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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뒤 동북아 위험 커져

천안함 사건 뒤 동북아 위험 커져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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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태는 한반도 위험 알리는 전주곡 …

주변국 역학관계의 변화에 대응하고 한반도 관리 서두를 때

온 국민이 비통에 잠긴 천안함 침몰 사건은 세계 유일의 적대 분단 상황을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국제사회에 일깨운 한반도 최대 현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북한의 ’비대칭전력’에 대한 우리 군의 대비태세 재점검을 지시하면서, “나는 이 사태가 터지자마자 남북관계를 포함해서 중대한 국제문제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북한을 염두에 두고 한반도문제의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은 상하이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천안함 사건을 알리고 중국측의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아무런 사전 귀띔 없이 있다가 불과 60시간 뒤에 북ㆍ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뿐아니라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파격적인 예우로 맞아들였다. 북ㆍ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경제협력 심화’를 비롯해 전면적인 협력관계를 선언했다. 이는 지난해 핵실험에 따른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특히 두 나라 최고지도자는 내밀한 미래 과제까지 교환했다. 김 위원장은 “조ㆍ중간 전통적 우의 관계는 시간의 흐름과 세대교체로 인해 변화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후 주석은 “양국 우호관계를 대대손손 계승하는 것은 양국의 공통된 역사적 책임”이라고 화답했다. 김정일로서 가장 중요한 현안인 북한의 세습 후계체제를 중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중국은 그 대가로서 무엇을 받았나. 후주석은 ‘내정과 외교 문제, 국제정세에 대한 전략적 소통 강화’를 양국의 합의사항으로 제시했고 김 위원장의 동의를 받았다. 중국이 앞으로 보다 강력하게 북한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신화통신은 이를 양국의 ‘혈맹관계’가 강조된 것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과연 북ㆍ중이 좋기만 한걸까. 사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이번이 그 어느때보다 힘든 방중 길이었다. 두 차례의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 화폐개혁 실패로 인한 경제난, 후계자 선정과 건강 문제 등이 걸려있는 데다 천안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말그대로 사면초가 상황에서 유일하게 기댈 언덕이라고 여긴 중국으로 다급하게 달려간 것이다. 중국은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극진히 환대하며 맞았다. 북한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미얀마 짐바브웨 같은 독재정권에도 ‘내정불간섭’ 원칙으로 다가가 환심을 하고 자원확보, 영향력 확대 등 최대한의 이익을 챙겨왔다. 그런 중국이 북한을 향해 ‘내정’ 문제를 외교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내정’ 문제는 중국에게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왔던 부분이었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북한이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중국은 북한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므로써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기회를 놓지지 않았다. 이것이 중국이다. 지난 2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중국을 이렇게 평했다. “중국의 정책결정은 아주 간단한 사실에 기반을 둔다. 중국 정부는 자국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국 이익에 반하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도 무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700여 년간 이어졌던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을 폈다. 더우기 중국이 G2로 불릴만큼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아편전쟁 이전의 중화사상이 되살아나고 있다. 중화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는 자신들의 종속국이다. 그 땅에서 미국같은 나라가 큰소리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내버려둘수가 없다. 북한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미 종주국의 자리를 꾀찼다.

그럼에도 아직 정부나 정치권의 대중국 대응은 순진하고 서툴기 이를데 없다. 우리는 중국 일각의 친한론만 골라 편식하고,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운운하는 중국 정부의 수사에 도취해 있었다. 중국이 6자회담 중재에 우리와 같은 인식을 하길 기대하고, 중국과 천안함 사건 공조가 다 된양했다. 그러다 북ㆍ중 정상회담 소식에 뒤통수를 맞은듯 격분해했다. 김정일 방중이 미리 예견됐음에도 사전외교를 펼쳤어야 할 주중대사는 사적인 용무로 미국과 서울에 체류하고 있었다. 우리의 우려를 성심을 다해 설득력있게 전달해도 시원치않을 판에 외교당국은 격앙돼 중국대사를 불러 ‘훈계’까지 했다. 그것도 모자라 통일부 장관까지 가담했다가 중국 측으로부터 항의를 받는 등 물의를 빚었다. 급기야 ‘한·중 갈등설’이 부각되자 이를 진화하려 허둥대는 모습마저 보였다. 진심도, 전략도 없이 우리에게 유리한대로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 외교를 펼쳐서야 어떻게 세상의 중심에 복귀할 준비가 된 중국을 우리편이 되게할 수 있는가.

북중 관계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부터 해야한다. 중국은 이미 북한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먼저 예측한다. 그럼에도 중국이 세계적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북한의 손을 계속 잡아주면서 국제사회의 눈총과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중국이 전적으로 대한민국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의 불안정세에 대해 중국이 느끼는 불안에 대해 중국의 시각에서 우리가 책임있는 자세와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더 나아가 향후 가야할 남북통일의 길이 중국의 지속적 성장과 장래적 이익 실현에 부합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천안함 사건 뒤 한반도에 이는 파고가 만만치 않다. 북ㆍ중의 밀착이 상호호혜의 원칙이 아니라 북한의 대중국 의존이 심화되고, 중국의 커진 국력을 과시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를 놓고 북ㆍ중-한ㆍ미간 대결구도가 강화될 수 있다. 경제피폐와 주민불만 속에서 불안 정세를 이어가는 북한도 문제다. ‘금강산 동결’에 나서고, 중국에 ‘내정’을 내어주기까지 굴욕외교를 펼치는 것은 그만큼 북한 사정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오직 한곳 중국을 의지한 북한이 한계상황에 부닥치면 오판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 대통령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비대칭전력’ 대비태세 강화를 강조했듯, 북한군은 잠수함(100여척), 특수전병력(18만명), 탄도미사일(900여기), 군사분계선에 집중배치해놓은 방사포등(350여문), 화학무기를 갖추고 수중과 후방 땅굴로 동시다발 침투훈련 등 기습공격과 대량살상이 가능한 ‘비대칭전력’ 위주로 군사력을 강화해왔다.

천안함을 두 동강 낸 서해의 파고는 전주곡에 불과할지 모른다. 천안함 사태와 김정일 방중 사건은 오늘날 격랑에 휩쌓여가는 한반도와 주변국, 위험이 높아가는 중국과 북한의 변화 상황을 일깨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치밀한 전략과 진심을 다한 주변국 외교로 한반도 관리에 나서야 할 때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만이 동북아와 신 아시아 시대의 안정과 번영, 세계 평화를 담보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한국에 세계 평화와 선교의 사명을 주셨다. 이 사명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하나님은 한반도에 넘실거리는 수많은 위협 앞에서 하나님께 민족의 운명을 의탁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요엘 2:11) 하나님이 맡기신 민족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백성이 된다면 우려와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고, 어떠한 광풍도 순풍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의 역사가 영영한 증거가 될 것이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사 5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