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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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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새겨야 할 하나님 뜻

광복절에 새겨야 할 하나님 뜻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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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츠담 선언은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중국이 독일 베를린 포츠담에서 일본에게 항복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13개 조항의 항복 조건을 약정·선언한 것을 말한다. 그 후 소련도 이에 가입하였고 일본도 처음 이를 수락하였으나 결국 거부한다. 이에 따라 연합군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였고 소련도 참전하자 뒤늦게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 대한 수락을 결정하게 된다.

외세에 휘둘리던 약소민족의 설움 …

남북통일 위해 오직 하나님 의지하고 유월절 신앙으로 무장해야 (잠 3:5, 6, 창 12:14)

일제의 식민침탈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8.15 광복절이 올해로 71돌을 맞는다. 백성들이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하루가 지난 16일이었다. 16일 10시 조선총독부가 서대문형무소 등 전국에 있는 형무소에서 1만여 명의 정치범과 사상범을 석방하자 이들을 중심으로 만세 소리가 전국으로 번졌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쏟아져 나온 시민들로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한 전국의 거리거리는 순식간에 손에 손에 든 태극기와 만세소리로 뒤덮였다. 그러나 이 땅과 백성이 그렇게 고대했고, 흥분과 감격의 도가니가 되어 맞이한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 뒤에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민족 분단의 비극이 숨어 있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이미 일본의 패망과 대한독립의 희망은 1943년 11월 27일 미국, 영국, 중국이 대일연합전선을 구체화한 카이로선언에서 피어올랐다. 일본이 약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세력을 축출하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진하기 위해 싸울 것을 천명한 카이로선언은 특히 “노예 상태에 놓인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결의를 다진다”고 명시해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받았다.

이후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5년 7월 26일 미·영·중국 수뇌는 다시 독일 포츠담에 모여 일본에 대해 무조건 항복을 권고한 포츠담선언을 발표한다. 당시 일본은 해. 공군이 궤멸되고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까지 연일 B-29 폭격기의 융단폭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간타로 일본 수상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포츠담선언을 묵살한다’고 발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은 곧바로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히로시마 시민7만 명이 죽고 13만 명이 부상했으며, 도시의 60%가 파괴되었다. 나가사키에서는 4만 명이 죽고 5만 명이 다쳤다. 세계사 최대 참사였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들은 소련은 9일 157만 대군으로 만주로 물밀듯이 밀고 들어와 불과 2틀 후 한반도 함흥까지 진격했다. 결국 8월 15일 12시 일왕의 항복 선언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일본인들은 유럽의 전쟁터보다 더 넓은 지역에 3천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고국을 떠나 흩어져 있었다. 일본 정부는 암호를 통해 대사관 등 해외 기관에 “일본 거류민은 가능한 한 현지에 정착하는 방안을 모색하라”는 밀령을 내렸다. 일본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포기한 것이다.

일본이 수 없는 악행 끝에 이렇게 KO패를 당하고 쓰러졌음에도 억울하게도 그 화가 40년간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최대 피해국 한국에 임했다. 일본군을 축출한다는 구실로 쳐들어온 소련이 한반도에 파죽지세로 쳐들어오자 미국이 당황했다. 어떻게 하든 소련을 어느 지점에서 멈추도록 막기 위해 미국은 한반도 중간인 38도선 분할을 결정했다.

미국이 일본을 독점하려다 보니 그 바로 옆 한반도에 공산국가가 탄생하면 방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일본이 항복하기 전인 8월 11일 ‘항복접수지역분할’ 문서를 통해 한반도를 두동강 내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마자 38도선을 경계로 남에서는 미군이, 북에서는 소련군이 항복을 받는다는 ‘’일반명령 제1호’를 스탈린에게 통보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미국과 소련에게 자연스러웠던 이유는 또 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극동문제에 대해 따로 체결했던 비밀의정서가 근원이었다. 소련이 독일 항복 후 2~3개월 이내에 대일전에 참전하고, 그 대가로 연합국은 소련에게 러일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반환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태평양전쟁을 끝내기 위해 소련의 참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끝내 눈치만 보며 미적거리다가 미국의 원폭 투하 후에 재빨리 참전해 불과 7일 만에 이 같은 소득을 얻었다.

