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을 무매하다 여기면 선택 못받을 것 …
예수님은 열매로 이들을 판단하여 미혹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셔(마 7:16-20; 12:33-37)
그러나 민주당은 이와 정반대로 과격한 노동쟁의를 더 과격하게 끌고 갈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이 법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맹점으로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것이 명백하지만 포퓰리즘으로 돌진하는 열차를 멈추게 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재명 대표는 총선 유세 과정에서 “1인당 25만원, 가구당 100만원 줘서 동네 장을 보게 하면 돈이 돌고 경제가 활성화한다. 무식한 양반들아”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의 지원금도 거론했다. “코로나 때 이미 경험하지 않았느냐”며 “가구당 100만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했더니 동네가 갑자기 6개월 동안 활황을 겪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당시 혜택을 받은 주민은 “동네 고깃집에 한동안 손님이 바글바글했는데 얼마 후 가보니 문을 닫았더라. 지원금 효과가 반짝하고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 1차 재난지원금 14조원중 소비에 쓰인 돈은 30%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 국책 연구소의 분석 결과다. 승수효과가 미미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현금 살포는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물가 불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장기적으로 국가에 악영향을 준다.
사실 포퓰리즘이 극단으로 치달은 것은 이미 문재인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문재인 정권 시절 온갖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 채무는 400조 원가량이나 급증했다. 역대 정부에서 600조원 대로 지켰던 국가 채무를 문재인 정부 혼자 400조원을 늘려 국가 채무 1000조원 시대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빚내서 마구잡이로 푼 돈이 나라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을까?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문재인 정권 5년간 벌인 포퓰리즘 잔치는 국가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국가 재무구조가 약화되고 대한민국 GDP 세계 순위가 강등했다.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17년에 30%대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50%대로 급증했다. 지방정부 부채와 연금충당부채까지 합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말 기준 국가부채 1433조원에서 무려 763조원(53%)이나 늘어 2200조원에 달했다. 대한민국 GDP 세계 순위는 세계 11위에서 2023년 세계 14위로 강등됐다.
문재인 정부는 빚으로 모든걸 다 하려고 했다. 무리하게 빚내서 근로 일자리를 만들고, 공무원 15만명(약14%)을 증원했다. 이 결과 기업의 생산은 위축되고 제대로 된 일자리는 급감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자영업자의 폐업과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지자 문재인 정부는 이 피해조차 나라빚으로 보전하기에 바빴다. 새로 늘어난 공무원 보수로 매년 9조원의 추가재원이 들게 됐다. 포퓰리스트 정권이 만든 참혹한 결과들이다.
이 같은 뻔한 결과에도 왜 포퓰리즘은 확대되는 것일까. 첫째, 당장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22대 총선 때 한 후보는 “일자리·교육 같은 정책 공약은 25만원 포퓰리즘 앞에서 맥을 못 추는 느낌”이라고 했다. 0.73%p 차로 갈린 대선에서 보듯 한 표라도 더 얻어야 하는 정당으로서 말 많은 정책보다 국민의 마음을 쉽게 얻는 포퓰리즘을 이용한다.
둘째, 국민을 지원금 바라기로 길들이는 것이다. 지원금 살포를 정권의 대를 이어 강조하는 것에서 국민 길들이기 의도가 보인다. 이 정당을 뽑아야 얼마라도 공돈이 생긴다는 중독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포퓰리즘을 일삼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얼마나 국민을 우매하게 보는지를, 마구잡이로 뿌려졌다가 증발해 버리는 수십조 원에 나라가 얼마나 멍드는지는 뒷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포퓰리즘을 어느 특정 정당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거대 여야의 경쟁 구도에서 양당 모두 포퓰리즘의 유혹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폭염이 이어지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5일 ‘전기료 감면법’을 민생법안으로 협의하자고 야당에 제안했고, 야당도 “그럽시다”라며 화답했다. 여권에서는 취약 계층의 전기 요금 부담을 사실상 없애겠다는 방안도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 전력 산업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는 채 ‘요금’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에는 여야가 서로 질세라 한통속이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에 한전과 자회사가 이자를 갚는 데 쓴 돈만 2조2841억원에 이른다. 하루에 126억원씩을 이자 상환에 쓴 것이다. 올 상반기 말 기준 한전의 부채 규모는 203조원에 이른다. 불과 2년 반 전인 2021년 말(146조원)과 비교하면 40%가량 급증한 규모다. 빚더미에 앉은 한전의 재무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인공지능(AI) 확산 등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현실에서 우리 산업 전반에 타격이 올 수 있다. 한전의 송배전망 구축이 차질을 빚으며 수요처에 전기를 제때 공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2017년 이후 한전이 건설한 송배전망 길이는 계획 대비 25%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좌우하는 현실에서 전기 요금 인상이 시급하다”고 우려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해도 전기 요금은 안 오른다’며 탈원전을 급속히 밀어붙이면서 전기요금을 묶어두어 한전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부실해졌다.
독일이 신재생 모법국가라며 따라가자고 했지만 독일은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한국의 세배이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는 ‘독일이 탈원전 정책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대기오염이 12% 증가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대기오염, 온실가스 등을 포함한 독일 탈원전의 피해액은 연 122억달러에 이른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금새 더 큰 피해가 나타난다.
지금처럼 포퓰리즘이 심각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 국가는 현재를 통해 미래를 담보하는 결과물의 총체이다. 지금 정치인들이 일삼는 포퓰리즘은 현재의 잔치에만 혈안된 것이다. 청나라의 서태후가 자신의 생일잔치에 청나라 1년 예산의 1/3을 사용하며 현재만을 즐기다 신함대를 구축 못해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멸망의 길로 간 것과 다르지 않다.
포퓰리스트들은 성경으로 볼 때 거짓 선지자와 똑 같다. 하나님의 계시를 전파하는 선지자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거짓을 예언하며 자기 이익만을 도모하는 자들이다(마 7:15; 24:11, 24; 행 13:6; 계 16:13). 예레미야가 유다 왕국의 멸망을 선포하며 바벨론에게 항복을 종용하자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몰아붙여 체포하고야 만다(렘 20:1-6). 좋은 말로 사람들을 현혹한 바스훌이 오히려 거짓 선지자였다. 아람과의 전투에서 아합 왕이 승리할 것을 거짓으로 예언한 400명의 선지자들도 거짓 선지자들이었다(왕상 22:6). 신약에서도 구브로 섬에서 바나바와 바울의 복음 사역을 훼방했던 마술사 엘루마(행 13:6) 처럼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많았고 백성들의 귀에 솔깃하며 구미에 당기는 예언을 하면서 왕과 백성들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며 싫은 소리 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보다 항상 우위에 있었다(렘 5:31) 예수님이 이들을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마 7:15)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나 포퓰리스트는 결과가 말해준다. 예수님은 열매로 이들을 판단하여 미혹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셨다(마 7:16-20; 12:33-37).
정치인들은 결코 국민을 무식한 사람들로 대해선 안된다. 포퓰리즘은 국민들을 무매하다고 간주하고 무매한 국민들을 이용해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심산과 다를게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서 후손들과 미래를 걱정하며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대한민국은 선배들이 어떻게 지킨 나라인가. 숱한 죽음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 나라를 물려주지 않았나. 진정 나라를 위하고 후손을 걱정하는 정치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