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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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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늪에 빠져 멈춰 선 한국호

불신의 늪에 빠져 멈춰 선 한국호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기존 복음신문 「불신의 늪에 빠져 멈춰 선 한국호」 기사 사진 · 사진 복음신문 제공 · 복음신문 보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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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무엇이 변했나? …

하나님 보여주신 믿음의 가치 세상에 확장돼야 할 때 (히 11:1~40)

대한민국이 국가 안위와 미래를 위해 헤쳐가야할 산적한 과제를 앞에 놓고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채 정체돼 있다. 세월호 특별법과 90여 민생법이 세월호 참사 이후 5개월여동안 계속되고 있는 국회 파행으로 발목이 묶여 있다. 정치권이 극한 대립과 소모적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국민은 방향을 잃고 갈피를 못잡고 있다. 더 나아가 집단들끼리 지역, 이념, 세대, 빈부 등에 따라 첨예한 대립이 높아가며 대한민국호가 분열하고 있다. 대한민국호가 하나되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문제의 원인은 불신이 커진 탓이다. 한국 사회에 믿을 데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돈을 우상화하며 달려온 한국사회의 ‘적폐’를 되돌아보게 했다. 충격을 극복하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기회를 제공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국가개조에 버금가는 개혁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한국의 미래의 운명이 달려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점점 더 큰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3월 현대경제연구원의 ‘한국사회신뢰도’ 보고서에 의하면 국민의 무려 68.6%나 우리 정치·경제·사회가 믿을 수 없다고 답했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국민의 국가 주요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이보다 더 추락해 창피할 수준이다. 지난달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하면 국민들은 검찰(2.5%), 국회(2.7%), 법원(3.1%), 군대(3.9%), 종교단체(5.3%) 순으로 부끄러운 한자리수 신뢰도를 보였다. 더우기 나라의 미래인 고등학생들의 국가 및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했다. 지난달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고등학생들의 사회지도층에 대한 믿음이 6.8%(참사 전 26.2%)로 떨어졌다. 국회에 대한 믿음은 5.4%(참사 전 18.9%)에 불과했다. 특히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해 고교생의 91.2%가 ‘잘 될 것 같지 않다’고 답변했다. 한마디로 지도층을 믿을 수 없는 한국사회가 돼있는 것이다.

생각하기 싫지만 그때 어떠했나.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던 학생과 승객들을 눈앞에서 놓칠 정도로 정부 시스템은 무능했다. 장황하게 여기저기 대책본부를 세우면서 난리를 쳤지만 효율적 운영이나 실제 효과는 하나도 없었다. 이후에도 정부는 국가개조 운운하며 부패비리사슬을 끊겠다고 개혁을 장담했지만 ‘관피아’의 철옹성은 아직 꿈쩍않고 있다. 6월 현재 중앙부처와 공공기관 퇴직자 1218명 모두 662개 유관단체와 기업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열에 아홉 이상(91.5%)이 ‘관피아’를 막겠다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통과했다. 전관예우를 통해 자신이 몸담았던 부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관업체에 합법적으로 재취업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도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실익을 따지는 데에만 혈안돼 있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서로를 극한으로 불신한 결과 협력을 잊고 표를 따라 권력을 얻으려는 계산 하나에 몰입하므로 세월호 특별법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국민은 주인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다. 이 탓에 한국호를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얽힌 실타래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불쌍한 국민들은 외부 지도자와 과거 지도자에게 ‘이룰 수 없는 바램’을 투사한다. 사상 최대 관객(1700만)으로 ‘이순신 열풍’을 낳은 ‘명량’이란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은 “충은 백성을 향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다”며 오직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임금과 권력의 기득권 계층의 부실과 무능으로 풍전등화에 빠진 나라를 구출해낸다. 한국호의 국민들이, 자기 살 길만 찾는 오늘날의 지도층을 대신할 믿을 수 있는 선장의 모습을 과거의 영웅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외부의 지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열광 역시 현재 우리 안에서 믿을 만한 지도자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는 예외 없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논문표절 의혹이 드러나며 이미 우리 사회 지도층에 대한 신뢰는 깨진 상태다. 윤일병 사건처럼 사고원인에 대해 은폐·조작·축소를 시도한 군도 믿을 수 없다. 유병언 시신을 놓고도 괴담이 퍼지는 이유는 검찰, 경찰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세월호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달라고 단식농성하는 이유도 정치권력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한계를 넘어선 불신은 이미 사회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월드컵 축구 예선 참패뒤 축구협회에 대해 사립 명문대 출신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불신이 극에 달하자 한국인으로는 대표팀 감독을 선임할 수조차 없게 되자 외국인 감독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지금 불신은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거대한 키워드가 돼 있다.

불신사회에서 사람들은 협동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협동해서 예측가능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불신사회에서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불행하므로 적자생존의 경쟁과 제로섬의 갈등에 몰입한다. 기만과 협잡, 배신 등을 통해 오직 나만의 이익을 추구한다. 신뢰는 콜먼 등에 의해 주장된 ‘사회적 자본’의 핵심요소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던 물적·인적 자본을 뛰어넘어 한 사회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원천이다. 반면 불신사회는 너무 막대한 기회비용의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대한민국은 26위로 지난해에 비해 4단계나 추락했다. 나라 안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동북아에 집중하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북한의 핵개발과 위협은 갈수록 전쟁을 위해 고도화되고 있다. 지금처럼 “움직이지 말라”는 재난구조시스템을 믿은 사람들을 죽음에 버려뒀던 국가가 변하지 않고 권력기관이 불신의 행태를 계속하는 이상 다시 국가적 재난과 변란이 닥칠 때 국민들은 극도의 혼란과 자중지란을 겪으며 단합과 극복의 기회조차 박탈당할 수 있다. 아니, 벌써부터 페이퍼 컴퍼니로 재산을 빼돌리고 탈세하고 온갖 불법과 비리를 봐주는 ‘그들만의 리그’로 탐욕을 채우며 나 하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극한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믿음은 지선의 가치이다. 하나님은 믿음 하나만 보시고 인간에게 구원이란 영원한 선물을 내어 주셨을 만큼 ‘믿음’은 기독교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하나님이 인간의 믿음을 소중히 보셨듯 우리도 서로 신뢰와 사랑을 나누며 화평과 협력의 참된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사라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살리고, 사회를 살릴 더 없이 소중한 가치가 되고 있다.

따라서 불신의 늪에 빠져가는 세상을 향해 이제 교회가 나서야 한다. 교회가 개교회주의, 성장주의로 나만 위하는 욕심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불신으로 극한 이기주의에 빠진 세상을 똑같이 따라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믿음의 가치를 세상에 확장하므로 이 사회를 불신의 늪에서 건져 올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정의롭고 정직하게 행동하며, 예측가능한 룰을 지키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배려하며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야 할 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니..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