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 주간 신문“성경으로 과거를 해명한다! 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한다! 성경으로 미래를 예언한다!”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합니다
성경과 현실

성경과 현실

코로나 시대, 예배 위기 맞은 한국교회

GOSPEL TIMES
이 기사 공유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화상회의로 총회가 진행된 예장통합 제105차 정기총회 광경.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

나를 온전히 맡기고 성령과 진리로 진정한 예배 지켜야 (시 123:1, 요 4:24, 롬 12:1, 시 96:3~7)

현장예배를 절대화시키면 원리주의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이같은 행동으로 교회가 코로나 감염의 중심에 서고,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국민과 교회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은 씻을 수 없는 패착이다. 이로 인해 신앙심 깊은 평범한 어르신들마저 사지로 내몰수 있는 집회에 참석하게 하고, 신앙의 결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전파자까지 된 현실은 교회가 너무 무책임하고 잘못 인도한 결과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8:6)”

따라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예배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립이 한국교회의 최우선적 과제가 되었다. 예배의 본질과 예배의 형식을 혼돈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있기에 우선, 예배의 본질부터 정의해 보자.

예배란 첫째,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시 123:1)” 예배는 내 삶 전체가 하나님께 향해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멋스럽게 지어진 교회, 교인의 입맛에 맞춘 설교, 유창한 기도, 수준있는 찬양대가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셨냐가 중요하다. 참석자가 많았냐, 새신자가 많이 왔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예배에 함께 하셨냐가 중요하다. 사람 중심의 자기위안과 만족을 위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였냐가 중요하다.

“개신교적 예배란 은총의 수단인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 일하시는 것으로 출발하여, 인간이 그 은총에 기도와 찬송과 감사로 반응하는 상호 소통의 과정이다.”(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 라고 한 마르틴 루터의 말처럼 예배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과의 소통의 시간이다.

둘째, 성령과 진리로 드려져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즉,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드리는 예배여야 한다. 이를 위해 내 죄를 내어놓고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겉모양이나 의례적으로 드리는 예배, 형식적인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히 10:8)” 따라서 율법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믿음의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여야 한다. 나를 버리고 순종적인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산제사이다. 내 소욕을 위하지 않고 나를 비우고 드리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내 소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내 사리사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좇아 드릴 때 산 제사이자 참된 영적 예배가 될 수 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나님의 뜻을 좇는 전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다툼, 시기, 미움, 욕심, 거짓을 숨긴 채 예배드릴 수는 없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셋째,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이 백성을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사 43:21)” 하나님께 찬양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고 피조물의 도리이자 의무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23:4)” 예배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자리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기 위해 열방에 영광을 계시하는 분이시다.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시 96:3~7)”

예배가 이같은 예배의 본질에서 벗어나므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면 아무 의미 없는 예배가 되고 만다. 하나님이 모든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히 11:4)”

말라기에서 하나님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까지 말씀하신다(말 1:10). 결국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야 한다. 16세기 지나친 형식주의와 부패에 빠진 로마가톨릭이 예배의 본질을 잃자 개혁파는 ‘오직 성경’과 ‘전체 성경’ 안에서 예배 원리를 규정한 예배의 ‘규정적 원리’를 내세운 것도 같은 이유이다.

교회사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예배의 형식이나 형태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모든 예배는 이같은 예배의 본질을 충실히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배의 본질을 담아내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본래적이고 전통적인 예배의 형태가 현장의 공적 예배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장 6항은 공적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그의 말씀이나 섭리로 부르실 때는 공적집회에서 더욱더 엄숙히 예배해야 하는데, 이런 공적 집회를 부주의하거나 고의적으로 소홀히 하거나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비대면 예배만 허용한 정부 조치에 따르지 않고 현장예배, 대면예배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적 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고 어떤 박해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교회의 근간이 되는 예배이다. 주일성수와 현장예배는 영원한 명령이요 도덕법이기 때문에 예배드리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19라는 전염병 펜데믹 상황 속에서 비대면 예배가 떠오르고 현장예배를 보는 것에 대하여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한국교회는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분명한 지침을 정해야만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현장예배가 아닌 비대면예배를 본다고 해서 성경 말씀에 어긋나거나 신앙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현장예배를 드릴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 즉 예외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교회사를 보면 항상 현장예배, 즉 공적예배를 드릴 수 있는 상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부터 개신교의 2천년 역사는 끊임없는 피난의 역사였다. 피난의 역사를 빼놓고는 개신교의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전쟁, 전염병, 핍박 때문에 부득이하게 현장예배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골방과 무덤(카타콤)으로 숨어들었던 신앙인들에 의해서 교회가 이어졌다.

즉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예배의 본질을 지킨다면 장소나 방향에 메이지 않고 홀로든 가정에서나 어디서든지 예배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