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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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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가는 ‘북 핵 불능화’의 위기

높아가는 ‘북 핵 불능화’의 위기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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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 위기 어떻게 될까?... 세계에 형제의 동행 알리고 한국역할 찾을 기회 놓치면 안되

북한이 ‘핵불능화 중단’선언에 이어 지난 2일 ‘핵시설 원상복구’ 방침을 밝히는 등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에 새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북한은 행동대행동 원칙으로 미국이 한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6자 합의상 검증 체계 마련이 테러지원국 해제의 전제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은 검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가적인 지원 약속을 얻어낼 별도의 사안으로 다루고 싶어한다. 반면 미국의 입장은 검증으로 확인되지 않는 핵불능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처한 검증 요구는 과거사이며 현실적 위협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존의 합의시 별도로 다루기로 양해했던 사안들을 다시 끄집어낸 변화였다. 이유는 완벽한 검증체계 마련을 요구하는 미 의회나 네오콘들의 반발에 직면한 부시 행정부가 합의를 밀어붙일만한 동력을 잃은 탓이다.

무엇보다 서로 신뢰의 기반이 없다는 것이 위기의 근원이다. 미국은 북한이 정직하지도 않고 궁극적으로 핵을 제거할 의사도 별로 없는 체제라는 뿌리깊은 인식이 있었는데 약화된 정권 누수의 틈을 타고 강화된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합의에서 벗어나 집안 구석구석을 사찰하려 한다며 합의준수가 담보되지 않은 정권말기의 부시행정부와 대화하느니 차라리 얼마안남은 차기의 새 정부에 입지를 높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실제로 북한은 26일 미국 민주당의 전당대회 시점에 맞춰 ‘핵불능화 중단’을 선언해, 부시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실패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하는 민주당에게 공화당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주려고 했다. 북한의 속셈은 5일, 일본과 합의했던 납치문제 조사위원회 설치를 연기한다고 통보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모든 대외관계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미국과의 문제가 선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나 다른 관계의 진전을 서두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이 목이 탔다. 부시 행정부가 임기중 얻은 최대의 외교안보적 성과로 자랑했던 북핵문제가 중대 고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6일 “검증 의정서만 합의되면 우리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즉시 삭제할 수 있다”면서 기존의 검증 착수 주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또한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한.미.일이 긴급 베이징 회동시 중국에 적극적인 중재를 요청했다. 미국은 또 러시아에도 중재를 요청하고 북미간 대화의 뉴욕채널도 계속 가동하는 등 다급해진 모습이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은 근원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시각차를 좁히기 위한 마땅한 중재자가 없다. 중재를 요청한 중국도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남의 나라다. 그러나 지구상에 유일한 동일민족인 우리는 오늘날의 위기에도 아무 역할도 할 수없이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지금처럼 6자회담에 따라다니고 “우려스럽다”는 식의 성명이나 엄포만 놓는 것은 상황변화에 아무 도움이 안된다.

우리가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가. 1990년대 이후 핵문제를 둘러싼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선택이 당장은 성공한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북한을 조금도 나아지게 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북한에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미국의 양당 정책이 북핵 불용을 선결과제로 삼는 데는 한치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과 새 정부를 기다리며 강성이미지를 쌓으면 미국내 강경 여론에 힘을 실어주어 더 불리해진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1994년 북핵 위기시 북한에 폭격을 하려고 했던 것이 민주당 행정부였음을 상기시켜야 한다. 마지막까지 국제여론과 지원을 이끌어낼 북한의 보루가 될 6자회담의 틀로 돌아오라고 충고해야 한다. 건건마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데서 어서 빨리 벗어나야 세계로부터 더 많은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서 목숨처럼 붙들고 있는 핵무기를 이제는 안심하고 놓으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랜 동맹 미국에는 북한의 마지막 자존심을 살려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이행하고 초기 6자의 검증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부시행정부의 마지막 성과를 이룰 유일한 탈출구임을 알려야 한다. 테러지원국에서 해제 후에도 북한을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미국의 카드는 무수히 많음을 상기시켜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남북관계라는 지렛대를 활용해 북한을 설득하고 동시에 한미공조의 틀을 활용해 미국을 설득함으로써 북미간 타협점을 찾게 하는 적극적 역할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임무지만 우리는 할 수가 없다. 남북 간 긴장과 대결국면은 장기화되고, 통미봉남 등으로 북한의 의제순위에서조차 남북관계 개선이 밀리고 있다. 북한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한 이유엔 긴장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가 있다. 북한이 핵 불능화 중단 선언시 “우리 해당기관들의 강력한 요구”를 거론한 이유도 신뢰와 안전보장이 전제되지 않은채 무조건 내놓을 수 없다는 군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탓이다.

