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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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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다가온 자본주의 종말의 시대

GOSPE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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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민주주의 위기 불러 …

하나님 가르치신 자비와 사랑의 가치 중심 회복이 급선무 (요 15:13, 골 3:13,14, 눅 6:37, 마 20:26~28)

첫째, 자본주의의 극단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전통적 가치인 윤리나 규범,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고 이기주의를 양성화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양극화, 기후변화 등의 모든 문제들은 이기적 성장만을 지상제일주의로 떠받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성장은 꿈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꿈을 위해 노동착취, 저임금, 인권침해, 즐기는 삶의 유보, 공해 유발과 같은 열악한 환경을 감내해왔다. 자본주의는 이런 희생을 먹으며 고속 성장을 한 후에 숱한 도태자를 남긴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 금융자본주의로 갈아타고 자산과 금융을 독점한 사람들만을 위한 고착사회를 만든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들은 대출 이자와 세를 빨리우며 더 가난해 지는 시스템에서 빈부 격차는 극에 달한다. 이 같은 극단의 양극화 시대는 역동성과 비전의 몰락과 함께 결국 자본주의의 종말을 부를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과 겹친 저성장 시대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단으로 끌어올렸다. 우리는 지금 불평등, 양극화 심화, 금융거품과 금융위기의 빈번한 발생, 환경과 생태 파괴, 기후변화와 전 세계적 감염병 발생 등 자본주의가 기로에 놓인 모습을 마주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사상가 10인’(허프포스트, 글로벌 설문조사)에 선정된 제러미 리프킨은 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했다. 자본주의가 가진 딜레마, 즉 산업 발전을 이끈 효율성이 노동자의 감소(실업)와 소비자 부채의 증가(빈곤화, 소비위축)를 발생시켜 산업시대의 종말과, 성장 과정에서 자연계의 파멸을 이끌었다. 그는 예정된 대멸종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성장과 발전의 시대를 해체하고 생명애 의식의 생태적 자아와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를 통한 회복력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권력과 자본이 시스템적으로 밀착된 시대에 파멸을 피할 수 있을까. 미국 금융위기 때 보았지만 풀리는 돈은 월가로 들어가 부자들의 자산을 늘려줄 뿐인 부익부의 모순을 심화시켰다. 정작 돌봐야 할 서민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결국 1980년대 이후 노골화된 극단적 자본주의는 오늘의 세계를 설명하는 ‘균열’과 ‘갈등’의 시대를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패자를 양산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됐다. 기술의 막대한 진보를 감안하면 대단히 놀라운 자본주의의 실패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젊은 세대는 자신들 미래에 대단히 비관적이며, 유럽에서는 훨씬 더 비관적이다. 중장년만이 아니라 황량한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층도 극단으로 돌아섰다. 희망과 현실 사이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들은 자본주의의 미래가 선명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불안의 시대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 같은 자본주의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호황의 시대엔 정치가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포용과 허용이 가능했다. 호황의 시기에는 좌파든 우파든 정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과 상관없이 경제는 성장하고, 그 과실을 두루 나눌 수가 있었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저성장의 불황기에 보다 첨예해진 양극화로 인한 박탈감을 상대방을 향한 극단의 정치 혐오로 해소하게 된다. 이들에 호응하는 양 극단을 넘나드는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증오나 혐오를 조장하거나 그마저 선을 넘는 일이 발생한다. 이 같은 현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3권 분립의 권위 상실 같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규범 파괴와 폭력, 테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총격 테러는 물론 사건 직후 지지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마치 ‘그들만의 신’이 선택했다는 샤머니즘적 과다확신 오류에마저 도취해 있는 듯하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맹목적이며 트럼프가 많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를 영웅시한다. 규범이나 윤리와 상관 없는 이익 우선의 정서를 낳은 자본주의는 이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범법과 편법보다 누구 편인지가 더 중요한 사람들이 자기확신만 반복하는 양 극단으로 나뉘어 싸움을 벌인다.

둘째, 포퓰리즘 정치세력 때문이다. 권력과 표의 호혜적 메카니즘이 포퓰리즘을 낳고 있다. 트럼프가 검찰 기소를 ‘정치 탄압’으로 받아치면 지지자들은 바로 엄호에 나서며 결집을 가속화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어느새 현대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정확히 간파한 듯 행동한다. 지지자들의 도덕적 역치를 낮춰 놓으면 작은 허물만 아니라 큰 불의도 덮을 수 있다는 현실적 힘의 논리를 터득했다. 결국 국회든, 행정부든 권력을 장악하면 자기 입맛에 맞게 법을 바꾸고 충성파들을 요직에 앉히며 사법부를 농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야스차 뭉크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포퓰리즘의 부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라면서 “한국에서도 ‘우리 편만 애국’ 등 배타적 태도를 강조하는 정치인이 있는데 이런 것이 바로 포퓰리즘적 주장”이라고 짚었다. 지난달 ‘분열의 시대, 다양성과 포용이 희망이다’를 주제로 열린 에 참가한 석학과 전문가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특히 포퓰리즘의 부상과 정치 양극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자유주의 가치를 반대하는 포퓰리즘이 원동력을 얻고 있다”고 진단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은 “두려움과 혐오를 조장하며 ‘우리 대 그들’ 구도를 만드는 정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세계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최근 국제 학계에서도 포퓰리즘을 주제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최근 정치학자들은 포퓰리즘 또는 극단주의를 정의하고,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변질되면 장기적으로 국가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편가르기를 통한 지지층의 결집과 표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퓰리즘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지지자들과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조작하는 지도자,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 문화를 낳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관용 정신이 실종되고 증오의 악순환을 불러오는 환경에서 정치 테러, 가짜뉴스, 윤리와 규범 실종, 법과 제도 무시 등 총체적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고 있다. 지금의 자유민주 정치체제를 세우고 21세기 세계 문명을 선도해온 미국이 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대표적 나라가 되었다는 점은 지구촌의 미래와 오늘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 이익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모두를 위한 공동체와 윤리의식으로 치유하고, 효율성과 기계 의존을 접고 생명과 생태계 중심의 삶의 환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제일주의로 세운 하나님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섬김과 희생의 가치가 오늘날 절실하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것이 사랑의 위대함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9~13)”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의 행동강령은 명확하다. 자비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6,37)”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은 사랑, 용서, 존중, 배려와 같은 하나님의 가치와 정 반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그리고 한국이 다시 하나님의 가치로 삶의 중심을 회복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