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리아 철군은 배신의 세계상 상징 …
오직 하나님 의지하는 한민족 돼야 (시 121:1~4)
당시까지 친미 정권이던 이라크 팔레비왕조를 몰아내고 신정정권을 수립한 호메이니 정권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란으로 대표되는 반미세력 봉쇄 및 타도로 바뀌었다. 이는 이후 중동 분쟁의 토대가 됐다. 이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미국과 사우디를 등에 업고 이란-이라크전을 일으켰다.
그러나 8년 간 진행된 이란-이라크전은 이란혁명만 공고히 하고 후세인 정권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반혁명 전쟁의 총대를 멨던 후세인은 사우디와 쿠웨이트로부터 빚 독촉만 받자,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전격적으로 점령했다. 최대 석유수출국 사우디까지 위태롭자, 미국은 이번엔 다국적 연합군을 조직해 1991년 2월 쿠웨이트를 탈환하는 걸프전을 주도했다. 분쟁의 씨앗이 여러개 더 심어졌다. 이때부터 이란과 이라크의 이중 봉쇄가 미국 중동정책의 근간이 됐다.
또한 걸프전은 반미 이슬람주의 세력을 자극했다. 미군의 사우디 주둔에 격분한 오사마 빈라덴은 반미 투쟁에 나섰다.
걸프전 때 미국은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과 시아파를 선동해 봉기시킨 뒤 모른척했고 후세인은 화학무기로 쿠르드족을 몰살했다. 빈라덴은 알카에다를 조직하고 2001년 9·11 테러를 감행했다. 미국은 알카에다보다도 반미로 돌아선 후세인 정권 타도를 먼저 생각했다.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정보를 조작하면서까지 미국은 유엔의 반대를 무시하고 2003년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영국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합세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은 미국과 영국의 무모하고 무책임한 전쟁이었다. 2003년 2월 세계 각지에서 이라크전 반전시위가 벌어진다. 9·11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라크를 상대로 한 패권국가의 횡포를 반대하는 시위였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시위에도 불구하고 미 군부는 전쟁의 시간을 원했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언론에 이라크가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는 거짓정보를 흘렸다. 미 군부는 두 번째 이라크전을 통해서 이란, 시리아 등을 견제하는 전략을 세운다. 미군은 2003년 12월 과거 미국의 군사적 후원을 받았던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다. 후세인 체포작전 이후 이라크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알카에다의 폭탄테러,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라크 난민,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무력충돌 등으로 중동의 화약고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제야 미국 정부는 전쟁의 뼈아픈 대가를 체감한다. 2007년 1월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2011년 말 미군은 아무런 후속 대책 없이 이라크에서 철수한다.
2016년 영국 정부는 7년간의 진상 조사 끝에 이라크전의 이유가 됐던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도, 영국이 이 전쟁에 참여할 만한 급박한 위험도 당시에 없었던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한 장의 메모도 공개됐다. “무슨 일이든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다” 이 로맨틱한 표현은 슬프게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이라크 참전 결정을 앞둔 2002년 6월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비밀 메모였다.
“이후 계획이 완전히 불충분했다”고 한 존 칠콧 이라크전 진상조사위원장의 결론대로 미군 4,424명, 영국군 179명, 이라크인 16만 명이 희생된채 2011년 12월 끝이 난 이라크전 이후 이라크와 시리아는 참혹한 내전에 휘말렸다. 미국 네오콘들은 중동에서 친미 자유민주주의 질서 전파를 꿈꾸었지만, 후세인 정권 타도는 중동에서 거대한 세력 공백과 혼란, 반미 전선을 낳았다.
후세인 정권은 반미였으나, 이슬람주의 세력과 이란을 견제하던 역할을 했다. 그런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자, 반미 전선은 더 커졌고,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세력이 이라크에서 부활하고, 이란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라크전쟁이 수렁에 빠진 2010년 12월 ‘아랍의 봄’으로 시리아에서는 2011년부터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과 사우디는 반미세력인 바샤르 아사드 정권 제거에 나서 반군을 지원했으나, 그 지원은 이슬람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탄생만 낳았다. 미국의 시리아 반군 지원이 이슬람국가(IS)에게 더 좋은 기회로 작용한 것이다. IS 수괴 알바그다디는 반미의 토양이자 내전의 혼란에 빠진 이라크에서 빠르게 세력을 넓혔고, 시리아의 강경 수니파 반군까지 흡수, 2014년 6월 IS라는 자칭 국가 수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결국 미국과 영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내전을 촉발했고 최악의 테러 집단인 IS의 출현과 대규모 시리아 난민 사태의 원인이 된 셈이다. 이란혁명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은 반미 전선 확대와 IS를 주축으로 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테러의 시대를 열었다. 뒤늦게 IS가 더 위급한 적이라고 판단한 미국은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무장시킨 시리아민주군(SDF)을 조직해 이슬람국가를 격퇴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2017년 IS의 수도인 락까를 탈환하고 지난 3월 IS의 최후 거점인 바구즈를 함락시켰다. 지난 5년에 걸친 IS 격퇴전 과정에서 쿠르드족은 15만 명을 동원해 1만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숱한 희생을 치루면서 독립국가의 열망을 키워가던 쿠르드족의 득세는 쿠르드족이 흩어져 살고 있는 터키·이란·시리아·이라크 모두에게 위협이었다. 2018년 말 이라크전쟁으로 성립된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가 주민투표를 통해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이라크 정부는 이란과 터키의 지원을 받아 자치정부를 침공해 영토의 40%를 점령했다. 최근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의 서곡이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동은 열강들의 대리전쟁의 각축장이었다. 지속적인 외세의 침략과 정치공세로 화약고로 변해버린 중동지역은 IS 수괴 알바그다디가 사망한 지금 더욱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첫째, 세계인이 열망하는 테러의 종말이 과연 올 것인가. 이번 IS 수괴 알바그다디의 사망으로 과연 IS가 괴멸되고 세상에 테러를 종식시킬 수 있을까. 답은 “천만에”이다. 터키군의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 공격으로 쿠르드군이 억류 중이던 IS 부대원 780여명이 집단으로 탈주했다.
이미 올해 8월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IS의 재건 속도가 빨라지면서 조직원이 1만4000~1만8000여명까지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탈주한 IS 부대원들이 합류하면 IS 재건은 시간문제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더 큰 문제는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를 수 있게 만드는 토양이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2011년 아무런 대책 없이 이라크를 철수해 지금의 대혼란을 만든 미국의 그림자가 다시 시리아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모습에서 재현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