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열린 일본 총선에서 집권당인 자민당이 민주당에 크게 패해 집권 54년만에 정권을 내놓게 됐다.
(사진은 지난 2008년 9월 22일에 열렸던 자민당 총재 후보자들이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모습)
변화 선택한 일본의 도전 …
일대 변혁기에 놓인 세계 앞에 한국의 갈 길은?
패전국에서 세계 2위의 경제강국으로 올라선 일본, 그 중심에 자민당이 있었다. 한 왕조도 아니고 한 당이 세계 정치사에 없는 54년간 정권을 유지했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했던건 국가주도의 성장 정책과 함께 꾸준한 분배 정책을 통해 어느나라보다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된데 있었다. 일본은 80년대까지만 해도 1억 명의 인구가 중산층이라는 ‘1억 총 중류’ 신화를 구가했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세계 어느나라보다 적었다. 안정된 경제 사회적 여건은 정권교체의 필요도, 기회도 없게 만들었다. 일본에서 정권이 바뀌는 것은,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의 위기가 시작된 건 90년대 초 버블(거품)이 붕괴되면서다.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던 일본 경제의 호시절이 막을 내리고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운 장기침체에 들어섰다.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자민당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오랜 1당 독주로 인한 뿌리깊은 파벌 세습정치와 부패 관료주의의 폐해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1년 고이즈미 총리가 ‘21세기에 맞는 대대적 경제 사회 개혁’을 표방하며 무너져가던 자민당의 구원주로 등장했다. ‘규제완화’와 ‘감세’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근간으로 과감한 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무한경쟁시장은 자본과 기득권에 더 많은 기회와 이득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경기활성화가 이뤄지는듯 보였지만, 빈부격차 심화라는 더 큰 화를 초래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의 시장 원리주의적인 정책이 양극화 사회를 조장하고 지방의 피폐를 초래했다”고 자민당 몰락의 원인을 진단했다.
오늘날 일본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38%로 급증했다. 실업률이 5.7%로 전후 최악이다. 국가의 재정부담이 늘면서,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8배(816조엔)로 급팽창했다. 국가채무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값의 두 배가 넘는다.
이러다보니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 예산중 국채의존도가 선진국 가운데 최악 수준인 30%를 기록했다. 내수가 위축돼 기업들은 상품 가격을 내리고, 이는 기업 실적악화와 고용불안, 성장둔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물가와 성장률이 동반 하락하는 장기 불황의 디플레이션 현상이다.
일본의 위기감은 또 있다. 국제적으로 중국이 G2국가로 부상하며 아시아의 대변자로 나서는 등 세력판도가 변하고 있지만, 일본은 내부의 어려움에 힘겨워하며 이류국가로 전락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로 선진국들은 소비가 줄어 고전하는 반면 제조업이 강한 아시아 지역은 이번 경제위기를 빠른 속도로 극복하고 있다. 작년 일본의 중국, 한국, 대만 등 주요 아시아 3국과의 무역규모는 44조엔으로 미국의 22조엔의 두배이다.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는 신 아시아 시대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일본이 밀려나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그 어느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은 국내외적으로 이같은 일본의 절박함이 반영돼있다. 일본의 대안이자 희망으로 선택된 민주당은 그 어느때보다 막중하고 힘겨운 과제들을 안고있다. 민주당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 정치의 중심을 관료에서 국민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중산층 붕괴, 비정규직 폭증,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간 격차 등 양극화 문제의 해소를 통해 안정 성장을 실현하는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자녀수당, 출산수당, 저소득층 지원, 실직자보호, 농어촌 소득보상제 등 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또한 하토야마 대표는 “아시아 지역국가의 일원으로 역할을 다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대한 의지로 나타난다. 지역내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적 행위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자립과 질서를 수립하는 장치를 갖추자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협력 강화로 G2국가로 부상하면서 날로 설자리가 좁아지는 일본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아시아공동체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어느 때보다 적극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민주당의 개혁정책엔 많은 난관이 기다린다. 개혁과정에서 터져나 올 사회적 갈등, 관료사회와 보수층의 반격도 예상된다. 복지정책엔 연간 218조원의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지만 일본의 누적 재정적자가 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장기화돼 일본사회의 구조가 변화하고, 경제 활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일본이 대내외적인 절박한 과제 앞에 변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옛 체제로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된 21세기의 새로운 환경과 시대적 조류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출구를 찾아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세계1위의 경제대국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을 선택했던 것처럼, 세계2위의 경제대국 일본 또한 변화를 선택했다. 그 변화의 핵심엔 공통적으로 ‘공생’에 대한 뼈저린 고민이 들어있다. 하토야마는 자신의 개혁정책을 ‘우애혁명’이라고 부른다. ‘우애’에 바탕할 때에만 국가 내부는 물론 국경을 넘어선 범위에서도 ‘공생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변화는 현실이다. 일본이 보여준 변화는 우리 모두 세계사의 전환점에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일본의 변화는 이웃인 한국에 특히 남다르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수출주도형 경제구조 등 일본과 거의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또한 미리 심각하게 대응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출산과 양극화를 막을 복지 확대책을 강구하고 내수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촉진시켜 경제 전반을 활성화시키고, 함께 공생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아시아의 지역 외교가 보다 활발해질 것이다. 경제문제뿐 아니라 안보, 환경, 대테러 등 다양해진 현안들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치열한 협력과 경쟁의 한판을 벌일 것이다.
일본이 우애외교를 표방하는 지금을 한국은 새로운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주변 강대국을 따라갈수 없는 한국으로서는, 공생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통일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킬 외교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해야 한다. 일본의 문제에도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므로 한일간에 남은 많은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의 길을 열어야 한다. 아람과 이스라엘은 적국이었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아무 조건없이 아람왕 나아만의 병을 치료해 주므로 평화의 길을 열었다(왕하 5:5~15).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만이 불행이 커가고 있는 지금의 세계 문제를 해결할 해법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공존공생’의 원리는 첫째, 남이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주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둘째, 서로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4) 세계가 정치, 사회, 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지금, 동북아 평화의 견인차가 되야할 우리 한국이야말로 그 해법이 될 ‘공생’의 길을 함께 열어갈 책임이 있음을 상기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