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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의 회복 알린 그루지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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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복음신문 「북극곰의 회복 알린 그루지야전쟁」 기사 사진 · 사진 복음신문 제공 · 복음신문 보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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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 일로의 러시아 제국주의, 세계 무력 위기 증대...신냉전 양상 가시화는 누구의 잘못인가?

지난 8일 지구촌 축제의 팡파레가 베이징 하늘에 울려퍼지던 날 또 다른 한쪽에선 전쟁의 포화 소리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이 암울한 세계역사의 한 페이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카프카스의 오지에서 일어난 그루지야 전쟁이 국제질서의 흐름을 바꿀 대 전환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옛 소련 연방의 한 식구였던 그루지야는 독립 이후 줄곧 친서방정책을 펴왔다.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이라크 다국적군에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견했다. 부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등대’라는 칭송까지 받은 그루지야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 전날 미국과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의 힘을 믿고 자국내 친러 분리주의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야를 침공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음날 자치공화국내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즉각적이고 냉혹한 대반격을 시작했다. BTC 송유관 공사 등에 힘입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물류 요충지로 자리매김할 꿈을 키워온 그루지야의 희망은 한번의 오판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루지야 국방차관은 22일 “러시아의 대대적 반격을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를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많은 수모를 당했다.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와 가스를 지중해로 보내는 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터키 파이프라인이 러시아 땅을 우회하게 한 것도 미국이다. 그래도 90년대의 러시아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더이상 러시아는 ‘유럽의 병자’ 신세가 아니었다.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과 석유가격 폭등에 힘입어 경제·군사적인 국력을 회복했다. 칼을 갈며 기회만 노리고 있던 러시아의 그물에 그루지야가 걸려든 셈이 되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전쟁 개입을 통해 한때 세계를 양분하던 과거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북방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때 곧 몇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단11:13)

러시아의 의도는 확실하게 성공했다. 그루지야인들은 미국이 어디에 있느냐며 아우성을 쳤지만 미국과 나토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뉴욕타임스는 20일 “회원국에 대한 집단방위기구로서 나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고 분석했다. 나토의 동방 확대는 후퇴가 불가피해졌다.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충복 노릇을 해온 그루지야에게 미국이 힘을 실어주리라는 희망도 허상으로 끝났다. 많은 친미 국가들이 미국의 지원 약속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게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 개입한 이유 중 하나가 미국의 무능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언론들은 소련 붕괴로 미국 쪽으로 기울었던 힘의 균형 추가 다시 러시아 쪽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 놓는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루지야 사태의 불똥이 세계의 화약고 중동지역의 위기에 가세하고 있는데 있다. 그루지야 전쟁으로 자신감을 얻은 러시아의 첫 화살이 이스라엘로 향했다. 러시아는 20일 “이스라엘이 그루지야에 각종 무기류를 지원하고 특수부대를 훈련시켜 왔다.”고 비난하며 보복 조치를 노골화했다. 이스라엘은 2000년 이후 그루지야에 2억달러어치의 무기와 장비를 판매했다.

러시아의 분노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권 국가에 무기를 제공하려는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전략분석가 라아난 기신은 “러시아의 중동전략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새로운 글로벌 게임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중동지역 내 힘의 역학 관계에 변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인 시리아 대통령은 19일 “미국의 미사일방어기지 구축에 맞서 러시아가 단거리 미사일을 시리아에 배치하길 원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러시아 편들기에 나섰다.

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는 과거 소련의 해군 기지가 있던 시리아 타르투스항에 러시아 항공모함과 미사일 배치를 재추진하고 있다. 그루지야전에 대해 중동의 여론은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기류는 무엇을 의미하나. 전문가들의 말대로 “소련 제국주의의 부활을 막을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민주주의 국가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뜻할까? 아니면 “미국과 유럽이 과거 냉전의 승리자라는 신드롬에 빠져 러시아가 스스로 입장을 옹호하려는 모든 노력을 적대적으로 간주한 책임”을 반성해야 함을 뜻할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냉전 시대의 영광 재연을 꿈꾸고 있는 러시아와 이를 경계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신 냉전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 진영이 대립할 경우 전 세계가 받게 될 고통이 커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서로가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칼을 앞세운다면 평화에 대한 인류의 희망은 없다. 또한 세계가 신냉전의 소용돌이에 빠져 무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면 북핵 해결과 남북통일, 한반도 평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염원도 멀어질 수 있다.

세계가 무력을 중심으로 세력 판도가 짜여져 가는 현실은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는 길일 뿐이며 그 결국은 패망만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의 인류를 향한 경고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예수님은 세상에 오시면서부터 이 땅에 평화를 선포하셨다(눅 2:8-14). 평화는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며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다행히 한국에 인류 희망의 불씨가 자라고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미국 등 초강대국을 비롯한 상반된 이해관계의 6개국이 머리를 맞대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 한반도다.

가만있을때가 아니다. 한국이 오직 평화에 대한 일념으로 6자회담 관계국과 다자외교의 중심에 서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고 동북아 평화의 핵이 되어 무력다툼이 거세져만 가는 세계를 향해, 여기 인류의 희망을 보라고 외쳐야 한다.

러시아 제국주의가 빼어든 칼을 다시 칼집에 꽂기를, 한반도의 평화가 어서속히 오기를 힘모아 기도해야 할 때다. 인류를 향해 평화를 심는 한국의 역할을 위해 기도하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