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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대한민국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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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마음 울린 노 전 대통령 국민장 7일…

우려나 이용 아닌 실체 제대로 볼때 희망 시작될 것

대한민국 역사에 전무후무한 대 기록이 쓰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7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변이었다. 봉하마을에 차려진 빈소엔 하루 평균 14만명 이상씩 100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다녀갔다.

국민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말그대로 국민에 의한 국민장이었다.

그를 떠나 보내던 영결식날 서울광장엔 50만 명이 넘는 기록적인 인파가 운집했다. 서울광장만이 아니었다. 운구차가 지나는 길가에도, 화장장에도 마지막을 함께하려는 시민들로 넘쳐났다.

단지 구경을 위한 것도, 다른 의도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를 떠나보내기가 너무 슬퍼서였다. 그를 욕했던 보수신문 기자도, 그를 비판했던 진보신문 기자도 같이 울었다. 광장에 있거나 직장에 있거나 집에 있거나 모두가 함께 울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노 전 대통령은 임기말에 지지율이 15%까지 떨어졌던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다. 임기말에 그는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으며 열린우리당의 분열과 해체를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도 실패를 자임했다. 지난 2월 그는 자신의 경험을 대중들과 같이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실패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고 썼다. 그랬던 그의 무엇이 이같은 추모 열기를 만들어냈나. 그의 한결같았던 진정성이 국민의 마음을 여는 소통의 길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남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제시하고 있나.

첫째, ‘대의’에 대한 희망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파나 정략이 아닌 ‘대의’라는 원칙과 소신에 따라서만 행동했다. 그는 정책이나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와 상관없이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지역주의가 끊임없는 대립과 국론 소모를 낳는 망국병의 원인이라고 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원시절엔 4번이나 쓰라린 고배를 자초했다. 대통령 임기 내내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법 개정에 혼신을 다했다.

내각 구성권한, 대연정, 대통령 자리까지 내놓으며 선거법 개정을 관철하려 했지만 그러나 여야 모두에게 몰매를 맞는 원인이 됐다.

민주당은 대연정 제안은 자신을 지지했던 모든 민주개혁진영과 호남인에게 배은망덕한 배신행위이며 ‘정당 파괴자’라고 맹공격했다.

지역 정당을 세력의 기반으로 하는 정치현실에서 그의 ‘대의’는 설자리를 잃었다. 그는 언제나 비주류였고 정치판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던 대의와 정의의 구현은 우리가 이뤄내야 할 시대의 가치라는 사실이 국민들 속에 떠오르고 있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 21:3)

둘째, 국민에 대한 믿음이다. 그는 정파나 기득권에 대항하는 힘의 원천을 국민에게서 찾았다.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잠 28:15)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부분 이양한 자신을 “힘없는 대통령”이거나, “왜 정당을 지배하지 않는가” 라거나, “왜 검찰을 장악하지 않는가” 하는 비난을 할때도 “이러한 인식자체가 근본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예수님 또한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이 가장 컸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예수님이 그토록 질타한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 무거운 짐을 남에게 지워놓은 사람, 높은 자리에 앉아 문안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마 23:1-12).

노 전 대통령이 오직 두려워한 이는 국민이었다. 취임 첫해 측근이던 최도술씨 비리가 터져나왔을때 노 대통령이 예고 없이 청와대 프레스룸을 찾았다. “국민에게 제 입장을 설명드리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국민의 불신에 대해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그때도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재신임이란 말도 생소했지만 “누가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측근이 돈을 받은 문제로 일국의 대통령이 자기 직을 거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력만 믿었고 행사하고 싶어했다.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못참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사망선고와 다름없었다. 그를 자살로 몰고간 것은 수사에 대한 압박감이 아니라 상실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그는 나라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음을 실천한 대통령이었다.

세째, ‘모두가 행복한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모두가 살 맛나는 세상’은 특권과 반칙이 없이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투명한 사회에서 누구도 억울한 일 서러운 일 당하지 않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행복하게 사는 대한민국이었다.

그가 임기내내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벌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복지예산을 임기 5년간 8%를 증액한 것도 약자와 서민에게 보다 공평한 기회를 만들어주므로 국민 통합, 더불어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시 72:12-13)

이같은 가치를 기반으로 한 그의 정책은 당장은 결과가 보이지 않거나 실패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멀리보았다. “좀 더 멀리 봐주십시오. 멀리 보면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쫓는 사람과 역사의 대의를 쫓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그러나,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이고 가까이 보면 이익이 이익입니다.”고 호소했다. 그의 모든 정책은 사회통합의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1920년대 대공황을 이긴 후 미국의 부흥을 이끈 뉴딜정책의 힘은 사회보장과 공정한 경쟁을 할수 있는 체질을 만드는데 역점을 둔데 있었다.

멀리 바라보고자 했던 그의 정책은 앞으로 두고두고 재평가될 것이다.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잠 12:12)

우리는 얼마 전 미국 오바마대통령의 취임식을 부러움으로 지켜보았다. 취임식에 몰려든 수십만 인파, 눈물을 흘리며 연설을 듣는 청중들을 보며 미국의 희망을 점쳤다. 우리에겐 그보다 먼저 진정을 다해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온몸으로 국민에게 다가온 노무현이란 대통령이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현실적 여건에 모른척 했던 정의에 대한 열망과 그 힘이 우리 속에 살아있음을 보았다. 이것이 국민통합의 기회이며 희망이 돼야 한다.

어떤 정권도 하늘이 낸 것이다. 노 전 대통령도, 지금의 이명박 정부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세우셨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가늠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행태는 이제 그만 돼야 한다. 정치권의 한편에선 후폭풍을 염려하기도, 한편에선 공세를 높이는 기회로 삼으려고도 한다. 당리와 계파, 지역, 이념, 이기심에 가리워 실체를 보지 못하면 망국적 대립과 분열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현상을 단지 ‘우려’나 ‘이용’의 대상으로 여겨선 그 누구도 민심을 얻을 수 없다. 먼저 자기를 내려놓고 정파나 색깔의 눈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함으로 다가설때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우리는 보았다.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연대의식과 정의감, 역동성이 강한 민족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국민이 보여준 진정에 눈을 뜬다면 국민 통합의 전기가 될 것이다.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잠 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