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이 남긴 우려가 무엇인가 …
인간의 계획과 강대국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의지해야 (잠 16:3, 시 26:13)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며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기대와는 달리 속빈 강정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안보 위기가 시작될 우려까지 제기되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에서 얻은 건 무엇이고 잃은 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회담 전부터 우려는 있었다. 세종연구소는 5월 30일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 이상현 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우정엽 연구소 연구위원 등 3명이워싱턴 정가를 방문하여 민주·공화 양당 인사들을 두루 만나 청취한 내용을 바탕으로 ‘워싱턴 현지조사’라는 부제가 붙은 ‘북미정상회담 전망’ 보고서를 내놨었다. 보고서는 미 정치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성공’을 원하며, 일단 외견상으로 ‘승리자’의 모습을 과시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공 여부를 규정할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그에겐 이런 세부 사항은 단지 부차적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미측 인사들의 진단”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트럼프는 배짱형이지 세심형이 아니다”라는 한 정치인의 언급을 인용, “그가 큰 틀에서만 합의하고 세부 사항은 충분히 챙기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구체적 사항은 실무진들이 알아서 처리하게끔 위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트럼프는 공개적으론 ‘최대치 입장(maximal position)’을 취하되, 실제론 그 이하 수준에서 김정은과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는 트럼프가 자서전 ‘협상의 기술’(1989)에서도 밝힌 바 있는데, 이러한 협상 스타일을 북한에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트럼프의 성향을 들어 “워싱턴 조야에선 트럼프가 나쁜 거래를 하고 대성공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전했다. 또 “북한은 북미 양자 협상과 6자회담 같은 다자틀을 오래 지속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볼 것”이라며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1회로 끝내지 않고 연속 회담으로 연결시킬 명분을 찾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보고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차기 회담 약속을 받아내면 큰 성공으로 간주할 것이며, 이것을 대북제재를 완화시키는 데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관측은 거의 맞았다. 아니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북한 김정은의 협상 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결과를 낳았다. 김정은의 ‘완승’이라는 얘기다.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자 칼럼을 통해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렌코프 국민대 교수의 말을 인용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문제가 많은 회담이었다”고 비판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대북특사도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에 올린 기고문을 통해 “문서가 믿을 수 없는 모호한 내용”이라며 “지금 말할 수 있는 반응은 실망뿐”이라고 평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까지 미치광이 평가를 받던 서른네 살의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이 정상회담에서 예상 밖의 노련함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회담 전날 “우리의 원칙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로 대량살상무기(WMD)도 포함돼야 한다”고 했지만 공동선언문에 CVID나 WMD 용어는 없었다. 핵폐기와 핵물질·시설의 신고·사찰·검증에 관한 일정도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일정표 등 직접적인 족쇄를 피하는 대신 세계 최강국인 미국 정상과 핵 담판을 함으로써 핵국가로서 국제적인 지위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안전보장 약속까지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제 보장을 위한 단기적 실행 조치로 종전선언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약속도 ‘덤’으로 얻었다.
결국 김정은은 체제 보장 약속,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 실질 가치가 높은 7개 항목을 챙겼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효용가치가 떨어진 탄도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를 비롯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유해 발굴, 핵 관련 고위급 회담 약속 등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세 가지를 얻는 데 그쳤다. 핵 관련 고위급 회담 약속은 오히려 북한의 시간 끌기 전략에 말려들어간 성격이 있고, 북한이 강조해 온 ‘핵보유국’ 주장이나 ‘핵군축’ 및 ‘단계적 동시적 이행’에 힘을 싣는 격이 됐다. 비핵화 합의라는 것도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일뿐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의 비핵화가 북미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의제였는데, 합의문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모호한 말 뿐이었다. 아무리 회담의 성과에 대해 미사여구로 포장을 한다 해도 역사적 담판이라고 기대했던 합의문은 어떤 구속력도 갖고 있지 않다. 이 합의로 북핵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우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떤 의미인지 모호하다. 판문점 선언 당시에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북핵의 구체적 해결방안과 로드맵을 북미정상회담의 몫으로 넘겼었다. 그동안 미국은 줄곧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주장해 왔지만 정작 회담을 통해 얻은 것은 ‘완전한’이란 한 단어이고, 그것도 ‘노력한다’는 모호함 뿐이다.
