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 논의 바람직한가? … 개헌의 필요성과 의의,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제헌절을 기점으로 개헌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헌정 61돌을 맞은 기념식장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은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소명”이라며 개헌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이미 정치권에선 개헌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임기를 1년여 앞둔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한바 있었다. 당시 여야는 18대 국회에서 개헌논의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해 6월 헌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창립했다. 회원 의원만 개헌 발의 정족수를 넘긴 186명으로 각계 의견과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이와 별도로 지난해 8월엔 의장 직속으로 헌법 개정에 대한 의견수렴 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설치됐다.
자문위는 이달말이나 내달초경 최종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민간단체로서 헌법 논의를 선도해온 대화문화아카데미도 3년에 걸쳐 10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헌법 개정안을 최근 발표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헌법개정의 필요성이 한국사회에 무르익었음을 방증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 대다수(60%)가 헌법개정에 공감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론 서거 이후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결말을 빚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더 확산된 상황이다.
22년전 9차 개헌된 현행 헌법은 국민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다는 절박함이 탄생시킨 시대적 산물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되 권력형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고, 사생결단식 대결구도와 정치불신, 지역주의가 심화돼왔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도 5년 단임제로 임기중 한 일에 책임을 지지 않으므로 단기적인 성과에만 급급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임기 중반부터 일찍 심각한 권력 누수(레임덕)에다 차기 대권 싸움까지 벌이느라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할 일을 할 수도 없는 기형적 대통령제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견제와 균형을 위한 권력분산과 4년 연임제를 실현하는 것이 시급하다. 개헌은 또한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시대적 요구의 과제도 안고 있다. 다원화된 현대 민주사회의 다양한 권리와 환경·정보·지방분권 등 새로운 흐름도 반영해야 한다. 국민주권 강화 차원에서 의회민주정치 시스템도 보완돼야 하고, 특히 통일조국의 미래도 담아내야 한다. 개헌은 정파나 이념, 지역주의를 벗어나 시대적 당위와 역사적 소명으로 이뤄내야 할 민족적 과제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후 1948년 5.10 총선을 통해 선출된 제헌의원들은 그달부터 매일 회의를 열었다. 전문지식도, 민주주의를 배운적도 없었지만 애국심 하나만으로 밤을 새웠다. 하루빨리 자주·자유·민주·독립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두달도 안된 짧은 기간에 제헌 헌법을 탄생시켰다.
그 당시엔 회의규칙을 정한 국회법도 없었고, 무소속까지 무려 14개 정당소속 의원들이었지만 하나같이 새 나라 건설의 꿈을 위해 단결했다. 하루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서로 자제하고, 양보하고, 절충해서 헌법을 만들고, 정부조직법을 만들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소간 세력 대립이 극을 치닫고, 공산주의의 위협이 넘실거리고, 피폐할대로 피폐한 남한 경제 등 내외에 난관이 넘쳤지만 일치단결했다. 선거인명부 등록자의 95.5%가 총선 투표에 참가해 대한민국 건국의 염원을 증명했다.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은 새 국가의 헌법을 이렇게 온 국민의 염원을 담아 탄생시켰다.
61년이 지난 오늘날의 제헌절에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여야는 제헌절날을 전후해 사상 초유의 ‘본회의장 동시 점거’ 장면까지 연출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억지와 힘겨루기로 헌법에 규정된 의회민주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짖밟고 있다.
밤샘하던 의원들은 통닭을 시키고 수박과 과일까지 챙겨 파티를 벌였다. 양말을 벗고 슬리퍼를 끌며 본회의장을 돌아다니는 의원도 있었다. 18대 국회 출범부터 싸우느라 임기 개시 6개월이 지난 후에야 원구성을 했고, 개원 이후 42일 동안이나 의장 선출을 하지 못했다. 헌정 61년 사상 초유의 기록들이다. 18대 국회의원들은 제헌절날까지 289일의 개회일수 중 절반이 넘는 153일을 파행으로 흘려보냈다. 통탄할 일이다.
경제위기에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비정규직법 같은 절실한 민생법안 하나도 합의하지 못하는 여야가 국가 틀을 바꾸는 개헌을 어떻게 논의하겠나. 그렇지 않아도 다원화된 현대 민주사회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기란 지난한 작업이다.
개헌논의가 자칫 우리 사회의 온갖 부문의 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이념갈등까지 불거져 혼란만 야기할 우려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개헌논의가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국회가 다양한 주장과 갈등을 수용해 조정 및 여과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민생과 여론에 아예 귀를 막고 자기 주장에만 열을 올리는 의원들,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워진 의원들이 개헌을 주도할 역량이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
우리가 싸우며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사이 세계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6일 세계은행(IBRD)이 발표한 ‘2008년 국가별 경제규모 순위’는 추락하는 한국 경제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해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5위로 또다시 떨어졌다. 2003년도에 세계 11위를 마지막으로 해마다 인도, 브라질, 러시아에 이어 작년엔 호주에 뒤쳐지면서 5년새 4단계나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10위권 진입은 커녕 20위권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소득(GNI)도 1만5000~1만7000달러로 2년연속 추락할 전망이다.
고용사정 악화가 계속되고 소득감소에 부채, 이자부담까지 늘면서 내수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경기침체로 수출이 성장을 견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수부진은 우리 경제 회복에 심각한 타격일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동북아 입지도 불안하다. 미국이 자국문제에 힘겨운 상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할과 비중이 커진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 그리고 현 정부의 대북 무정책이 한반도문제에 있어 한국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통일위업이 안개속에 빠져들고 있다.
오늘날의 대립 정치가 시급히 종결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한 현실이다. 개헌은 이같은 현실문제에 대한 뼈저린 자각의 기반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가의 역량을 총집결하여 미래를 구상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러나 개헌 논의의 최대 복병은 정치권을 비롯해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한 대립과 불신이다. 개헌의 의도마저 의심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상 모든 일엔 화평한 다음에야 일이 있다. 하나님은 다툼이 있는 곳엔 예물도 받지 않으신다.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2~24) 성경은 또한 작은일에 충성한 자라야 큰 일을 맡을수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가르친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마 25:21, 눅 16:10)
시대적 엄중한 과제 앞에 이제 정치권이 해야할 마지막 기회이자 사명이라면 꼬일대로 꼬인 실타래를 먼저 푸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다. 개헌이 통일 조국의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고, 국민 통합의 기틀이 되는 날 대한민국은 축제를 벌여도 좋다. 그날을 위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