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칼을 부를뿐 평화와 멀어져 …
이슬람을 이길 기독교의 원리는 사랑
▷ 지난주에 이어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은 두 종교가 같은 뿌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삭과 이스마엘)에 연원을 두고 있고, 같은 모세 5경과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을 경전으로 삼고 있다. 유일신을 믿고 최후의 심판을 믿고 내세를 믿는 것도 같다.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 것은 양 진영의 대화에 유용하다. 그러나 둘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대화는 맹목적 종교다원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둘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슬람에게 코란은 알라신이 인류에게 한 마지막 말로서 그 이전(모세5경, 예수의 복음 등)의 모든 책들에 우선하는 절대 경전이다. 성경에서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창 2:17상)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코란에서는 “이 나무에 접근하지 말라”(코란 2:35; 7:19)로 바뀌었다. 에덴동산에 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선악과'가 있을 수 없다는 이슬람의 논리가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코란에서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하나님의 경고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는 뱀의 유혹도 없다.
기독교는 선악과의 원리를 어긴 인류의 원죄론이 바탕이 된 종교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대로, 아담을 통해 들어온 원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죽은 자들'이 되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법아래 있던 인류의 속죄를 완성하셨고(롬 8:2), 하나님과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신 중보자가 되셨다(엡 2:14).
그러나 이슬람교에 이같은 구속의 원리는 없다. 코란에서 아담은 '이 나무'의 열매를 먹지만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다(코란 2:122). 후손들에게 죄가 되물림되지도 않는다. 즉 이슬람은 성경의 원죄설을 부정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예수님은 인류의 구속자도, 하나님도 될 수 없다. 단지 모하멧의 길을 닦은 이전 선지자일 뿐이다. 결국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가 없는 무슬림으로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의 길은 인간의 '행위'이다. 선행을 많이 쌓으면 죄도 상쇄된다. 주문을 반복해서 외우고, 하루 5차례 성지 메카를 향해 무릅꿇고 기도하는 등의 행위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이유다. 이들은 지하드(성전)를 이슬람에 대적하거나 방해하는 악한 영과의 싸움으로 설정해 종교적 행위의 의무를 완성한다. 이는 오늘날 이슬람 저항세력의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현대에 와서 이슬람은 지하드의 촛점을 개인의 내면적인 싸움으로 전환하고, 무력이나 전쟁은 이슬람의 신앙이 위협을 받을 때 단지 방어적인 차원에 국한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의 한결같은 신념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기독교는 인간의 선행을 부정하는 악한 영의 종교이다. 또한 성부 성자 성신의 3신을 믿는 다신교이다. 이들에게 서구의 기독교문명은 오늘날 세상에 타락하고 세속화된 문명을 가져온 장본인이며 이슬람을 위협하는 심각한 대적 세력이다. 이슬람국가들의 기독교박해는 이같은 세계관의 결과다. 국제 인권 단체 오픈 도어즈가 최근 발표한 '2009년 기독교 박해 10대 국가' 중 북한 등 2개국을 제외한 8개국이 모두 이슬람국가다.
현재 우리나라엔 60여 곳에 이슬람 예배처소(모스크)가 산재한다. 외국인 무슬림이 15만명 이상이 들어와 있고, 한국계 신자도 4만명으로 불었다. 이슬람 진영은 2020년까지 한국을 아시아 이슬람 선교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세계 무슬림이 급증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이슬람의 폭력성이 전해지는 것과 함께 이같은 국내의 이슬람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작년 한해 한국 교회에도 "이슬람이 몰려온다"는 식의 '이슬람 공포증'에 휩쌓였다.
세계와 한국 교회는 오늘날 점차 확산되는 양대 종교문명의 충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첫째,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는 성경의 원칙에 바로 서야 한다. 악을 악으로 갚은 서방의 강공책은 이슬람 저항세력의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다. 미국 뉴욕대 ‘법과 안보센터’ 연구팀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 뒤 오히려 테러가 6배 넘게 늘어났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바 있다. 최근엔 궁지에 몰린 알카에다가 분산하며 오히려 현지 극단 무슬림과 결합해 전투력을 증강시킨다는 '노마드 테러리즘'이 세계를 긴장시킨다. 이번 미국 항공기 테러미수 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알카에다 아라비아 조직(AQAP)'처럼 영향력이 확인되면 평소 미국 등 서구의 강경태도에 불만을 품은 무슬림들이 자원해 모이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종교적 무력충돌이 급증하는 원인을 세계화와 후기 산업화가 낳은 산물로 본다. 급격한 국제화에 따른 세속적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종교에 기댄 테러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정 근거지 없이 활동하는 뉴테러리즘이 이같은 새로운 현상과 합해져 전 지구적인 위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는 예수님의 경고가 오늘날 더 크게 들려오고 있다.
둘째, 이슬람에 대처할 그리스도 정신과 신앙원리에 바로 서야 한다. 이슬람은 전쟁을 통해 탄생한 종교지만 기독교는 순교로 탄생했다. 참 하나님은 대적 세력에 맞서 싸우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를 죽이려고 박해하는 원수들일지라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마 5:44)고 명하신다. 참 진리는 낮아지므로 높이시고, 지므로 이기고, 죽으므로 사는 복음의 원리속에 있다. 교회가 권세화되고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부패한 집단이어선 그들의 마음을 열수 없다. 겸손과 희생의 참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보여줄 때, 행위를 통해 구원받으려고 애쓰는 그들에게 진정한 쉼을 얻게 해줄 수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세째, 무슬림을 이웃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이슬람 공포증'이나 경계심은 이슬람과 불필요한 각만 세울 뿐이다. 자칫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을 찾은 무슬림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이나 탄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15년째 무슬림 선교사역을 하는 이주희 선교사는 "한국 교회나 사회가 적대감을 보이면 보일수록 그들을 뭉치게 할것"이라면서 "한국 교회의 ‘이슬람 공포증’은 역설적으로 국내에 이슬람 공동체의 형성과 성장을 도와준다"며 경고했다. 작년 이슬람 경계론은 상대적으로 무슬림에 대한 선교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웃 사랑에 근거해 구체적인 전도 방안과 전문가 양성을 서둘러야할 때다.
지금 기독교는 유럽, 아메리카대륙을 돌아 아시아에 기지를 틀고 중동,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지역에 넓은 띠를 형성한 이슬람이라는 최후의 여리고성을 향해 있는 형국이다. 특히 세계선교의 사명을 안고 있는 한국교회에 하나님은 2007년 아프간피랍사태로 혹독한 시련을 겪게 하신 것을 시작으로 험난한 이슬람 선교를 위해 재무장시키고 계신다. 한국의 이슬람은 마지막 격전장 이슬람 세계를 향해갈 우리의 선한 싸움의 시험대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1) 무엇보다 무슬림을 변화시킬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무력이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