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간 입장 차 확대 위험까지 …
역사 이래 가장 중요한 시점 하나님 도우심 바래야(시 121:1,2)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했지만 대북제재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북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건설을 위한 투자와 원조이고, 이를 위해서는 대북제재 해제가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한다. 대북제재 해제는 미국이 키를 쥐고 있으므로 북한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네 번째 방북 계획 취소 이후 줄곧 화해 제스처를 취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5일 남측 특사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풍계리(핵실험장)는 핵실험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하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쇄는 향후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의 완전 중지를 의미한다”고 ‘미래핵’을 포기했음을 밝혔다. 또 지난달 10일 미 백악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9월 18일 3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 것이다. 따라서 3차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은 북미 간 ‘비핵화 교착’에 대한 돌파구 마련에 쏠렸다. 3차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평양공동선언’에서 북한은 동창리 엔진실험장 영구 폐기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하는 영변 핵시설 조건부 폐기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환영의사를 밝히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요청한 2차 북미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는 동력이 됐다.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의 성과이다.
남북 간에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선언이 쏟아졌다. 남북 간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과 전쟁 위험 제거 합의였다. 평양선언은 사실상 남북 간 불가침 합의였고, 남북 간 종전선언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남북은 또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하고 서해상 평화수역 및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고,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를 시범적으로 철수하며, 공동 유해 발굴 사업을 진행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무장화하기로 합의했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 남북 간 교류협력과 접촉,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과 현대화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대책도 강구하기로 했다.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반도는 앞날을 알 수 없는 안개 정국이다. 오히려 한·미 간에는 온도차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27일 뉴욕 한·미 정상회담 후 유엔총회 연설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면서 “대북 제재는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언론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충분히 논의했고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될 것”이라며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종전선언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대체로 형성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미국은 비핵화 전 제재유지에, 한국은 북한에 비핵화 동력인 신뢰를 주기 위한 빠른 종전선언에 방점이 찍혀 있다. 남북 평화 무드에 취한 탓인지 지난 10일 국감장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가 번복하고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 장관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11일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거푸 말했다. 트럼프가 ‘승인’이라는 표현으로 한국의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한 것은 분명 잘못됐지만, 그만큼 트럼프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불만을 표출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9월 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장관과 통화하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지난달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해 한국 정부에 격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화를 낸 것은 남북 군사분계선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강 장관은 국감장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자신에게 불만을 표시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한국 정부가 북한 비핵화 압박용인 대북 제재 해제를 검토하는 가운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발언으로 공개적인 ‘신랄한 질책’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강경화 장관에게 남북이 맺은 군사 합의안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한 바 있음도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사전 실무 조율 절차가 없었음은 물론 관련 사항에 대해 한국 정부로부터 전달도 제대로 받지 못한데 따른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가디언은 이번 사건이 대북 정책과 관련 그 동안 누적됐던 한·미 간 뚜렷한 입장 차이가 급기야 공개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역사 이래 가장 숨 가쁜 대전환이 일어나는 엄중한 시대에 한·미 간 이 같은 엇박자가 나고 있는 상황은 대단히 위험하다.
특히 아직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이 찔끔찔끔 비핵화 ‘거래’에 나서면서 주변국이 북한의 페이스에 끌려가는 인상이다. 단적인 예가 어렵게 이뤄진 폼페이오 장관의 지난 7일 4차 방북에서 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의 불가역적 해체를 확인시키기 위해 사찰단을 초청하면서도 9월 평양선언에서 약속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영변 핵 시설에 대해서도 아직 나온 게 없다.
폼페이오 장관은 4차 방북 후인 9일 “진정한 진전을 이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은 많다”는 총평을 잊지 않았다.
아직은 북한의 비핵화가 희망일 뿐이다.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결과에 대해 북한 비핵화 논의에 어떤 구체적 진전이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고, 사실상 북한은 비핵화 관련 새로운 조치를 약속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비핵화 진전 부실” 평가를 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은 북한의 비핵화 행보를 아기 걸음마 수준에 비유했다. 뉴욕타임스는 미 과학자연맹의 애덤 마운트 선임연구원을 인용해 “핵실험장 사찰 허용은 북한이 대화를 지속하고 싶다는 강한 신호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군축 조치는 아니다.”면서, “그동안 상징주의에 만족해온 행정부에 제공한 또 다른 상징적 조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무기 폐기 자체에 관한 선언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