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문제의 축소판 보여줘 …
절망을 이길 인류의 희망 시험대 될 것
카리브해 이스파니올라섬 중 3분의 1을 영토로 가진 섬나라 아이티에 살던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44세에 불과할 정도로 못살고 헐벗었다. 불쌍하게 살다 사랑하는 자녀와 부모를 두고 지진에 희생된 사람들은 신원확인도 없이 쓰레기더미 처럼 무참하게 구덩이속에 매장됐다. 있는지조차 모르던 빈국 아이티는 벌써부터 가난한 현실의 문제에 치여 갈곳을 잃고 있었다. 아이티의 지진 대참사는 오늘날 지구촌의 일그러진 현실을 축소판처럼 돌아보게 한다. 아이티 대참사가 오늘날의 인류에게 전하고 있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첫째, 약육강식이 넘실거리는 지구촌의 불행한 결말을 예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는 1804년 노예혁명으로 흑인국가로는 첫 번째로 독립을 쟁취한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다. 한때 아이티는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자원 덕분에 ‘카리브해의 부국’을 꿈꿨다. 1950~1960년대만 해도 카리브해 관광산업 중심지 중 하나였다. 아이티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2천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현 시세로 환산하면 90억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이티 독립후 프랑스는 외교관계를 맺어주는 대가로 보상금을 뜯어갔다. 미국은 ‘흑인들의 노예국가’라며 국가 승인을 거부했다. 취약한 정치기반은 34차례의 쿠데타와 내전, 미국의 군사통치 등 주변국의 내정간섭으로 이어졌다. 자생력을 갖출 시간을 잃어버린 아이티는 중남미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약소국 아이티에 대한 외세의 개입과 압력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1991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쿠데타로 실각한 아리스티드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아이티와의 무역에 제한을 가했다. 중소기업들이 파산의 길을 갔다. 아이티는 한때 전세계 야구공의 80%를 생산했지만 지금 이런 공장들은 없다. 1986년 아이티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미국등 강대국들의 압력으로 수입쌀에 대한 관세를 폐지했다. 이 결과 1980년대까지 쌀을 자급했던 아이티에서 2007년 쌀의 75%를 미국산이 차지하게 됐다. 신자유주의의 바람에 휩쓸려 아이티의 주력이던 사탕산업도 해외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농업이 기반을 잃자 아이티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헤매는 도시빈민층으로 전락했다. 아이티 인구의 75%는 하루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간다. 1인당 GDP 790달러의 나라, 국민 문맹률이 60%에 달하고, 실업률은 80%에 이른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자유무역은 작은 저개발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산업이 경쟁력이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된 이후에야 자유무역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티의 이번 지진 피해가 컸던 이유는 제대로 된 건물을 지을수 없었던 이같은 구조적 가난 때문이다. 영국의 ‘가디언’이 “국제사회는 아이티가 겪고 있는 고통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이번 재앙을 “국제사회에 의한 인재”라고 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대재앙 앞에 놓인 인류의 자세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수십만 명의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이런 재난에 인류는 그저 나약할 뿐이다. 문명의 자랑을 버리고 겸손을 찾아야 한다. 땅 위의 기상은 물론 땅 밑의 지각도 그 어느때보다 맹렬히 움직이고 있다. 지구촌에서는 이제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됐다고 할 정도로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인명과 재산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하는 지진은 에너지가 워낙 커서 한번 발생하면 자연재앙중 가장 큰 대재앙으로 이어진다. 2004년말 인도네시아를 덮친 지진해일(28만여명 사망), 잇따른 2005, 2006년 지진해일(수천명 사망), 2007년 파키스탄 지진(3만여명 사망),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10만여명 사망실종), 지난해 4월 이탈리아 지진(293명 사망)들이 이어졌다.
지진 공포는 이순간도 현재진행형이다. 캘리포니아 단층을 연구해온 미 지진학자들은 규모 7.0∼7.5의 대지진이 LA지역에 찾아올 날이 머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지난 9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진도 6.5), 15일 베네수엘라 해안에서(진도 5.6), 17일 아르헨티나 대서양 연안에서도(진도 6.3) 강진이 발생했다. 16~17일 중동 이란에서도(진도 4.9와 4.1) 지진이 연달아 가옥 150채가 파손됐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지진은 매일 8,000번씩 발생한다. 사람이 명확히 느낄수 있는 3.0이상의 지진만 매일 30번씩이나 발생한다. 큰 피해를 가져오는 규모 6.0 이상의 지진도 매년 1백건이 넘게 발생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지진 발생 횟수는 60회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판 내부라도 아이티 이상의 대형참사를 당할 수 있다"면서 한반도에서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울 시내 아파트 등 일반 건물 중 내진설계가 반영된 것은 9.85%에 불과하다(19일 서울시 발표). 소방방재청의 시뮬레이션 결과 아이티와 비슷한 규모 7.0의 강진이 서울에서 발생하면 전국 67만여명 사상, 건물 93만채, 도로 89만곳이 파손될 것으로 예측됐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현 지구적 상황을 '위기의 시작'으로 규정한다. 점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가고 국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스스로 위기에 대비하려는 생존주의자(프레퍼)들이 급증하고 있다. 뉴욕시의 경우 2004년 18%의 시민이 ‘재난 준비를 고려 중’이라고 응답했지만, 최근에는 50%로 급증했다.
아이티의 참상은 위기의 오늘을 사는 인류에게 시대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종말적 환경재앙, 심화되는 양극화, 강대국과 약소국간 힘의 역학관계 등 지구촌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작은 섬나라 아이티 안에 고스란히 투영돼있다. 아이티의 문제는 결국 지구촌 모두의 문제인 셈이다. 아이티 대참사는 약육강식으로 어지러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세지이다. 또한 아이티는 ‘위기의 시대’에 선 인류의 양심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지진참사 후에도 겉으로는 인도주의를 내세운 세계 국가들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정치 · 경제적 계산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카리브해와 중남미 지역의 영향력과 아이티 주도권, 개발권 등을 선점하려는 열강의 각축이 치열하다. 한편으론 아이티의 불행을 목도한 세계인들이 돕기에 나섰다. 25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아이티 원조 공여국들의 회의에선 장기적으로 아이티가 지속가능한 개발 국가로 재건하는 계획이 논의됐다. 만약 선진국들과 세계가 올바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또다른 재앙을 낳게 될 것이다. 또다시 아이티 정부를 통제하려 하거나, 주민들의 열망을 억누르려 하거나, 그 나라의 경제를 착취하려고 한다면 재건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극한 절망속에서 인류가 찾아야 할 희망은 바로 같이 살아가는 나눔과 공존의 가치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 36) 재앙의 눈앞에 놓인 지구촌이 이전투구로 스스로 멸망을 앞당기느냐, 아니면 마지막까지 나눔과 공존의 지혜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길을 여느냐. 하나님은 아이티 대참사를 통해 이를 판가름할 잣대로 삼고 계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