이 같은 불완전한 합의는 향후 한국 안보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북미정상회담 전에 “이번 정상회담에선 전반적인 합의나 선언만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던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 이사는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핵위협은 제거되더라도 한국·일본을 공격에 취약하게 만드는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고 우려했다.
CNBC도 11일 관련 전문가들을 인용,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양측이 비핵화에 합의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미국의 방위체제에 의존하는 아시아 동맹국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북미정상회담이 아시아 안보상황엔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 대두됐었다. 이같은 우려는 정상회담 후 현실이 되고 있다. 당장 8월에 예정됐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UFG 유예가 19일 공식 발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한반도 안보에 많은 우려를 가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워게임’(전쟁놀이)으로 표현하면서 “워게임은 중단하면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평가절하며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가능성을 내비췄었다.
한국 안보와 한미동맹조차 돈으로 계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적 마인드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한미훈련은 단순한 워게임이 아니다. 한미훈련은 북핵문제에 확장적 억제력을 부여할 수 있는 큰 의미를 갖기 때문에 미국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한미군사훈련 중단은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중차대한 카드를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워)게임을 중단하는 것은 김 위원장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혜택”이라고 보도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은 그동안 북한의 중단 요구를 지속해서 거부해왔으며, 미 국방부도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준비태세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환영받을 조치”라고 평가했다.
CNBC는 13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발표가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에 주요한 안보 우려를 안겨 줬다”고 보도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교 교수이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건 북한과 중국의 장기적인 목표였다. 트럼프는 북한이 1990년대부터 주장해온 일반론만 가지고 아무런 대가 없이 훈련을 중단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안보 동맹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감에 주요한 요소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한미 관계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에 있어 핵심 요소이며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의 안보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유라시아그룹의 아시아 책임자 스캇 시먼은 이런 이유에서 “트럼프의 양보는 특히 북아시아 국가들에 엄청난 걱정거리”라고 주장했다. 이제 북아시아 지역의 방위 태세와 미국과 관계 약화 등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한국으로서는 군사력 약화, 방위비 부담 가중도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병역자원의 급격한 감소가 이뤄지는 가운데 현 정부 들어 병역기간도 18개월까지 단축하기로 하면서 병사들의 숙련도마저 현저히 낮아질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 정부는 병역자원 감소를 무기의 첨단화로 보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는 약간의 질적 우위가 상대방의 양적 우위를 상쇄하기는 어렵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더구나 첨단무기 도입도 예산 확보와 조달 과정의 행정적 문제, 무기개발 및 양산에 들어가는 물리적 시간을 감안하면 중장기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면한 군 인적자원 감소 문제를 상쇄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를 조정하려면 이로 인한 방위력 감소를 상쇄할 수 있을 만큼의 국방력 강화정책이 완성된 후에야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다.
연합훈련 축소는 미국에 의존해온 안보의 자주화를 요구하고 국방예산 증가를 필요로 하지만, 북한은 남북 간 동시진행의 원칙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들어 한국의 군축 요구를 본격화할 것이므로 군비 증강 필요와 군축 요구라는 두 이슈가 상충될 수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미북 정상회담 평가와 한국의 안보 우려’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번 미북정상회담이 비핵화 부분에 있어 과거의 합의문에 비해 퇴보했다”고 평가했다. 미측의 준비 부족이나 북한의 비협조로 타협안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자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해 차선책으로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뮤니케’의 내용과 유사한 방식으로 합의를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은 한반도 안보에 많은 우려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도발적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간 동 훈련에 반대해 온 북한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평했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고, 한미동맹을 발전시킬 수 있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모호성을 유지해왔던 비핵화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해 향후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측 대표와의 협상에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미측에 전달하고, 미국의 ‘초기적재’ 방식에 대한지지, 비핵화 수준과 속도에 발맞춘 제재 해제와 경제적 보상, 종전선언의 신중한 접근과 같은 정책 전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