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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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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의 때 정치대사변을 기대한다

GOSPE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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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대 유권자 향배에 결과 달려 …

자기 희생으로 국민의 필요와 국가의 미래 제시하는 정강정치 시대 열어야 (엡 5:2, 요일 3:16)

총선을 80여 일 앞두고 한국 정치권이 격동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하고 공약개발본부를 출범해 발 빠르게 차별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서둘러 공천작업을 시작한 한편 이재명 대표 체제에 반발한 탈당 러시가 이어지며 부산한 모습이다. 제3지대론도 어느 때보다 부상하는 양상이다. 거대 양당에서 이탈한 이준석, 이낙연 전직 대표를 비롯한 탈당 인사들의 신당 창당 러시가 줄을 잇고 군소정당들의 합종연횡도 가시화되며 제3지대의 통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22대 총선은 제3지대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이 큰 총선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현재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고 여야 정당에 대한 지지율도 낮은 상황이 대안 정당에 대한 기대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구조상 여당에게 불리한 총선이기도 하다. 이번 4월 총선이 윤석열 대통령 집권 2년이 끝나는 시점에 실시되는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간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통상 중간선거에선 정부와 집권당이 그동안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따라 ‘회고적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도 이번엔 결코 유리하다고 볼 수가 없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당내 단합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유권자들이 “정부는 견제해야 하지만 그 심판의 주체가 이재명의 민주당은 아니다“라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정부견제론이 민주당 지지율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무당층 또는 중도층, 즉 제3지대 유권자의 향배가 그만큼 중요한 총선이 될 가능성이 크고 정당으로서는 이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거이다.

제3지대 유권자만큼 선거구도도 중요하다. 2012년과 2016년 총선에서는 4당체제, 2020년 총선에선 지역구 선거는 3당 체제(민주당, 미래통합당, 정의당), 비례구 선거는 4당 체제(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로 치러졌다. 지난 총선은 말은 4당 체제이지만 양당의 싹쓸이로 귀결됐다. 병립형이 거대 양당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문제 제기로 신생정당이나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의 길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했는데,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취지가 심각하게 왜곡됐다. 위성정당 금지법을 별도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현실화되지 못했다. 어찌됐든 이번 총선도 다당체제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4당 구도 또는 양당 구도에선 제3지대가 힘을 쓸 수 없다. 제3지대가 하나로 합해진 3당 구도가 되면 거대 양당체제를 무너뜨리고 의미 있는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다. 과거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이나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의 경우 의미 있는 의석수를 확보한 제3지대 정당 성립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지금도 성공했던 사례들과 유사한 점이 있다. 거대 양당에 염증을 느낀 무당파 혹은 중도파가 많다는 것이다. 만약 제3지대 정당이 의미 있는 통합을 통해 구심력을 발휘한다면 현재의 여야 양당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정치는 대체로 보수 30%와 진보 30% 그리고 중도 40%의 구조로 되어있다. 지분상 중도 혹은 무당파가 가장 폭넓게 존재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다른점이 생겼다. 최근 극단적 정치 양극화가 강성지지자를 더 불러모으면서 중도 유권자들과 거리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또 4050세대 진보, 60대 이상 보수라는 세대정치 고착화도 과거엔 없었다. 그만큼 제3지대 유권자의 좁은 입지와 척박한 환경을 말해 준다. 물론 제3지대 유권자가 각 세대에 존재하지만 대표적으로 2030세대를 꼽을 수 있다. 제3지대 유권자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선거 전략으로 대응할 수 있다.

기득권이 싫고 자기들끼리 지독히 싸우는 싸움에 염증이 난 중도진영의 유권자들에게는 새로운 가치와 접근이 필요하다.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관념적 공감’과 ‘물질적 공존’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여건과 갈수록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들을 해소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므로 당장 닥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사회의 공존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믿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생활에 힘든 그들을 안고 보듬는 마음과 태도를 보이고 실제로 공감을 통해 함께 갈 수 있다는 믿음도 주어야 한다. 정치인이 시대의 구원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처럼 기득권과 정파적 이해가 난무하는 모습으로 실망만 안기면 선거에서 참혹한 결과를 안을 수 있다. 정당은 현실 문제에 답하는 공존과 공감, 두 가지로 무장하고 이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써야 한다. 기존의 지구당이나 당원협의회가 아닌 지역과 세대와 국민을 아우르는 소통의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선거에 임하는 모든 정당이 혁신해야 한다. 그것밖에 답이 없는 시대가 됐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진영논리를 고리타분해 하는 무당층이 늘어나고, 기득권층이 야기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진저리를 내고, 지역에 기대 나눠먹기식 안일주의의 낡은 구태 정치, 보복 정치를 혐오하고, 정의를 표방했으나 정의도 법치도 아니었던 사람들의 파열음에 귀막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시대의 목소리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정초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정초선거(foundation election)’ 즉 변화가 한번 시작돼서 연쇄성과 불가역성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행해지는 선거이다.

70여 년의 한국 현대 정치사는 수많은 선거가 있었지만 선거 이전과 선거 이후의 정치 구조와 정치 질서를 확연하게 구분 짓는 ‘정초선거’는 단 세 차례밖에 없었다. 현대 정치의 시작을 알린 1948년 5·10 총선거, 새로운 관료, 엘리트 집단의 전면적 출현을 알린 1963년 대선과 총선, 그리고 지금의 정치체제를 구축한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끈 건국, 박정희 대통령이 이끈 근대화, ‘김영삼 연합’이 만들어 낸 민주정부 출현의 세 차례 정초선거가 새로운 정치구도,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냈다. 이제 올해 새로운 정치대사변의 해가 되기를 바란다. 진영과 극한 대립을 거두고 민생과 미래에 실질적 대안 경쟁을 하는 정강정책 정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선각자들이 정치 무대에 설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 한국은 국가와 민족 앞에 자신을 내 던진 그런 수많은 선각자들로 인해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우수 민족이었다. 다시 그 선연하고도 찬란한 자부심 가득한 극상품의 민족적 줄기를 찾아야 한다.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이 참된 리더의 모습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이 희생하므로 많은 사람을 살린 대표성을 가진 예수님의 모습에서 배워야 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우리도, 특히 대의민주주의에서 우리를 대신한 국회의원들은 마땅히 희생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이번 22대 총선을 통해 자신을 희생해 국민이 필요한 것을 먼저 찾고,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먼저 제시하는 바로 선 정치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