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월부터 가로쓰기 체재로 바뀌었으며, 교계 주간지로서는 처음으로 주2회 발간했다.
(사진은 주2회 발간의 일요판과 수요판 첫호.)
창간 66주년 맞은 복음신문의 사명 …
하나님의 분부 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칠 것(딤후 4:7)
시대 속 복음으로서 복음신문의 정신
이 같은 복음신문에 맡겨진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초심, 즉 복음신문의 창간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세상 소식을 전하는 신문은 많아도 하늘 소식을 전하는 신문은 없다”라는 것이 고 나운몽 목사의 복음신문 창간 일성이었다. 하늘 소식, 즉 복음 전도지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분명히 한 것이다.
복음은 옛 역사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 역사하는 능력이다. 그 시대 마다 그리스도인을 통해 섭리하신다. 따라서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시대와 주변과 국가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복음신문의 사시 역시 이같은 인식이 발판이 된 것이다. “성경으로 과거를 해명한다. 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한다. 성경으로 미래를 예언한다.”라는 복음신문의 사시는 철저히 말씀 안에서 기독인의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 일깨우려는 복음신문의 책임과 사명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 나운몽 목사가 이끌었던 한국전쟁 후 50~70년대의 성령운동은 단지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는 대사회적 역할과 기독교적 소명에 촛점을 맞춘 종교적 사회운동이었다.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사명감에 충실했던 전후 한국성령운동은 지금처럼 개인에게 침잠한 교회상과 달랐기에 한국사회를 선도하는 역할과 선한 이미지로 수많은 일반인을 교회로 이끌 수 있었고 세계 유례없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일구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희생과 사랑을 강조하므로 구국적 종교로서 기독교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고, 결국 이같은 이타적 실천과 이미지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을 도운 자양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정신 위에 복음신문의 60년 역사가 있다.
고 나운몽 목사는 ‘작은 나’인 개인이 아니라 ‘큰 나’(1956, 생명있는 사상과 주의, 나운몽 저)인 국가와 민족을 살리는 기독교를 지향했다. 나라와 민족이 다 같이 사는 이타적 기독교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은 썩을 것을 구하는 사상이다”며 각자의 이기심이나 기복신앙을 버리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참 신앙의 길임을 강조했다. 그에 대한 실천으로 “기독교는 민족적인 박애주의에서 전 세계적인 박애주의로 확장되는 것”이라며 민족복음화운동을 시작했다.
이같은 그의 철저한 구국애족사상은 당시 그가 주도하던 성령운동의 뼈대였다. 실제로 그가 평생에 걸쳐 추진했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운동, 한민족복음화운동, 평화통일운동, 교회 없는 동리에 교회 세우는 일동일교회운동 등은 개인을 희생하므로 얻을 수 있는 기독교 박애 정신의 실천운동이었다.
줄기차게 이어 온 복음신문의 사명
따라서 복음신문은 성경을 기준으로 교회와 민족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그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했다. 가치적 중심 없이 격변기에 놓인 세상을 향해 영원불변의 진리인 성경에서 기준을 찾아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민족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복음신문은 세상과 복음, 성경과 현실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시대의 등불이 되어왔다. 그 길을 줄곧 66년을 걸어왔다. 올해 10월 1일로 복음신문 창간 66주년을 맞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비추는 불을 밝혀온 복음신문이 걸어온 66년은 기독 언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시골 구석구석 어느 곳에서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편집 방향도 쉬운 문체로 제목과 활자도 되도록 크게 썼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 2:2)”는 성경 말씀대로 달려가면서도 복음의 말씀이 우리의 눈에, 뇌리에, 심장에 박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복음신문이 큰 활자에 쉬운 문체를 쓰고, 교계지 최초로 지면을 가로쓰기 체제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복음신문의 66년은 전도 사명과 시대적 소명의식으로 편집기자와 독자들이 똘똘 뭉친 신앙인들의 피와 눈물이 만든 기록이다.
66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참 신앙인들의 위대한 유산이다. 복음일보 때부터 이어온 1면 성경과 현실 난은 66년이 지난 지금도 신앙인으로서 시대와 소명 앞에 서게 한다.
오늘날 성장의 과실에 취한 한국교회가 개인의 안위와 축복 신앙에 도취해 복음의 참뜻을 변형시킬 때도 오직 성경을 중심하기에 지속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일깨우고 시대의 빛으로 나설 수 있었다. 본지를 거쳐간 임직원 및 기자들은 출신 교단을 망라하고, 예장통합·합동, 기감, 기하성, 예성, 기침, 웨슬레 등으로 현재 각 언론사나 교단, 목회자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복음신문은 앞으로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채 세상과 교회의 벽이 날로 높아가고, 다원화되고 급변하는 현실에서 진정한 복음의 한줄기 빛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복음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참된 복음이 되게 하기 위해, 국가와 민족이 바른길을 가기 위한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복음의 참뜻을 전하는 기독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힘든 외길을 갈 것이다.
시대의 불 밝히는 복음신문이 갈 길
특히 고 나운몽 목사가 남긴 극상품 포도나무(사 5:2)의 유산을 이 시대에 살리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나운몽 목사가 펼친 운동은 크게 네 가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영성회복운동(성령운동), 복음화운동(민족을 그리스도께), 애향운동(하나님 사랑 나라 실현), 생활운동(교육·근면·공동체 회복)이다. 그가 펼쳤던 애향숙 운동의 관점을 이 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성경적 애향은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굳건한 믿음을 발판 삼아 하나님이 맡기신 땅과 공동체를 사랑하고 섬기는 청지기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애향숙이 지역과 민족을 품었던 전도와 구국 정신과 만나는 이유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애향숙 운동 2.0”이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시대적 모델이 필요하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이타적 신앙이 필요하다. 교회는 ‘교회 없는 동리에 교회 세우기’의 일동일교회 정신으로 지역소멸에 대응하고, 지역 사회 공동체를 섬겨야 한다. 청년 선교와 서로 나누고 돌보는 교회 공동체의 강화를 통해 영속적 전도를 위해 다음 세대를 세워야 한다. 현대의 AI와 디지털 기술은 복음을 확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만약 고 나운몽 목사가 지금 계신다면 민족복음화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셨을 것이다. 영성운동의 본령을 회복하는 것을 중심축으로 하여 전국을 다니며 부흥회를 여는 것뿐 아니라 AI와 SNS 등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애향숙을 지역 공동체 회복 운동으로 확장하며, 청년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비전을 심어 주고, 북한과 동북아를 향한 선교를 준비했을 것이다. 이로써 나운몽 장로가 꿈꾸었던 구국·복음·애향·민족의 축이 21세기의 언어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 점에서 오히려 지금이 그의 정신을 다시 펼칠 수 있는 시대이다.
나운몽 목사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유형의 교회나 조직이 아니라 “기도와 복음, 그리고 민족을 향한 책임을 함께 품는 신앙”이다. 그 정신을 오늘의 시대에 이어 간다면, 말씀과 기도, 회개를 바탕으로 영성을 회복하면서 공동체 회복, 미래세대 양육, 다층 선교, 한국교회의 연합을 함께 추구하는 방향이 설정될 것이며 그의 원래 비전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길이 될 것이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