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 주간 신문“성경으로 과거를 해명한다! 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한다! 성경으로 미래를 예언한다!”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합니다
성경과 현실

성경과 현실

불행한 이 시대에 참 복음 들고 나서야

GOSPEL TIMES
이 기사 공유

물질 쫓는 결국, 파멸이 기다려 … 오늘날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증명

매년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경제, 정치 지도자들의 잔치 다보스 포럼이 닷새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27일 폐막됐다. 이번 포럼에서는 현 세계경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세계의 고민과 위기의식이 드러났다. 헤지펀드 거물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은 “지금의 혼란은 자본주의의 자업자득이며 시장원리주의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또한 경제위기뿐 아니라 오늘날의 지구촌의 수많은 위협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글로벌 지도력의 공동구축 필요성이 논의됐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나? 날로 문명이 발전하고 물질은 넘쳐난다.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속속 생겨나고 음식물은 먹다 남아 버려질만큼 풍족하다. 모두가 이렇게 산다면 그나마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구촌에 사는 극히 소수가 누리는 호사에 지나지 않는다. 한가지 모순은 바로 돈이 이것들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나 국가에게 문명은 오히려 고통일 뿐이다. 현재 세계에서 제때 먹을 것을 먹고 사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

내일 아침이면 굶주림으로 인해 5만명의 생명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뒤이다. 지구촌은 매년 1,500만명이 굶어 죽고 있는 참극의 세상이다. 지구촌의 절반의 인구는 하루 2천원도 안되는 돈으로 굶주리고 있다. 10~20억명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10년전 전세계 176개국 정상들은 식량정상회담을 열고 오는 2015년까지 기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합의했지만 10년후인 지금 기아인구는 오히려 2,000만명 이상이나 늘었다.

식량이 전세계인이 먹기에 부족해서일까? 오늘날 전세계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비만하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양인 하루 3,500칼로리의 곡물을 생산한다. 게다가 채소, 콩, 견과류, 과일, 가축과 생선 같은 다른 식량자원을 합산하면 한 사람이 매일 2kg의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는 세계인구의 2배까지도 먹일 수 있는 양이다. 그러나 전세계의 40%의 식량은 더 잘먹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가축의 사료로 쓰이고 있고 팔리지 않은 곡물은 산더미처럼 쌓여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여서만 굶는 것은 아니다. 신년초 영국 공공정책연구소는 ‘빈곤탈출보고서’를 통해 “영국 어린이 140만명은 부모 중 한 명이 직업이 있어도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에선 지난해 10명중 1명 이상이 실업자로 조사됐다. 미국 국무성의 ‘기아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12%인 3,550만명이 식료품을 구입할 돈이 없어 굶주린 생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기과열을 우려할 만큼 세계최고의 성장속도를 자랑하는 중국에서도 2억명 이상이 하루 1천원 미만의 돈으로 극빈생활을 하고 있다.

먹고 남을 만큼의 식량을 쌓아두고도 지구촌 사람들이 다 먹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돈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양식을 살수 없다. 돈이라는 메카니즘이 세상을 지배하는 한 음식이 남아돈다고 굶는 사람에게 거저 줄수 없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이를 계속 더 심화시킨다. 부자는 더 큰 혜택을 누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가지려 하고 부자나라는 더 부유한 나라가 되기 위해 성장정책에 매달린다. 돈이 있는 곳으로 돈이 몰리는 쏠림현상이 가속화되고 이에 희생되고 소외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난다. 부의 편중과 양극화는 자본주의의 최대 폐혜이다.

다보스포럼에서 자본주의의 세계최대 수혜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자본주의의 심각한 약점을 고백하고 나섰다. 그는 “자본주의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를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부르자”고 주창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적선이 아니라 의무가 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나오지 않고는 인류의 미래는 희망이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두도록 명령하셨다. “제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출 23:11). 매3년에 소산의 10분의 1을 저축하라. 추수할 때 과일을 다 따지 말고 이삭을 다 줍지 말라. 다 가난한 자들을 위함이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고로 내가 네가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신 15:9).

성경은 돈을 쫓는 것은 오히려 불행을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9-10). 그러나 돈을 쫓아왔던 오늘날의 거대 시스템인 자본주의와 산업화 문명은 경제위기뿐 아니라 양극화, 기후변화, 환경오염, 전염병, 에너지자원고갈, 물부족을 비롯 심각한 지구촌의 위기를 만들어내고있다. 문명은 혜택 받았던 소수자들까지 포함하여 지구전체에 공동의 재앙을 준비하고 있다. 한창 축제분위기에 들떴을 무렵, 축제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늘고 먹을 음식은 줄고 쓰레기는 넘쳐나고 이제 축제마저 파장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있다.

하나님은 불행한 이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명령하고 계신다.

첫째,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독교가 되야 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셨다(마 25:34-40). 가난한 자를 돕는 돈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돈이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잠 19:17). 가난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일관되며 강렬한 것이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 21:1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눅 12:33). 성경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선 거저 주거나 꾸어주되 이윤을 남기거나 되돌려 받겠다는 생각 없이 주어야 하며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신 15:10).

둘째, 물질의 축복을 구치 말아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마 6:31,32),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물질이, 돈이 구원주가 아닌데도 여전히 그것에 매달려있는 인류에게 어서속히 돌아서라고 성경은 말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을 ‘참 복음’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2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