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잠이 눈두덩을 짓누르고 두근두근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소풍 전날 밤하늘의 별을 몇 번씩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도저히 잠 못 들 것 같은 소풍 전날의 설렘이다.
책보라는 보자기에서 책을 꺼낸 후 엄마가 싸주시는 도시락에 삶은 계란 몇 개, 사이다 한 병이 고작이었지만 많이 싸고 적게 싸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하루를 놀 수 있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도 우리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해마다 바뀌지 않고 가는 소풍 코스이지만 먼 길을 잠깐이나마 떠나 있다는 자유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들게 했다. 휴식시간 십 분 동안의 갈증 나는 수다가 아니라 온종일을 떠들 수 있다는 것, 흙을 밟으며 나무를 만지며 친구의 손을 잡고 산길을 돌아가는 걸음이며 저마다의 맑은 웃음소리, 말소리, 새, 바람, 호루라기 소리 등을 채근하여 관조할 수 있는 것과 자연과 하나가 된 듯 여유로움에 젖어들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소풍, 추억을 더듬게 만드는 어린 시절의 기억의 지팡이다.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공인된 자유, 그날이 그리워진다. 내일 날씨는 어떨까? 별은 떴지? 엄마는 김밥을 어떻게 준비할까? 챙길 것을 확인하며 몇 번씩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상상을 해 본다.
곰곰이 우리 세대를 생각해 보면 자연과 한 몸으로 자랐고 찢어지게 가난했고 열악하기만 하여 질기고 질긴 삶을 살았고 추억이라고는 슬픈 기억을 떠올리며 못 견뎌하는 정 많은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합창을 하며 아스팔트 길을 지나고 이 모양 저 모양의 웃음꽃을 피우며 사진도 찍고 친구들의 장기자랑에 덩달아 우쭐대고 기뻐하는 마음의 오솔길, 유난히 여학생들을 괴롭힌 친구의 장난기 넘치는 웃음소리와 모습, 가지고 간 도화지 위에 멋들어진 그림도 그려보고 그동안 서먹하고 어려웠던 사제지간의 정도 맘껏 갈무리할 수 있는 날이 소풍이었던 것 같다.
작은 풀꽃들을 깔고 앉아 이 친구 저 친구들이 싸 온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보물 찾기에 기대를 걸고 열심히 산속을 날다람쥐처럼 헤치고 다녔지만 한 번도 찾지 못했지만...
가끔 가끔씩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읊조려 본다. 동백림 사건으로 죽음에 이르는 모진 고초를 겪었음에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끝까지 삶을 존중하며 더 맑은 영혼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세상을 떠나는 순간 아름다웠노라는 고백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좋았던 시간만 아니라 힘들었던 시간도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다짐이다.
“귀천(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강 순 구 목사
쉴만한물가선교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