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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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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원운동의 효시 통해 한국교회 정체성 논증”

GOSPE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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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기도원 제4회 학술세미나’ 요약 제4회 …

논찬 김정회 박사, “김명구 박사 발표, 나운몽 신학 연구하는 기준점 제시”

7. 여언

가난한 데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비관적 생활 태도를 갖게 된다. 자아에 대한 존엄성도 사라지게 된다. 스스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기도원은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해 주는 곳이었다. 그런 신념 아래 성령운동이 일어났고 교회 부흥으로 연결되었다. 나운몽의 용문산이 그런 역할을 했다. 기독교의 복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에 확신을 심어 준 것에 그치지 않고 구원의 사명을 땅과 나라로 확장시켰다. 구령과 구국의 두 축을 연결시켰고, 성령운동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실행하려 했다.

나운몽이 활동할 때 사회진화론적 철학이 사회를 이끌고 있었다. 시대의 그늘이 크게 드리워져 있었던 때였다. 삶을 꾸려 가는 것이 힘에 겨웠고 생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인 고통과 우환이 대중들을 휩쓸고 있던 때였다. 경쟁과 승부에서 패배한 ‘약한 자’들이 넘쳐 났던 시대이고 스스로 ‘상한 영’이라는 고백이 강했던 시대이다.

나운몽은 시대를 극복했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성서의 진리를 향한 고뇌 의식과 십자가 신학, 그리고 국가 구원의 의식을 통해 기독교인들의 사명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시대를 이기게 한 것이다.

‘아실 나운몽 신앙유형의 한국교회사적 위치’

논찬 : 김정회 박사(서울장신대 외래교수) “한국교회 정체성 회복 차원에서 나운몽 신학 논증”

지금까지 연구들은 대부분 성령운동을 나운몽 신학의 핵심으로 보고 그 현상에 따라 신비주의 영성가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단논쟁을 겪으면서 각인된 나운몽에 대한 비판을 한국교회사적인 고찰 없이 수용해 버린 결과로 보여진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나운몽의 국가관을 분석하기도 했지만 그의 사상이 한국교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 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연구는 바로 이 두 지점 한국교회의 영적인 영역과 국가구원의 영역을 통해 그가 한국교회의 본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나운몽의 신학을 보다 객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신학이 한국교회 전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은 (왜 그분을 이해해야 하는지 신비주의라는 평까지 들어야 했던)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나운몽의 신학은 다음과 같다.

1. 한국 복음주의 신앙의 전통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나운몽의 회심의 과정에도 나타나지만 조선출, 송창근 등 한국교회의 지적 어른들이 나운몽의 신앙을 신뢰했다는 것으로 분명해졌다. 나운몽의 신학이 영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농촌운동을 비롯한 건국운동에 참여한 것은 그의 신학적 좌표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나운몽에게서 영적 영역과 국가구원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개인 신앙에 머무는 것이 아닌 복음의 확장이고 나운몽이 복음주의의 전통 안에 있음을 증명한다.

2. 기도원 운동의 발현지로서 성령운동의 해석이다.

발표자는 나운몽의 성령운동이 어떻게 역사적 흐름 속에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용문산 기도원 운동은 성령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용문산 기도원을 시작으로 기도원은 급격히 증가한다. 각 교파 목회자들이 기도원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기도원으로 몰려들었고 은사운동이 한국교회 저변에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용문산 기도원의 정체는 두 가지로 등장한다. 구령과 구국이다. 용문산은 유일신 하나니과 성령의 역사를 보다 강조했고 절대적 존재에 대한 복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도록 했다. 나운몽은 구국제단을 만들었다. 개인의 기도가 용납되지 않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만을 해야 했다. 국가구원은 외적 힘이 아닌 기도운동에 있음을 철저히 믿었다.

3. 국가구원 의식 속에서 표출된 반공의식이다.

그의 국가구원 의식은 단순히 영적인 기도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반공운동에 나선 것이다. 그는 성경을 근거로 공산주의를 거부했다. 데모대를 조직해 판문점을 향해 북진하기도 했고 미군과 충돌하기도 했다.

결국 나운몽의 구국은 복음화를 이루는 것이다. 복음화되면 공산주의는 자동적으로 물러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운몽의 국가구원관은 곧 한국교회 국가구원관의 발현이었다고 해석한다.

- 마무리

나운몽의 용문산기도원 운동이 한국교회에 크게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기성교회들로부터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각 교단은 나운몽의 이단성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연세대의 김찬국은 용문산 기도원 운동의 현상이 결코 낯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신학적으로 논증한다. 발표자는 김찬국의 견해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나운몽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구조가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본래성을 떠나지 않으며 오히려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국가구원으로까지 복음을 확장하려고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오늘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개인구원과 국가구원의 영역을 너무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것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논문의 백미는 기도원 운동의 효시였던 나운몽의 용문산기도원을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측면에서 논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옳고 그르냐의 이분법적 해석이 아니라 나운몽의 신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왜 그 시대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데 주력함으로써 나운몽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한국교회의 개인구원과 국가구원의 관점에서 나운몽의 신학구조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과 나운몽의 신학구조를 명료하게 다루어 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나운몽을 연구하는데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편집자 종합

이상으로 ‘아실 나운몽 신앙유형의 한국교회사적 위치’를 주제로 한 김명구 박사의 발제와 김정회 박사의 논찬을 요약하여 실었다. 고 나운몽 목사님의 신앙 운동은 기도원에서 시작되고 수도사들을 통해 전국에 기도원 분원을 통해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나운몽 목사님의 신앙 운동을 기도원 운동이라는 틀에 가둬 볼 수 없는 이유는 교회 없는 동리에 교회 세우기 운동인 일동일교회 운동의 전개, 고등성경학교와 기드온 신학교를 통한 수많은 전도자의 배출, 전국 교역자 집회나 전국 순회전도 집회 등 전방위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도를 위한 일념의 결과였고, 이는 문서, 기도, 구설이라는 삼겹줄 전도운동으로 체계화되고 확대되어 전개되었다. 김명구 박사는 논거를 들어 나운몽 목사님의 신앙운동이 한국교회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밝혀 주고 있다. 이것은 나운몽 신학을 연구하는데 있어 기준이고 근거가 되는 연구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이같은 전방위적인 전도운동으로서 전개된 나운몽 목사님의 성령운동이자 신앙운동은 김명구 박사가 밝혔듯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구령과 구국의 합치 의식의 발현이었다. 그것이 한국교회 부흥으로 연결된 이유이며 오늘날 개인구원과 국가구원의 분리 의식이나 축복신앙과 같은 신앙유형이 한국교회의 폐해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 그 해결점으로서 나운몽 목사의 신앙유형의 본질을 파악하고 복기해야 할 필요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 국가 문제나 시대 문제가 오늘날 다시금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시대를 맞아 시대적 소명과 책무를 다하는 한국교회의 성찰이 더욱 필요한 때를 맞고 있고, 나운몽 목사님이 펼치고자 했던 구국과 구령이 하나되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 의지와 신앙 유형이 다시 접목되고 되살아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