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9일 취임 1년6개월여 만에 교체됐다.(사진은 지난 8월 29일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회동 전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정부, 침체 인정하고 구조변화 모색해야 …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예수님 가르침 들어야 할 때 (마 9:17)
한국 경제의 투톱이 동시에 경질됐다. 문재인정부의 초대 경제 사령탑이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1년6개월여 만에 교체됐다. 그러나 기대했던, 즉 먹구름이 밀려오는 한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교체가 아니었다. 경제사령탑 역할을 해온 두 사람이 연이어 불협화음을 낸 것이 문제였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최저임금 인상 등 주요 현안마다 이견을 노출하다 결국 교체됐다. 성장이나 고용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탓도 크다.
두 사람, 특히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지휘한 장하성 정책실장은 야당으로부터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론에 시달렸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맡아 온 장 실장은 경질 전까지도 내년이면 실질 성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겪는 경제 침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규제개혁 위주의 혁신성장 정책을 맡았지만 규제혁신은 제대로 이뤄진 게 없었다.
김동연-장하성 투톱의 후임으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새 경제사령탑이 출범했다. 그러나 정책은 그대로고 사람만 바뀌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침체,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도 “소득주도 성장의 방향에 대해서는 전혀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사방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있음에도 새 경제팀의 첫마디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황인식을 드러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잘못된 경제 정책을 하루라도 빨리 수정하는 것이다. 아니면 앞이 보이지 않는 한국 경제가 끝없는 추락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
지금 한국경제가 어떤 상황인가. 경제가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는 판단 근거로 여러 경기지표가 제시되지만, 기업 설비투자 동향은 그 중 실물을 반영하는 정확한 지표로 여겨진다. 설비투자가 전년동기대비 금년 2분기에 -5.9%, 3분기에 -13.7%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8월 산업 활동 동향’에서도 기업 설비투자가 전월 대비 1.4% 감소해 연속 6개월째 하락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장 연속 감소다. 기업설비 투자가 6개월 연속 감소하면 보통 경제가 침체로 턴어라운드 한 것으로 해석한다.
기업들이 불투명한 미래 경영 환경과 지속가능한 미래 아이템을 찾지 못해 쉽게 금고를 열지 않으면서 투자 지표가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보이고 있다. 고용은 어떤가. 올해 1∼9월 취업자수 증가폭은 월평균 10만 명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취업자 수가 줄어들었던 2009년 이후 가장 적다. 그 기간 실업자는 111만7000 명으로 최근 19년 사이에 가장 많다. 이중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는 평균 15만2000 명이다. 무더기 구조조정의 한파가 몰아쳤던 IMF 외환위기 당시 14만2000명보다 많다. 일자리를 구하다 못해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구직단념 자는 월평균 51만6000명이나 된다.
당연히 9월까지 실업급여 지급액은 약 5조377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4조929억 원보다 1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미래 예측은 장단기를 불문하고 더 먹구름이다. 경제 전망에 대한 불안심리가 더해져 소비도 움츠러들고 있다. 9월 들어 소비자심리지수가 99.5로 100을 하회하게 되어 내수 침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분기 이후부터 한국 경제는 성장률 둔화 속에 물가가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뚜렷하다. 3분기 성장률(전기 대비 연율)은 2.5%까지 떨어졌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로 올라섰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국민이 느끼는 경제고통지수가 높아지고 정책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더욱이 가계부채가 1,500조원을 넘어서 내수 침체와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생산 부분은 어떤가. 올해 1~9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8%로 외환위기(199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제조업의 생산능력지수가 금년 3월 이후 전년 동월비 7개월째 연속 감소하고 있는 것은 위험신호로 읽힌다. 이 흐름이 감소와 하락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생산, 소비, 고용, 투자 모두 위축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반세기 동안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을 주도해온 조선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일제히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현대·기아차는 2015년 800만 대 넘게 팔았지만 영업이익률과 최대 시장인 미국·중국의 공장 가동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대차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대비 4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아차는 영업이익률이 0.8%에 불과했고 쌍용차는 지난해보다 영업손실 규모가 더 커졌다. 이러다 보니 부품업체는 절반 가까이 영업적자에 허덕인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셈이다.
수년째 구조조정 중인 조선업은 더 심각하다. 현대중공업은 올 2분기까지 3분기 째 적자이고, 삼성중공업은 2분기에 적자로 돌아서는 등 여전히 신음 중이다.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해온 반도체도 3분기를 정점으로 실적이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술격차를 좁혀 오는 중국의 추격세도 만만치 않는 등 도처에 적으로 둘러쌓여 있다. 제조업 전반에 적신호가 켜진 형국이다.
우리 경제에서 제조업이 왜 중요하냐면 제조업체가 문을 닫는 것과, 서비스업체가 문을 닫는 것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사라지면 그것과 연결되는 수많은 1차, 2차, 3차 협력사가 다 문을 닫게 된다. 관련 생태계 하나가 통째로 없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이 고용 유발 효과가 훨씬 크다. 주력 산업이 흔들리고 투자 감소가 이어지면서 성장률은 2분기 연속 0%대에 머물렀다.
이러니 금융시장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인의 매도세가 커지면서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한 달여 사이에만 약 261조원의 시가총액이 날아갔다. 원·달러 환율도 1141.9원으로 연고점 문턱까지 다다르는 등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경제 체질 상 민감할 수밖에 없는 대외 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은 물론 보호무역 추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 상무부가 중국 D램 업체 푸젠진화반도체에 대해 수출을 제한하기로 하면서 미중 무역 분쟁이 다음달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양 정상이 만나는 시점을 계기로 완화될 것이란 기대를 덮어버렸다.
대 중국 수출비중이 높은 우리로서 악재 중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해 계속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국제유가 상승 등 대외 여건이 끝이 보이지 않는 악화 일로에 있다. 특히 국제금리의 상승은 한국 경제의 크나큰 딜레마가 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우리도 동조해야 하지만 당장 심각한 가계부채와 경기침체에 미칠 부작용을 간과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금리 동결로 인한 자금 유출 위험을 방치할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우리 경제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인지 산 넘어 산이다. 세계 경제 전체도 크게 둔화될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8일 유럽연합은 유로존의 성장률 전망을 낮췄다. 내년 유로존 GDP 성장률이 올해(2.1%) 보다 낮은 1.9%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후년엔 1.7%로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이 중국의 3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은 6.5%에 그쳤다고 밝힌 데 이어 유럽의 경제마저 추락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적이다. 같은 날 세계 3대 신용평가 기관 중 하나인 무디스도 “세계 GDP 성장률이 2.9% 이하로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개방 경제인 우리로서 세계 경제 위축은 두려운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변수도 자라고 있다. 최근 월가에서는 ‘3대 빅딜 설’이 나돌고 있다. 재선을 강하게 바라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 무역 마찰과 관련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빅딜설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금리 인상 속도 조절과 관련해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합의를 모색하는 방안이다. 나머지 하나는 미국 국민의 생존권 보장과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타협을 모색할 것이라는 설이다.
특히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중간선거 이후 남북한과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국제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한반도 정세가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비핵화 문제, 미·북 수교 등 지난 3월 이후 논의해온 협상 과제들이 중단되거나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