한편, 만주에서 소련 군정이 실시되자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이 틈을 타 세력을 빠르게 넓혀 나갔고, 소련군에 편입되어 한반도 진입을 준비하던 김일성의 88여단은 불로소득을 얻은 셈이 되었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 그러나 만약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바로 항복했다면 한반도 분단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소련군의 침공과 원폭 투하도 피했을 것이다.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한반도보다는 만주의 이권과 일본의 북쪽에 관심을 쏟았다. 스탈린은 미국의 한반도 분리 점령 통보에 즉각 “아무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답하면서 일본의 홋카이도 북부를 넘겨주고, 일본 점령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38도선을 바다로 연결해 사할린과 쿠릴열도는 물론 일본의 38도선 북쪽을 가져가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대해 트루먼 미 대통령은 홋카이도를 포함한 일본의 4개 섬은 이미 맥아더 장군의 항복 지역으로 할당되었다며 거절했다.

결국 일본열도 대신 한반도가 분할되었고, 한민족은 냉전의 최전선에서 같은 민족끼리 피 흘리는 전쟁과 지금까지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한 이로 인해 자주적 건국의 기회도 무산됐다. 일왕의 항복선언이 다가올 때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 류사큐는 70만 명이 넘는 일본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항복 선언 4시간 전인8월 15일 아침 8시 총독부는 여운형을 초대해, 조선총독부 행정기구를 자치조직에 넘기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여운형은 즉각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해 정권 인수와 치안 유지에 나섰다. 그러나 총독부에 일본정부로부터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총독부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묵살했다. 이 때 만약 건국준비위원회가 외세의 간섭 없이 좌우 측을 망라해 임시정부를 세웠다면 분단이나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미군정의 지원을 받는 이승만 박사보다 한 달 지나 환국한 김구 주석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북한을 방문해 통일협상을 벌이는 등 외로운 노력을 계속했지만 끝내 암살되고 말았다. 결국 우리 민족은 해방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남과 북, 반탁과 찬탁, 친소좌익과 친미우익으로 나뉘어 혼란에 휩쌓였고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려졌다.

이것이 식민과 외세에 힘없이 휘둘리던 약소민족의 모습이다.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입맛대로 남의 땅과 민족을 재단하므로 얻은 분단의 아픔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6.25전쟁으로 당시 3천만 인구의 6명 중 1명 이상이 죽거나 다치고, 1천만이나 되는 이산가족이 한 많은 생을 접고 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념 싸움과 친일 잔재는 민족 화합의 암덩이로 남아 있다. 일본은 아직 과거의 망상에 사로잡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왜곡을 일삼으며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의 자위권을 확대하고 사실상의 미국 전위대의 지위를 부여했다. 중국은 아시아 패권을 위해, 러시아는 막힌 유럽을 만회하기 위한 동진정책으로 한반도와 동북아는 다시 강대국들의 이해다툼장으로 변모했다.

세계가 나만 살겠다며 다시 고립주의를 향해 가고 있고, 한반도 주변 상황은 주변 강대국들이 늑대처럼 빈 틈새를 파고들던 8.15해방 전후의 상황을 닮아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동양에서는 역사를 현재의 거울이라 하여 ‘사감’이라고 불렀다. 누가 우리 민족을 지킬 것인가.

다시 한 번 8.15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8.15 광복절에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 첫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남북한은 해방 이후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일전을 벌일 태세로 서로를 겨누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 36년만에 노동당대회를 열었지만 여전히 변화 없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을 자축하며 전쟁과 김정은 체제의 우상화에 몰두해 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북한의 국제적 고립과 불안정성이 한반도의 일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한국이 절체절명의 각오로 주도적 통일 노력을 하지 못하면 북한은 중국화 되고, 분단이 고착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 민족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 남북통일과 그를 위한 노력이다. 민족 통일만이 하나님이 주신 8.15해방을 완성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세나 내 힘이나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40년 광야 생활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만이 가나안 땅을 회복하는 길임을 가르치셨다.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갖은 고난의 과정을 겪은 우리 민족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이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의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둘째, 유월절 신앙을 가져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탈출하기 전날 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재앙이 넘어가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사건(출 12:11~14)이 유월절의 기원이다. 하나님은 이후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월절을 대대로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창12:14) 단순히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라 해방을 시켜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민족 대대로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 같은 유월절 신앙은 신약에 와서 그대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출애굽 때 구원의 징표가 된 어린양이 곧 예수님에 대한 언약이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최후의 만찬을 가진 바로 유월절 날,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며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밝히 말씀해 주셨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다. 8.15 해방을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잘해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방시켜 주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월절 신앙이란 하나님이 주신 해방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이다. 유월절 신앙을 통해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로 연결되듯 유월절 신앙을 지키는 우리 민족이 복음화되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유월절 신앙을 우리 민족이 갖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 민족과 함께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