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입법에 여야 합의 후 다시 극한 대치 …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첫 관문 될 것 (암 5:24, 마 25:14~30)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을 지난 22일 여야가 수용하면서 새 국면에 들어서는 듯 했으나 국민의힘이 재협상 카드를 꺼내들면서 여야 갈등 국면이 다시 극한 대치로 치닫고 있다. 중재안 수용 당시 국민의힘은 반대만 할 경우 민주당 원안대로 통과되는 것을 적은 의석수로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어쩔 수 없이 수용했었다. 다만 중재안의 여야 합의 과정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살렸다는 데 위안을 삼았었다. 민주당은 중재안으로 검찰의 수사권 폐지의 시행 시기를 늦춘것에 불만이었으나 원안대로 밀어부칠 경우의 국민 여론 악화의 부담이 너무 컸기에 여야 합의를 내심 반기는 분위기였다.
중재안은 검찰이 현재 갖고 있는 6대 범죄 수사권마저 완전 내주게 됐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검수완박 원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4개 수사권은 법시행 4개월 만에 내줘야 하고, 나머지 부패 경제 2대 수사권도 중대범죄수사청이 설립되면 1년 6개월 후에 이양되게 돼 있었다. 검찰은 기소 전문 사법기관으로 남고, 우리나라 70년 사법체계 전반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재안은 처음부터 실현되기 힘든 안이었다.
이 같은 혼란이 생긴 데에는 민주당이 검수완박법을 윤석열 정부 출범 1달 전부터 급속 추진하고 나서면서부터이다.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벌써부터 주장해 오긴 했지만 우리나라 사법체계를 바꾸는 일이므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지난 3월 9일 20대 대선이 정권 교체로 결론 나자 자신들이 의석수로 밀어부친다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뻔한 상황이 되면서 윤 대통령 취임 전에 법 제정을 완료하기 위해 서두르게 됐다. 민주당은 검수완박법 원안에 비문이 포함됐을 정도로 법조항을 급조하며 서둘렀다.
현재 검찰이 갖고 있는 6대 범죄 수사권이 폐지되면 대장동 사건,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모든 의혹 사건에 대해 검찰이 손을 떼야 한다.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급히 밀어부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이같은 저의를 갖고 있는 민주당의 졸속 입법 강행에 국민의힘이 중재안 수용으로 부응했다는 것은 사법 관계자들과 국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야합’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에 대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빼므로 ‘기득권 보호’ ‘정치인 면죄부’를 위한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여야 합의로 중재안이 이러한 비판을 불렀다는 것은 중재안의 당위성을 잃은 것이다. 국가 형사사법 체계가 정치권의 흥정과 협상의 대상처럼 보였다는 것도 정치권에 큰 생채기를 냈다. 중재안이 실현되기 힘들었던 이유는 또 있다. 중재안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양당의 입장은 달랐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권이 폐지되는 범죄는 법 시행 즉시 경찰에 모두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검찰이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은 법 시행 후에도 계속 수사해야 하고, 법안 시행 뒤 발생할 사건만 경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중재안 대로 갔더라도 여야의 입장 차이로 인한 충돌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급조 법안, 졸속 입법 추진에 더해 여야의 불안한 합의까지 모든 것이 중재안이 실현되기 힘든 조건이었다.
70년 형사법의 절차법을 공청회도 없이 1주일 새 여야가 뚝딱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법안화 과정에서 이견 가능성까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원천적 문제가 그대로 남았다는 점은 중재안의 가장 큰 결함이었다. 즉 중재안의 핵심은 검수완박의 큰 틀이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검수완박 법의 논란의 핵심으로 들어가 보자. 중재안을 민주당 혼자 밀어붙일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므로 중재안을 기초로 검수완박법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살펴본다. 첫번째 문제는 범죄자에게 유리한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되는 것이다. 검찰의 전문 수사력이 사장되는 문제, 검찰의 보충 확대 수사가 안되는 문제, 경찰에 과중한 수사업무량의 문제, 일선에서 범죄자와의 결탁 가능성을 견제할 장치 부재로 인한 문제, 정치 권력에 대한 수사 문제 등이 모두 합해져 범죄자가 범망을 피해갈 여건이 커질수록 그 피해는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검찰의 전문 수사력 사장 문제부터 보자. 범죄는 단순 폭행 절도 사건만이 아닌 형법, 민법 등 각종 법률이 다 얽혀있고 무슨 죄를 적용해야 되는지 변호사마다도 의견이 갈리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범죄들이 존재한다. 경찰은 채용때 형사법이 중심이다. 반면 검사는 모든 분야의 법을 다 공부하는 법률전문가이기 때문에 사건을 바라보는 시야부터 경찰과 다르다. 이런 기반에서 직접 수사 경력이 쌓여지면서 검찰은 모든 범죄에 대한 사법처리의 최종 보루로서 역할할 수 있었다.
또한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경찰 권력을 견제하는 검찰의 역할은 지난 70년 간 정착된 형사사법 체계인데 이를 허물면 이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하지만 그 대안은 없이 경찰 권력은 더 키우고 검찰의 축적된 수사력은 없애는 것을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의 보충 확대 수사가 안되는 문제도 보자. 중재안은 기존 민주당 법안과 달리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직접 수사를 할 수 있게 했다며 이를 경찰에 대한 검찰의 ‘견제 장치’로 진일보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이 보완 수사를 하면서 새로운 범죄 혐의를 발견하더라도 수사를 할 수 없게 해놨다는 점이다. 즉 중재안은 ‘경찰 송치 사건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속에서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해 보완 수사 중 새로운 피해를 발견해도 피해를 구제할 수 없고, 보완 수사 과정에서 범죄 수익 은닉, 무고, 위증 등의 새로운 혐의가 발견되더라도 수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얽히고설킨 조직 범죄를 근원적으로 뿌리뽑는 수사가 원천봉쇄돼 다단화 첨단화된 사회일수록 늘어나는 복합 범죄에 필요한 종합 수사력이 사장되고 범죄자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는 것이다.
경찰에 과중한 수사업무량의 문제를 보자. 검수완박이 아니라도 벌써부터 경찰의 수사업무 과중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개혁의 일환인 법개정으로 새로 시행된 검경수사건 조정 이후 경찰이 전체 수사 업무의 95% 이상을 감당하고 있고 수사관 한 명당 사건을 적게는 50건부터 많게는 200건씩 가지고 있어 수사 기피가 심각하고 경찰 수사 조직이 붕괴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맡고 있는 6대 범죄 중 4대 범죄까지 경찰이 떠앉게 되면 전문수사력이 필요한 중대범죄 수사에 차질은 물론 범죄마저 더욱 기승을 부릴 여지가 커진다. 일선에서 범죄자와의 결탁 가능성을 견제할 장치 부재로 인한 문제와 정치 권력에 대한 수사 문제도 보자. 멕시코, 필리핀 등에 경찰의 범죄와의 결탁은 국가가 몰락하는 가장 큰 원인임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견제가 없는 수사권력의 출현, 그것도 일선 수사기관의 비대한 권력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게 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대안 없는 수사권 이양은 그 자체로 문제를 내포한다. 부작용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몇 년 뒤 경수완박(경찰 수사권 완전 박탈) 소리가 나올 것이다. 특히 경찰청장 이하 일선 과장급까지 임명권자가 모두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권 수사를 할 수 있을까.
물론 정치검찰의 행태도 많았지만 그나마 검찰의 독림성 확보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가능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