한반도 정세 긴장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 폐기의 동기보다는 핵 보유의 동기를 강하게 자극해 장기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한반도 긴장은 가뜩이나 불안한 경제상황에도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국제적인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는 4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올해 순채무국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면서, 북한과 관련된 지정학적 위험을 한국의 신용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요소로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도 한국 정부는 자기 주관도 철학도 목표도 없이 주변정세에 휩쓸려가고 있다. 아직 북한이 굴복해 들어오길 바라는 정책을 붙들고 있다. 역사의 눈을 뜨면 21세기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우리에겐 한반도와 동북아와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과제가 있지 않는가.

기존의 남북 간 합의를 부정하고 남북 간 신뢰가 형성될 수 있는가. 참여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외교부 인적자원을 모두 물갈이만 했지 그에 걸 맞는 대안을 실행했는가. 정책의 연속성이나 상황대응 능력만 현저히 떨어져 외교안보분야의 계속된 수모를 겪어온 게 현실 아닌가.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준비하고 주도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기에 시급한 때임을 이젠 실천으로 옮겨야 하지 않는가.

지금의 상황은 위기가 아니라 절호의 기회다. 북한과 미국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남북 간 대화와 변화를 시도할 기회다. 비핵화가 정체되면 남북관계 역시 교착상태를 면할 수 없게 된다. 테러지원국 해제가 북한의 지상목표가 되어 있을 만큼 지금 북한은 나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숨을 고르며 열강이 포진한 싸움판을 상대로 홀로 서있다. 우리는 중대 기로에 서있는 북한에 다가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한국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실질적인 형제로 나서야 한다. 지금 어려움에 처한 북미관계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야만 미래에 동북아와 국제사회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세계식량계획(WFP)이 요청한 대북 쌀 지원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59명의 모니터링 요원이 북한 전역에 정주할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퍼주기’가 아니다. 우리가 동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음을 흔쾌히 보여야 한다. 우리의 변화를 먼저 알린후엔 어서 빨리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 중국이, 미국이 파견하는 특사를 왜 우리가 이 상황에서 파견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당면문제인 북핵 해결에 중국 특사의 소식만 기다려야 하는가. 더 이상 북한문제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특사 파견을 비롯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할 때다. 지금의 위기는 바로 우리가 제자리를 찾고 대북문제를 풀어갈 주도권을 잡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주인이 될 기회다.

우리는 축복받은 나라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세계적인 기독교의 부흥을 이루었고 경제적 부도 이루었다. 형제가 서로 남남처럼 싸우고 헤어졌지만 먼저 화해를 요청하고 달려간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야곱이었다.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3,4) ‘생 때를 쓰는 나라’ 라는 색안경을 벗고 ‘얼마나 어려웠으면’ 하는 동족의 눈을 뜨자. 그 땅에 억압받고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동족이 있지 않는가.

어서 달려가 동족의 지치고 터진 손을 부여잡고 “너를 언제나 염려하던 형제가 있었다”고 말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세계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 증거로 한민족이 동행할 미래를 열어야 하지 않는가.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 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창3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