한국이 전에는 우리 필리핀보다 못 살았습니다. 이젠 한국이 더 잘 삽니다. 이 구국제단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의 구국기도를 들으시사 좋은 대통령을 세우셔서 우리나라를 부국강성의 나라로 만드셨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는 둥, 그 역사를 부끄러운 역사라는 둥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대한민국에서 살며 선진들이 이루어 놓은 과실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면서, 그 대한민국을 어찌 폄훼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며 건국 기념일도 지키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다음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튼튼히 세우는 대통령이 서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 선거 때도 정부가 백성들에게 돈을 풀어 매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마지막으로 평화의 복이다. 성경은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길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6.25 남침으로 침노함을 받았고 유엔군과 함께 막기도 하였다. 길거리에는 전쟁으로 엄마 아빠를 잃고 울부짖는 아이들이 많았다. 북한은 전체주의로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였고 남한은 자유 시장경제로 발전하여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그러나 무력과 정신력은 그 반대이다. 북한이 남한이 갖지 못한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를 보유하여 무력에서 앞섰고 남한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하지만 북한 주체사상으로 학습된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앉아 있어 자유 대한을 지키는 정신력은 약화되었다. 그들 자신은 독재에 대항하며 민주화 운동을 하였다고 하나 그들이 정권을 잡고 실현해 가고 있는 사회는 자유 민주주의와는 멀어져 가고 있다. 그들 머릿속에 박혀 있는 주체사상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유민주 체제의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못하다고 여길 때가 있다. 북한은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였다, 이승만이 단독 정부를 세웠다, 남한은 미국의 신 식민지다, 6.25 때 북한 동포를 향해 총을 쏜 공로로 현충원에 묻혔냐, 박근혜 보다 김정은이 낫다, 등등을 주장한다. 북한처럼 부동산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말이나 우리나라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북한에 많이 퍼주어야 한다는 말은 다 그런 사상에서 나온다. 옛날에 우리나라가 중국을 섬기며 조공을 바치듯 북한을 황제 나라로, 스승의 나라로 받들며 조공을 바쳐야 한다는 말인가.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도 하였다. 더러운 평화를 구걸하려고 “삶은 소대가리”라는 욕을 들으면서도, “불바다를 만들겠다.”라는 위협에도, 북한의 심기를 거슬릴까봐 노심초사하는 정부이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당하고도 도발이 아니라고 말하다니... 더러운 평화는 북한이 또다시 남침해 온다면 남한은 나라를 지킬 생각 않고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무조건 항복하고 공산화될 수 있는 무서운 말이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이 누리는 평화는 그런 평화가 아니다. 솔로몬 왕의 나라가 평화로웠고 여호사밧 왕의 나라가 태평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구한 솔로몬을 기특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도 주셔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셨고 나라도 부강하여 주변 모든 나라와 평화롭게 살았다.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사람들이 연합하여 침노해 들어올 때 백성들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습니다. 어찌 할 줄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사 연합군들 자기네들끼리 쳐서 죽게 하셨다. 이스라엘 군대는 찬송만 하였을 뿐 싸우지 않고 승리하였다. 이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는 소문이 나며 하나님이 두려워 감히 유대 나라를 침공하는 나라가 없었다. 이런 평화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다. 구걸하는 평화도 아니요 더러운 평화도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무력과 승전이 비례하지 않는다.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대군의 침공을 받고 이사야 선지와 함께 기도하였다. 앗수르 군대가 침공하여 점령한 수많은 나라들은 그들 신들이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신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나 돌이지 신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참 신이신 줄을 알리이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다. 천사 한 명을 보내시어 18만 5천 앗수르 대군을 하룻밤 새 송장으로 만드셨다. 이 소문이 나며 다른 나라들의 눈에 히스기야가 존대하게 되었고 여러 나라로부터 예물들이 들어왔다. 하나님이 사면으로 그 나라를 보호하셨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의 나라로서 청소년들이 잘되고 경제가 잘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 늘 기도하여야 한다. (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