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 권력 구조 바꿀 ‘분권과 협치’ 개헌 시급 …
하나님은 우리 한국에 ‘눈에는 눈’의 악순환을 금할 것과 서로 같이 협력할 것 명하셔 (벧전 3:9, 고전 12:24)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산출한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 분야를 종합한 갈등지수에서 가맹국 가운데 가장 심각하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갈등사회로 빠져든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왜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첫째 이유는 승자 독식의 정치 제도 때문이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 일등이 100% 권력을 차지하는 구조로, 제로섬 게임처럼 상대가 이기면 내가 죽는게 명백한 이상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둘째는 진영 논리이다. 내 진영은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기 때문에 합리적 이성이나 객관적 진실이나 진리 같은 것은 안중에 없고 오직 권력을 공유할 ‘내 편’만 있을 뿐이다. 상대와 합의하면 변절자고 회색분자가 될 뿐이다.
이 두 부분이 한국 정치를 갈등 해소 시스템이 아닌 갈등 증폭 시스템으로 만든다. 정치 갈등은 한국 사회 전체에 갈등의 골을 깊게 파고 있다. 국민 안전·안보에 어떻게 이념과 정치가 개입되며, 최근 몇 년간은 일터·젠더·세대 갈등까지 정치권이 확장시키고 있다. 코로나19 펜데믹을 통과하며 소득·자산 격차는 더 심해졌고 시민사회 전반이 갈등과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합리적 객관적 판단과 이성은 실종되고 어떤 규칙과 기준도 내게 유불리 한가에 따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한다. 탈진실의 시대의 모습이다. 마치 우리 사회 전체가 더닝 크루거 증후군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넬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더닝과 그의 제자 크루거가 실험한 결과 잘 모를 수록 강한 의견을 피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념의 논리 체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의견이 대립되는 지점에서 반대 증거가 나오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고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도 설득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 주장에 맞는 정보는 사실 확인 없이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불리하면 확인되기도 전에 조작된 정보로 평가한다. 진영 입맛대로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와 닮아있다. 이들은 소속 집단에 동조하고 같은 견해를 가진 주변 여론에 휩쓸려 동일한 관점을 고수하는 경향이 크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합리적 판단보다 네 편 내 편으로 휩쓸리는 심각한 상황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닝크루거효과는 학벌을 가리지 않는다. 소웰의 연구에 따르면 고학력자들은 자신의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일류기관의 교육은 그들의 좁은 전문 지식을 광범위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소위 전문가들의 입을 활용해 진영논리를 강화하고, 진영논리가 강화될 수록 우리 사회의 진영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갈수록 변화가 빠르고, 얘기치 않은 위험 요소와 재난이 많아지고, 국가간 경쟁이 심화되는 오늘날에 있어 국가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담보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발전은 각 분야별 각별한 생산적 논의와 협력 구도로 시너지를 얻어야만 기대해 볼 수 있다. 깨어있는 합리적 이성이 절실한 시대지만, 지금 내 편, 내 주장만 넘쳐나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혐오와 갈등이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으로 발현되므로 국가 사회의 발전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 점이 큰 문제다. 특히 정치권이 앞장서서 지금 저렇게 자나 깨나 싸우고 서로를 헐뜯는데 언제 외교·안보·민생·안전을 돌볼 수 있는가.
지금 형국은 조선이 망할 때의 모습과 거의 같다.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은 예전보다 더 강성의 패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이 위로는 북한에, 바다로는 중국·일본이 겹겹이 쳐놓은 방공식별구역에 갇힌 모습은 오늘날 한국이 처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미·일과 중·러 4강이 극한 대치를 이어가며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각축전은 날로 더해간다. 방위 무기 하나 들여놓는 일도 주변국 눈치를 봐야 하고, 우리 영토 남쪽 상공에 신예 전투기들이 난무해도 구경할 뿐 뾰족한 방법이 없다. 우리 영토 동해에 미사일을 떨어뜨리기까지 과감해진 핵을 가진 북한이란 돌발 변수까지 자라나 있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연일 싸우느라 정신이 없고 분쟁에 시달리던 시민사회는 끝내 쪼개졌다. 내부 분열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특히 우리는 호시탐탐 적화를 노리는 핵을 가진 적을 머리 위에 이고 있다. 이런 때 영토분쟁이나 국지전이 4강 역학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우린 이미 구한말 때 똑같은 일을 겪었다. 정치권의 분열, 쪼개진 사회, 비전의 소멸, 그리고 이를 얕본 열강의 침략과 충돌, 이것의 결말은 민족의 파멸이었다.
일단, 정치권이 변해야 한다. 정치가 변화를 가로막는 사회는 위태롭다. ‘잃어버린 30년’의 일본이 그랬다. 우리 정치권은 지금 변화를 가로막는 것 위에 분열까지 조장한다. 갈등에 몰입하느라 최소의 도덕, 양식, 옳고 그름과 경중을 못 가리는 지경까지 왔다. 5년마다 모든 것이 원점이 되는, ‘도로’의 정치이기도 하다. 정치가 권력 만능에 경도되지 않고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고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성경은 싸움의 원인을 정욕이라고 지적한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은 우리 모두를 장님으로 만든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둘째, 시민이 깨어야 한다. 정치권에 모든 걸 맡기지 말고, 지식층까지 번져간 진영 갈등에 편승하지 않는 중도적 지혜를 한국 국민이 발휘해야 한다. 나부터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들은 후 내 입을 여는 태도를 습관화해야 한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다름보다 같음을 찾고, 반대 부분보다 공감할 접점과 공통분모를 찾아 확대하는 운동을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24)”
셋째, 제3의 대안으로서 개헌이 필요하다. 지금의 망국적 진영갈등은 승자가 100%를 싹쓸이하는 ‘승자독식’ 권력 구조에 기인한다. ‘분권과 협치’가 제도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개헌이 절실하다. 2017년 국회개헌특위와 2018년 대통령개헌안의 실패에서 보듯이 정치권의 합의만으로 개헌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권자인 국민이 앞장서서 요구하고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분권과 협치의 제도가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마음, 남을 인정하는 자세, 상호 협력을 통한 발전의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