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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정... 그때의 추억

OPINION COLUMNIST

복음시론남궁선 박사서울한영대학교 명예교수GOSPEL TIMES
남궁선 박사 필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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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궁 선 박사

서울한영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사회복지지도자협 대표회장

얼마 전, 딸에게서 손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 어렸을 때가 생각이 나 웃음을 지었었다.

그 이야기는 다름이 아니라, 어린이집을 마치고 나올 때 ‘엄마만 오지 말고 다른 친구들처럼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오면 좋겠다’고 했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마 내가 이 손주만한 때가 아니었나 싶은데, 엄마에게 ‘다른 친구네들처럼 우리는 이사를 안가느냐?’고 떼를 쓰며 투정을 부렸었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자가(自家)를 가진 우리는 이사를 다니지 않았던 것인데, 그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이 일을 생각하며 9월에 추석이 있는 것을 보며 투정을 부린 어린 시절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세대를 살아가며 마음을 감추어야 했던 지금은 투정을 부릴 상대가 없어진 것이 차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투정... 그때의 추억’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의 경제가 세계 10위권에 진입하여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으나 우리의 성장기에는 6·25전쟁의 잔재가 널브러진 때였으니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놋그릇을 닦느라 분주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추석빔’을 입고 좋아했던 장면도... 추석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마음에는 저마다 다른 기억 하나씩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즐거운 명절에 투정도 참 많이 부렸던 것 같다. ‘왜 나만 심부름을 해야 해?’ ‘나는 이거 먹기 싫어.’ 하는 등의 투정이 있었으나 부모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허허 웃음으로 받아들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참 이상하다. 그때의 투정이 지금은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을 깨닫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투정을 받아줄 가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투정은 아무에게나 부리는 것이 아닌 것은 사회생활을 하며 마음의 문이 하나 둘 닫혀지며 마음의 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으니, 투정은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 가족에게 했던 투정은 어쩌면 사랑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인간의 투정은 가족에게만 향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도 사람들은 참 많이 투정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나왔다. 그런데 광야에 들어서자마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다. 물이 없다고 원망했다. 길이 힘들다고 모세에게 따졌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셨는데도 그것만 먹는 것이 싫다고 투정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느냐?’는 대목에서는 ‘왜 낳았냐?’고 투정부리던 생각이 투영되는 것은 웬일일까 하며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묻는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서운해 한다. 내가 원하는 길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왜 하필 제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왜 저 사람에게는 주시면서 저는 안 주십니까?’고 투정을 했던 어린 신앙인의 시절을 돌이켜 보며, 우리의 기도 가운데도 감사보다 투정이 더 많았던 순간이 있었음을 깨달으며, 하나님께서 그 구원의 손길을 놓지 않았으매 감사의 마음이 든다.

시편을 읽어보면 시편 기자 역시 하나님께 자신의 답답함을 그대로 토로한다. “어찌하여”라는 질문이 반복되고(시 22:1,7,11) 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인간의 솔직한 마음을 품으셨듯이,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의 투정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고향을 찾았으나 부모님이 안 계시면, 형제들만 모인 자리에서는 투정을 받아 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는 가족에게도, 하나님께도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내어놓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는 오늘의 추석이 ‘투정할 그때의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