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란 세상은 무엇이었나?…대한민국의 비극 극복하려면 우리 모두 반성 앞서야
23일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이 온 국민과 나라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직전 대통령이 퇴임 1년 3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크나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고향에서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자 했던 노 전 대통령, 그는 남은 꿈을 가슴에 안은 채 영영 떠나고야 말았다.
그는 늘 꿈을 꾸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언제나 암벽처럼 높은 현실의 벽과 마주해야 했다. 그에게 현실은 신록이 가장 푸르른 5월의 빛이 바랠만큼, 더이상 꿈꾸기를 포기할 만큼 힘든 것이었다. 꿈꾸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고, 대한민국의 희망을 상징했던 사람, 그래서 그의 죽음은 더 충격적이다. 정치적 기술이나 기득권의 파워 없이 순수한 열정을 유일한 자산으로 생각했던 대통령, 그의 죽음은 그래서 더 슬프다.
그의 꿈꾸기는 지독히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운명처럼 시작됐다. 부모는 산기슭에 고구마를 심어 겨우 생계를 꾸려갔고 학생 노무현은 학비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못갈 뻔한 중학교 입학도, 4년만에 이룬 중학교 졸업도 그의 모든 일상사가 꿈이자 도전이었다. 정치인이 된 뒤에도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항상 정면돌파를 택했다. 때로 그것은 무모했다. 그러나 그저 살아남기위해, 당장 모면하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이상을 향한 그의 일관된 도전이 국민들에겐 새 희망으로 읽혀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소신을 관철하는데 온 몸을 바쳤다. 지역주의 타파, 대통령제의 권력집중 등 후진적 정치문화 개선, 권위주의 청산, 지역균형발전, 남북화해협력, 자주 외교와 같은 명제들이 그의 5년을 상징한다. 그는 정파적이지 않은 소신으로 여당 내에서조차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열린우리당과 구 민주당과의 통합논의에 “지역당으로 회귀하는 통합신당 논의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택”이라는 소신대로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미국과 우호협력을 위해 ‘이라크파병’에도 나섰다. 진보 진영의 강한 반발을 샀지만 그의 선택은 합당했다. 그러나 상당수 그의 꿈은 기존 체질을 급진적으로 송두리째 바꾸기에 너무 버거운 과제들이었고 무모한 도전으로 비춰졌다. 더우기 그 과정에서 그의 진심보다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더 부각돼 끊임없이 논란을 빚은 것은 그에게 큰 불행이었다. 결국 조기 레임덕에 빠졌고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탈당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정치적 동지’들마저 등을 돌렸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며 야심차게 시작했던 대통령직을 숱한 미완의 꿈을 남긴채 마감해야 했다.
그는 퇴임후 서민으로서의 마지막 도전에 다시 나섰다. 고향마을을 ‘부자마을’, ‘생태환경마을’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친환경농법인 오리농법을 도입, 지난해 10월 첫 수확의 기쁨을 안았다. 그는 ‘봉하 오리쌀‘ 3㎏들이 한 포를 청와대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어린시절 꿈을 키웠던 정든 뒷산에서 그 소박한 꿈마저 접어야 했다. 자신의 원칙과 가치에 어긋나는 것을 못견뎌하는 ‘노무현스러움’이 그 길을 재촉했다.
적어도 우리는 그보다 더 양심적인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는 누가 뭐라해도 소신껏 행동한 정치인이었다. 시대의 과제에 자신의 이상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는 누구보다 국민과 가장 가까이하고 싶어했던 대통령이었다.
그가 우리앞에 서민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큰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아닌 자연인으로 꿈과 도전을 이어갈 그를 우리는 지켰어야 했다. 그는 지지자가 아닌 자신을 구경 온 사람들에게도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그는 방문 온 어린이들에게 대통령 할아버지로 불리우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퇴임 전 입버릇처럼 “농촌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던 그의 여생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우리의 자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잃은 지금 우리는 불행하다. 지금의 우리에겐 철옹성 옹벽뒤에 숨은 전직 대통령들만 남게 됐다.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 모두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는 우리가 뽑은 우리의 대통령이었음에도 그의 숨통을 조인 것은 우리다. 우리는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남을 비평하긴 잘하는 사람들은 아닌가. 직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우리 사회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경종을 울리고 계신다. 그가 대통령이 될 때 그의 재산은 부인과 자녀 명의를 모두 합쳐 2억여 원이었다. 차와 전세금을 빼면 7백여 만원이었다. 모아둔 재산이 없었기에 그를 잘 알았던 친구들이 퇴임무렵에 도움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설령 그가 돈 받은 사실을 알았다해도, 검찰에 불려갔던 기존의 대통령들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때 수천억을 거둬들인 돈과는 성격이 다르다. 죄는 죄대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말의 따뜻한 시선도 없이 마녀사냥하듯 매도했다. 검찰은 범죄사실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정보까지 흘리며 이미 그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던 도덕성에 사망선고를 받았음에도 밟고 또 밟았다. 그는 스스로 버린 권위의 바람막이가 없는 허허벌판에서 혼자 그 역풍을 맞아야 했다.
우리 모두는 한국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경박함을 반성해야 한다. 무자비한 정치보복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절박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롬 2:1,3)
둘째, 고질적 반목과 계층간, 집단간 갈등을 종식시켜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극한 대립으로 사분오열로 찢기고 있다. 그의 서거를 특정 집단의 이해에 따라 정치적, 이념적 분란을 획책하는 도구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고인의 큰 뜻을 훼손하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스스로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을 염원했던 분이었다. 대통령으로서 기득권과 권위주의를 스스로 내려놓고 계층간 갈등요소를 없애려 했던 분이었다. 측근의 부정을 자신의 일로 감싸안았고, ‘바보’라는 별명을 가장 큰 명예로 알만큼 어떤 편에서가 아니라 양심에 따라 행동한 분이었다. 그 큰 고통에도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는 마지막 유지를 남겼다.
한국은 지금 경제적으로도 글로벌 위기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북핵위기와 도발위협의 극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와중에 분열이 심화되면 고인이 꿈꾸었던 ‘모두가 행복한 새 세상’은 더 멀어지게 된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약 3:16-18) 우리 사회와 온 국민은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낼 때 하나가 된 그 마음으로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
세째, 이상과 꿈을 영원히 성취한 이는 오직 예수님 뿐임을 기억하자. 최고의 이상가였던 노 전 대통령도 최고의 권좌에서조차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없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 괴로워하고 실패에 눈물을 흘렸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꿈을 의탁할 때, 그는 우리를 책임져 주신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 42:11)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포기하지 않을 영원한 꿈과 이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롬 8:24) 우리의 억울함과 슬픔을 위로받고, 우리의 삶의 참 기쁨과 보람을 알 수 있게 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