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거리 정치가 정의와 공의 훼손하는 원인자 …
성경은 ‘내 안의 들보를 먼저 볼 것’ 경고하셔 (눅 6:42)
예나 지금이나 인간다운 삶과 세상을 위한 한결같은 원칙은 ‘국가 권력의 주인은 백성’이라는 사실이다. 역사는 이 사실을 확증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대한민국의 역사도 민주화 과정을 통해 어느 나라보다 처절하고 극명하게 백성이 국가 권력의 주인임을 끊임없이 확인시켰고 발전시켰다.
촛불 혁명이 탄생의 동력이 된 문재인 정권은 어느 정권보다 민주화를 대표하는 정권이 됐어야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 정권은 이 좋은 자양분을 이용해 부패한 열매를 만들고 있다. 민주주의와 역행하는 행태를 끊임없이 보이고 있다. 문 정권이 대한민국의 법치 질서를 어지럽히고 전례 없는 갈등 사회로 만드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패거리 정치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선 장기 집권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국가도, 국민도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을 수밖에 없다.
문 정권의 면모와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단적인 예가 조국 사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국 임명을 강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그의 대표 저서(대답집)인 ‘진보집권플랜’에서 장기집권을 위해서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권력기관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정권의 장기 집권 플랜의 핵심 화두는 ‘적폐 청산’이었다. 조국의 말대로 문 정권은 적폐 청산 작업에 검찰을 활용하기 위한 적임자로 윤석열 총장을 낙점하고 전격 기용했다. 윤 총장은 과거 보수정권 시절 전례 없이 살아있는 권력의 주변을 수사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국정 농단, 사법 농단 등 농단의 프레임을 잡고 벌이던 적폐 청산 과업을 완수할 주체였기 때문에 정부여당의 기대감은 컸다.
문 정권은 검찰을 이용해 전 정권에 대한 수사와 보수 세력에 대한 정권 재창출의 싹 자르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범죄 행위에 진보와 보수, 네 편과 내 편이 따로 없는 당연한 검찰권 행사에 누구보다 충직했던 윤석열 총장에겐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은 ‘살아있는 정권’을 향해 칼을 들이댔다. 검찰은 정부여당에게 졸지에 눈엣가시로 변했다. 이때부터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프레임에 갖추게 됐다. 분명 정치검찰이라 함은 과거 검찰이 ‘정권의 시녀’로 불릴 때나 쓰일 수 있는 용어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권을 분리하는 것이야말로 법치를 세우고 공명정대한 검찰로 거듭나게 하는 검찰 개혁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권력 편향성을 벗으려는 검찰에게 오히려 정치검찰이란 낙인을 찍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만약 윤석열 총장이 정말 정치적이었다면 자신을 임명한 살아있는 권력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무관하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수사를 한 것은 그동안 검찰이 받아온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공명정대한 검찰권을 행사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부여당이 이런 검찰에 대뜸 ‘정치검찰’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문 정권의 ‘조국 지키기’는 정의보다 ‘내 편’이 중요하고, 국민보다 정권 연장이 중요한 패거리 정치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 대표 사례이다. 이로 인해 정의가 실종됐다는 것은 한국 정치사의 가장 뼈아픈 퇴행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 진보 논객으로 불리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9일 열린 국민당(가칭) 중앙당 창당발기인대회 사전행사에 강연자로 나서 “조국 사태는 저에게 트라우마였다. 내가 믿었던 사람들, 가치가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운을 뗀 뒤 “과거에는 진보든 보수든 잘못했으면 머리 숙여 사과부터 했다. 윤리의 기준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다”라며 “그런데 이 정권 들어와서는 잘못을 하고 기준 자체를 바꾼다. 도덕과 법의 기준을 바꿔 잘못 안 한 상태를 만든다.”라고 꼬집었다. 또 “정치가 시민을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들을 이성 없는 좀비, 윤리를 잃어버린 깡패로 만들고 있다.”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조국 전 장관 등에 대해서도 “선악의 피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아직도 자신들이 개혁가고 혁명가고 그래서 순결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래서 잘못을 할 수가 없고 잘못을 하면 도덕 기준을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자가 모든 정책의 판단과 결정을 네 편 내 편을 기준으로 하면 옳고 그름의 잣대인 법치는 무너지고 만다. 더욱이 국민까지 편 가르기에 편승해 국가 전체가 전례 없는 갈등 상황에 빠졌다. 진 전 교수가 얘기한 ‘문 정권이 시민들까지 윤리적인 존재가 아닌 이성 없는 좀비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조국 사태는 그저 사태로 끝나지 않는다. 조국을 통해 문 정권이 시도했던, 그리고 구축하려고 했던 패거리 정치의 면모가 하나둘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그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감찰 무마 의혹에서 비롯된 사건들이 파장을 키우고 있다. 금융위원회 재직 시 관련 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둘러싼 무마 의혹이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현 정권의 실세나 측근으로 통하는 인물들이 정책 수행 등 국정운영과 인사, 감찰 등 각 방면에 어느 정도까지 깊숙이 개입해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경제 분야에서도 이들 측근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유 전 부시장이 2년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으로 재직할 때 특정 인물들을 거명하며 저지른 비리를 보면 그 행세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울산시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울산경찰청은 김기현 전 시장이 자유한국당 후보로 공천된 당일 김 전 시장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결국 김 전 시장은 낙선됐고 송철호 현 시장이 당선됐다. 송 시장은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 친구다. 대통령 비서실 조직 8곳이 일사불란하게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울산 선거 공작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40번 가까이 등장할 정도로 문 대통령이 사건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미해 법무부 장관이 올해 초 임명 후 해온 일은 문 정권 수호와 울산 선거 공작 수사를 방해하는 것뿐이었다.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부터 검찰 인사 자료를 챙기더니 임명장을 받은 지 며칠 만에 울산시장 선거 개입, 유재수 비리 비호, 조국 전 법무장관 의혹을 수사해온 지휘부를 통째로 갈고 좌천시켰다. 그 후에도 선거 공작 사건 기소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 내 갈등에 대해 일선 검사에겐 ‘항명’으로 규정하여 좌천 조치하더니, 기소를 승인한 검찰 총장에겐 ‘지휘권의 부정으로’ 응대했다. 청와대 입맛에 따른 편향성을 누가 봐도 알만 하다. 검찰 독립은 철저히 훼손됐다.
추 장관은 지난 1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팀의 기소 결정에 제동을 걸어 윤석열 검찰총장 지시로 기소가 이뤄졌던 상황에 대해 “구체적 (사건) 지휘감독권은 검찰총장이 아니라 지검장에 있다.”라며, 검찰총장의 지휘권은 “일반적인 감독권”이라고 깎아내렸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울산 선거공작 사건 수사를 어떻게든 뭉개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