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의 부실과 오류 바로잡던 검증과 견제 장치 없앤 부작용 불보듯 뻔해 …
성경은 ‘권력의 크기나 주체’보다 ‘공의’를 묻는다(미 6:8, 잠 31:9, 암 5:24)
<지난호에 이어>
5. 경찰 단일 수사체계의 가장 큰 위험은 ‘틀릴 가능성’이다
경찰이 수사를 잘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경찰에는 훌륭하고 유능한 수사관들이 많다. 문제는 어느 조직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찰 역시 사람으로 구성된 조직이며, 실적 압박, 업무량, 인사, 지역적 한계, 전문성의 편차, 초기 판단의 고착화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요즘 뉴스 보도를 통해 우려가 드러나고 있는데, 일선에 있다 보니 지역 조직 단체 인사와의 밀착 가능성이나 사건 무마, 은폐, 허위 종결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게 존재한다.
특히 경찰이 수사하면서 하나의 가설을 세운 뒤 그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에 집중하게 되면 반대되는 증거를 충분히 살피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확증편향이다. 더 큰 문제는 불송치 사건이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은 적어도 검사의 검토와 법원의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불송치 사건은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경찰 단계에서 끝날 수 있다. 또한 검찰과 경찰 사이에서 보완수사 요구와 재송치가 반복되며 책임이 불분명해지고 사건이 장기화되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답은 ‘경찰을 믿지 말자’가 아니다. 경찰을 믿되 경찰의 판단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6. 그렇다면 보완수사권을 환원해야 하는가
여당은 검찰청 폐지를 보강하겠다고 하지만 78년 간 이어온 형사사법 체계의 한 축을 없애는 것은 그만큼의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더욱이 수사의 부실과 오류를 바로잡던 견제 장치를 하루아침에 없앤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수사의 견제적 균형’과 ‘수사의 독립적 검증’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달성하는 제도다.
가령 다음 같은 실현이 가능하다. 검사의 보완수사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하고, 보완수사를 할 수 있는 사유를 법률에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성폭력·아동학대·장애인 범죄·살인·중대 경제범죄 등 피해자의 권리 보호가 특별히 필요한 사건에는 별도의 재검토 절차를 둔다.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독립적인 재심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외부적·사법적 통제를 강화한다. 검찰과 경찰·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어느 기관도 자기 판단을 최종적인 진실로 간주할 수 없도록 사후 통제를 받도록 한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첫째, ‘검찰 대 경찰’의 권력 싸움이 아니라 ‘수사기관 대 오류’의 싸움이다. 둘째, 수사와 기소는 분리되도 ‘진실 발견’은 분리해서는 안 된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고 해서 수사기관 사이의 협력과 검증까지 분리해서는 안 된다.
검사는 기소를 담당하되 수사의 적법성과 증거의 충분성을 검토해야 한다. 경찰은 현장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중대범죄수사청은 전문수사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독립적인 오류교정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의해 ‘경찰의 단일 판단’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다. 권력의 독점이 문제라면 해결책은 또 다른 독점이 아니다. 견제와 균형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결론: 한 사람의 억울함이라도 더 풀어주었는지, 국민이 국가의 형사사법을 믿을 수 있게 되었는가가 개혁의 요체
성경은 ‘권력의 크기’보다 ‘공의’를 묻는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더욱 중요한 기준이 있다. 성경은 권력기관이 누구인가를 먼저 묻지 않는다. 그 권력이 공의를 행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형사사법의 목적 역시 여기에 닿아 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의 권한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정권의 이념을 관철하는 것도 아니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잠 31:9)
형사사법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능력이 없는 사람, 증거를 모을 능력이 없는 사람, 법률가를 선임할 돈이 없는 사람, 경찰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제도개혁은 가장 강한 사람에게 유리한 방향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도 한 번 더 진실을 호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성경은 실행 방법에 대해서도 중요한 판단에서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모든 것을 확정하지 말라는 원칙을 말씀한다.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19:15) 그 원칙이 주는 방법은 분명하다. 중대한 판단일수록 한 번의 판단으로 끝내지 말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확정해서도 안 되고, 한 번의 수사결과만으로 피해자의 호소를 끝내서도 안 된다. 경찰의 판단도, 검찰의 판단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재판관의 권력’보다 ‘공의로운 재판’을 원하신다. 성경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을 요구한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잠18:17) 처음 수사한 사람이 만든 사건의 틀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형사사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틀린 판단’ 자체만이 아니다. 틀린 판단을 아무도 다시 확인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므로 좋은 국가의 형사사법 시스템은 “우리 수사관은 틀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 수사관도 틀릴 수 있으므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스템이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가 예정된 지금, 과거의 제도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 시대에 맞는 제3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경찰은 현장수사의 중심이 되고, 중대범죄수사청은 고도의 전문수사를 담당하고, 공소청은 공소의 전문성을 책임지며, 법원은 강제수사와 인권을 통제하고, 검찰이 됐든 독립적인 재검토기구는 수사의 오류를 교정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수사과정은 기록되어야 한다. 누가 어떤 근거로 수사했는지, 왜 불송치했는지, 왜 재수사가 필요했는지, 왜 기소하거나 불기소했는지를 나중에라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권력기관을 국민 앞에 세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개혁의 기준은 ‘누가 권한을 갖느냐’가 아니라 ‘억울함을 풀 수 있느냐’여야 한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는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의 커다란 전환점이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것과 검찰이 가지고 있던 수사의 검증·교정 기능까지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가 폐지해야 할 것은 검찰의 수사권 독점이나 남용이지, 수사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세워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정의도 바로 그것이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이 지향해야 할 길도 이와 같아야 한다. 검찰이나 경찰, 정권을 위한 제도도 아니다. 범죄 피해자의 눈물을 닦고,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을 보호하며, 진실을 끝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여야 한다. 검찰개혁의 진정한 성공은 검찰의 힘을 얼마나 빼앗았느냐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억울함이라도 더 풀어주었는가, 한 사람의 무고함이라도 더 지켜주었는가, 그리고 국민이 국가의 형사사법을 믿을 수 있게 되었는가. 바로 그것이 개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정의와 공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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