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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인데 더 외로운 사람들

명절인데 더 외로운 사람들
명절은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외로움이 더욱 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혈연을 넘어 혼자 사는 노인과 청년, 이주민 등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을지 돌아볼 때다. · 사진 복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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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시간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족이 없거나 관계가 끊어진 사람에게는 그 부재를 가장 크게 느끼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추석, 한국교회가 ‘가족 너머의 가족’이 될 때

추석이면 사람들은 가족을 찾아간다.

고속도로가 막히고 기차표를 구하기 어렵고, 양손에는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든 사람들이 고향으로 향한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인사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추석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명절은 기다리는 날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외로움이 평소보다 선명해지는 날이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

혼자 사는 노인이 있다.

가족과 관계가 끊어진 중년이 있다.

취업과 결혼 문제 때문에 가족 모임이 부담스러운 청년이 있고, 배우자와 사별한 뒤 처음 명절을 맞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 일하지만 가족은 수천㎞ 떨어진 고향에 있는 이주노동자도 있다.

교정시설에서 명절을 맞는 사람도 있다.

명절은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시간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족이 없거나 관계가 끊어진 사람에게는 그 부재를 가장 크게 느끼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족이 모인다고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낸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도 아니다.

평소 묻어두었던 갈등이 명절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취업은 했는지,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인지, 성적은 어떤지, 연봉은 얼마인지.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던진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삶에 아무 질문이나 던져도 되는 것은 아니다.

명절에 필요한 것은 많은 말이 아니라 어쩌면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인지 모른다.

“즐거운 추석”이라는 말 뒤에서

올해 추석 연휴에도 정부는 가정폭력 피해자와 위기청소년을 위한 긴급지원체계를 운영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명절의 또 다른 얼굴이다.

모든 가정이 안전한 공간은 아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정의 회복’을 이야기할 때에도 가족이라는 이름만을 이상화해서는 안 된다.

폭력과 학대가 있는 가정에는 화해를 강요하기보다 먼저 피해자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 역시 폭력을 참으라는 요구가 아니다.

교회가 또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초대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혈연을 넘어선 공동체였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막 3:35)

교회는 처음부터 혈연만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명절은 교회가 그 본래 모습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명절에 혼자 있는 교인에게 전화 한 통을 하는 일.

고향에 가지 못한 청년을 식탁으로 초대하는 일.

외국인 노동자와 음식을 나누는 일.

독거노인을 찾아가 송편 한 접시를 함께 먹는 일.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된다.

올해 광주에서는 추석을 맞아 네팔·미얀마·태국·베트남·캄보디아 등 여러 국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행사가 마련되기도 했다.

교회가 명절을 선교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웃이 되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명절

법무부는 올해 추석을 맞아 전국 교정시설에서 가족 만남과 효도편지 보내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서울남부구치소에서는 어린 시절 가족과 헤어진 뒤 28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한 수용자가 가족 만남 프로그램을 통해 어머니와 재회하기도 했다.

28년.

한 사람이 어머니를 다시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모든 관계가 이렇게 회복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끊어진 관계는 영원히 끊어진 채 남을 수도 있다.

이번 추석,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이번 명절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가족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도 중요하다.

고향교회를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를 더 해보면 어떨까.

지금 혼자 명절을 보내고 있을 한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다.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일 수도 있고, 고향에 가지 못한 청년이나 이주노동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전화 한 통을 건네는 것이다.

“추석 잘 보내고 계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시간 되시면 같이 식사하실래요?”

예수께서는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40)

명절의 풍성함은 음식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 식탁에 한 사람의 자리를 더 내어놓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추석은 조금 더 풍성해진다.

올해 추석, 한국교회가 세상에 보여줘야 할 가족의 모습도 어쩌면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