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릴 기회 국민 손에 달려 있어 …
예수님 가르치신 사랑과 실용으로 우리 정치 바꾸도록 기도할 때(눅 6:35, 마 9:13)
22대 총선이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그냥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이런 극단의 정치, 증오의 정치는 없었다. 아무리 비리와 불법을 자행하다가도 발각이 되면 즉각 뉘우치고 사과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만이 국민 앞에 최선이었던 시절이 오래전이 아니다.
그때는 정의가 최상위 개념이었으므로 여든 야든 정의 앞에서는 찍소리를 할 수 없었다. 지금의 정치판은 어떤 죄를 지어도 ‘진영’에 기대 자신의 잘못은 나몰라라 하고 상대만을 척결해야 할 ‘악’으로 모는 극한의 싸움장이 되었다. 뻔뻔함의 극치이다. 정의나 도리마저 실종되고 자기편에 맞지 않으면 법치도 부정되는 아사리판이 지금의 정치판이다. 오직 권력만을 위한 니편 내편의 쟁투만 있을 뿐이다. 국민을 볼모로 역사를 후퇴시키는 이 같은 극단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극에 달하고 있다.
왜 한국 정치가 이런 모습으로 전락한 것일까. 기득권화된 거대 양당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선거제도의 성립을 막고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안전의석’에 기대 상대편만 이기면 모두를 차지하는 권력게임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빈부의 양극화와 경제정책의 선호도가 갈리고, 거주지의 분리가 일어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지역주의에 기생하던 기성 정당이 더 많은 안전의석을 예상할 수 있게 되자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공천권은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고 계파 정치가 득세하고 자기 사람 심기로 극단의 무자격 정치인들이 대거 정치권에 들어와 극한의 싸움판을 부추기며 한국 정치를 극단의 악순환장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 정치가 지금 같은 모습이면 역사는 후퇴할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의 장래는 불보듯 뻔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과연 국가의 장래도 열려 있을까. 지난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그룹 A(아시아·아프리카)에서 그룹 B(선진국)로 변경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국가 경제 규모가 2020년 세계 10위, 2022년에는 13위이니 겉만 보면 선진국 지위를 받을만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다르다.
가장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극단적인 저출산이다. 연도별·분기별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 지난해 0.72명에 이어 올해 0.6명대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우리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미래 세대의 씨가 거의 말라버린 셈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2~2072년 장래인구추계’는 향후 한국이 연령 구성, 부양비, 출산율, 기대수명, 인구성장률 등 모든 부문에서 1등과 꼴찌를 번갈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로 인해 이미 경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고, 지방소멸, 군대해체 등 여기저기서 구멍이 뚫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의 2배를 훨씬 넘는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25.2명) 1위, 노인빈곤율(40.4%) 1위, 가계부채 증가율 1위, 미세먼지, 행복지수 최하위가 우리나라이다. 기후위기, 북핵위협, 냉전확산, 국가이기주의 등 우리나라가 살기 위해 산 넘어 산의 숱한 과제들이 앞에 놓여 있다. 각종 지표로 보면 선진국 문턱만 밟았다가 끝없는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는 형국이다. 이런 위중한 상황인데 한국의 미래를 이끌 정치가 악화일로로 가면 나라가 몰락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마지막 기회를 잡아야 한다. 3개월 후 총선을 통해 국민이 지금의 우리나라의 극단의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향으로 바로잡아야 할까.
첫째, 진영정치를 끝내야 한다. 지금의 진영정치는 옛날 숱한 사화를 몰고 왔던 당파싸움을 방불케 한다. 전쟁이 나도 편의 눈으로 편만을 고집하다 결국 조선이란 나라가 망하고야 말았다. 옛날 당파싸움은 왕이 왕권을 강화할 수단으로 당파를 이용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선진화된 민주사회라는 지금, 정치권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역사는 급류로 흐르는데 거대 권력의 중심 대통령 자리를 놓고 벌이는 정파간 싸움이 급류에 휩쓸려 방향조차 못잡고 있다. 오직 기득권과 정파적 이해난 난무한다. 승자는 오만과 독주에 빠지고, 패자는 물어뜯는 극한투쟁만 남는다. 진영으로 갈린 지지층은 이를 똑 같이 닮아 불구대천 원수가 된다.
나라가 결딴나는건 시간문제다. 극단의 진영정치가 우리 사회에 증오를 퍼뜨리고 있어 더 큰 문제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은 증오로 합리적 이성이 사라진 끔찍한 괴물이 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반대 진영의 정치인들을 악마로 여기는 극단의 지지진영이 만들어지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악마로 간주하는 우리의 정치 문화의 책임이 크다.
극단의 정치를 끝내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총선 전에 거대 정당에 유리한 승자독식 방식의 소선거구제를 바꾸고, 군소정당에 절대 불리한 병립형으로의 비례대표제 회귀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진영과 정파를 벗어나 정의롭게 정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치를 정치인들이 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을 뽑은 건 우리 국민이다. 우리 헌법 제1조2항은 권력의 주체를 국민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유권자의 참여와 냉철한 판단으로 망국병인 극단의 진영정치를 끝내야 한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조지프 메스트르의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은 지금도 명언이다.
둘째,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과거 386세대가 586, 686이 되기까지 기득권화되면서 진영싸움이 더 격해진 양상이다. 이들은 자기만이 선이고 상대는 악인 이중잣대를 지금 현실에도 투사한다. 조국 사태, 오거돈·박원순·안희정의 성추행, 은수미의 직권남용, 윤미향의 공금 횡령, 노웅래의 뇌물수수, 송영길·윤관석의 돈 봉투 살포, 이재명·김용·정진상·이화영의 대형 토착 비리가 세상에 밝혀져도 자기들은 선이고 악에 의한 희생양이듯 더 목소리를 높인다. 미움은 좋아질 소지를 내포하지만, 악은 용서와 타협의 여지가 없다. 한국 정치에서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종식하려면 386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국민 중에는 극단의 정치를 혐오하는 중도파 또는 무당파와 이념이나 진영의 안경을 벗은 젊은 세대가 많다.
한국 정치가 지역갈등을 넘고, 진영갈등과 세대갈등도 넘어서 시대정신이 다시 넘실대는 세상에 우뚝 서게 해야 한다. 상대를 물어뜯는 자세에서 돌이켜 시대를 헤쳐갈 정강정책 경쟁을 벌이고 국민의 힘을 모아 국력을 만드는 애국과 희생의 아이콘인 정치인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선과 악, 니편 내편을 결코 가르지 않으셨다. 대신 극한 대결을 중단할 사랑의 마법을 가르치셨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 6:35)”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심지어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모두가 상종치 않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것도 남편이 다섯 여섯 씩이나 있는 죄 많은 사람에게 물 좀 달라고 부탁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에게도 똑같이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우리를 갈라놓는 편, 진영, 이념이 먼저가 아니고 사랑이 먼저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먼저이다.
이제 총선을 앞두고 한국 정치를 살리고 국가와 국민을 실용과 화합으로 이끄도록 만들 힘이 국민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