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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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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둘러싼 정치 사회 분열

미디어법 둘러싼 정치 사회 분열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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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미디어법에 생사를 거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와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어디에 있나?

22일 미디어법이 난투극과 아수라장 속에 강행 처리된후 정국이 더 거센 후폭풍에 휩쌓였다. 민주당은 ‘의원총사퇴’의 배수진을 치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언론악법폐기 100일 대장정’에 돌입, 전국에서 시국대회와 10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법안 종결로 민생에 전력하겠다고 나섰지만 임시국회 소집조차 기약못할 반쪽 국회의 부담을 안게 됐다. 전례없던 즉석 재투표와 대리투표의혹 등 변칙통과 논란까지 겹쳐 거센 역풍에 직면해 있다. 여야간 극한 대립으로 미디어법은 보혁간 이념 법안으로까지 변질됐다. 민심도 찬성쪽과 반대쪽으로 확연히 나뉘면서 지금 나라는 온통 분열로 치닫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한나라당은 지난해말 미디어법을 발의하면서 100대 중점법안 가운데 ‘처리1순위’로 꼽았다. 그후 미디어법은 회기때마다 국회파행의 제1원인이 됐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야당과 국민 설득에 게을렀다. 미디어법에 대한 반대여론이 더 많았지만 경호권을 발동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밀어부쳤다. 민주당은 방송을 재벌에 줄 의도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막무가내식 반대만 고집했다. 당직자, 신원미상의 외부인까지 총동원해 본회의장 입구마다 봉쇄하고 표결자체를 막았다. 미디어법에 찬성하는 자유선진당 의원들은 이들에 막혀 본회의장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미디어법이 국회에 제출된지 7개월여가 흘렀다. 이 긴 시간동안 여야는 협상다운 협상 한번 없이 싸우다가 금쪽같은 시간을 다 흘려보냈다. 여야 모두 처음부터 합의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최종 해소하고 법치를 이끌어야 할 입법부가 오히려 편법과 폭력, 완력과 우격다짐으로 법치를 허무는 근원이 되고 있다. 여야의 싸움과 국회 파행에 희생된건 서민이고 국민이다. 수백만명의 일자리가 달린 비정규직법이 처리되지 못해 직장을 잃는 실직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 영세상가를 살리기 위한 법, 통신요금과 카드수수료 부담을 완화하는 법, 하루에 12억원씩이나 적자를 내는 공무원연금법까지 시급한 민생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러나 극한 여야의 대치로 9월 정기국회에서조차 처리를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대체 미디어법이 뭐길래 단식을 하고, 머리를 밀고, 의원직을 던지고, 절차법을 무너뜨리고, 민생현안을 내팽개치면서까지 생사를 걸어야 한단 말인가. 여야가 모든 비난을 자초하면서 미디어법에 올인하는 이유가 대체 무언가. 한국언론재단이 작년 조사한 미디어별 영향력을 보면 KBS(31.6%)와 MBC (21.8%) 등 TV방송이 조선일보(4.0%), 동아일보(2.2%), 중앙일보(2.0%) 등의 신문을 월등히 앞질러 있다.

신뢰도에서도 TV(60.7%)가 가장 높고, 인터넷(20%), 신문(16%) 순이다. 지상파방송은 TV수상기가 있는 모든 가구가 수용자가 될수 있다는 점도 신문에 비해 영향력이 막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방송 편성과 보도태도에 따라 국민 의식과 여론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같이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방송권력’으로까지 불리운다. 반면 신문업계의 위기는 날로 심각하다. 지난해 신문 정기구독률(36.8%)은 1996년(69.3%)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의 여야간, 보혁간 대립이 ‘미디어 전쟁’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구도를 허물어야 여론의 다양성을 제고하고 미디어산업의 선진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미디어법 개정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 그 근저엔 현 방송사의 편향성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 한나라당은 1997년과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를 지상파방송에 돌려온게 사실이다. 대통령 탄핵과 광우병파문 등도 방송의 편향적 보도사례로 꼽는다.

반면 진보진영이 소위 조중동 보수언론 죽이기에 나선 것은 오래된 얘기다. 민주당은 현재의 지상파방송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미디어법은 그토록 대립해온 보수언론과 재벌에게 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줄 뿐 아니라 기존 방송체계에 일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이 극심한 위기감을 갖게 된 이유다. 이때문에 민주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합의 없이는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한 이후 한나라당의 전향적 태도로 상당한 양보를 얻어냈음에도 한결같이 극렬 반대했다.

특히나 정치권은 권력추구의 속성상 정권창출과 우호적 여론형성을 위해 방송 기대심리가 클 수밖에 없다.

미디어법은 신문 방송의 교차소유, 지상파와 비견될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신설을 예고하고 있다. 또 2013년부터 디지털방송으로 전환되면 새 지상파방송과 다채널송신(MMS)의 기회도 열린다. 10여개의 지상파와 종편채널 등 무한 경쟁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시장에 무한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시장 조사기관 포레스터 리서치는 수년전 미국 TV광고시장이 500억달러에서 10년후 30%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같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TV 시청시간이 줄고, 구매력이 높은 젊은층 인구가 감소해 TV광고시장이 줄어드는 추세다. 기존 방송사들이 미디어법에 반대하며 시장을 지키기 위한 밥그릇 싸움에 나서지 않을수 없다. 방송 통신 융합시대를 대비한 세계 경쟁력을 갖춘 미디어산업이 필요한 반면 막대한 자본력이 기존시장을 잠식하므로 새로운 자본 독과점체제가 생길 것에 대한 우려도 상존한다. 따라서 피해를 최소화할 일정한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흐름 자체를 언제까지고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는 다시 옷깃을 여미고 현실을 보자. 우리 모두 코앞의 이익에 너무 눈이 멀어있는 건 아닌가. 지금 나라가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여야간, 보혁간, 언론간 정략과 이념대립, 밥그릇싸움으로 혼재돼 있다. 극한 대립으로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안보도 갈피를 못잡고 있다. 그 피해는 결국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에 되돌아올 뿐이다. 남아공은 피비린내 나는 독재와 재정위기, 이념대립으로 국가가 파국에 직면했을 때, 백인 대표들과 좌파 성향의 흑인 정당, 반정부단체 대표, 강경 노조 대표들이 ‘몽플뢰르 센터’에서 책상을 마주했다. 6개월동안 ‘남아공의 미래’에 대한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토론했다. 그 결과가 1996년 만델라 정부의 ‘성장과 고용과 재건설’ 정책의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가장 강력한 신흥경제국으로 성장했다. 나라를 파국에서 건져내는 길은 대화와 타협밖에 없다.

하나님은 개인의 이기심이 온 나라의 괴로움이 된다는 사실을 아간 사건을 통해 가르치셨다(대상 2:7). 민족 모두가 합심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도, 통일조족도 장담할수 없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협력을 거스른 르우벤과 갓 부족의 이기심을 질책했다.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민 32:6, 7)

여야나 우리 사회가 서로 적을 굴복시키고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것처럼 싸우는데서 돌이켜야 한다. 완승이나 완패는 독재사회에서나 있는 일이다. 서로 입장이 반대돼도 충분히 협의해서 조정하고, 합의가 안되면 표결로 가르고, 그 결과는 다수당이 책임지는게 의회민주주의의 순리이다. 민주주의는 이상과 목표보다 절차와 과정을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처한 상황이나 입장마다 이상과 목표가 다르기에 그것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이상과 목표가 결정되는 과정, 즉 절차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분쟁과 분열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나라에 지금 경고하신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 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