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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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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2백주년, 진화론 대 창조론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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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2백주년, 진화론 대 창조론 갈등 고조

무신론 대 유신론의 대결 상징…입증된 과학적 사실 수용하고 보다 큰 뜻 복음의 본질 지켜야

12일로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탄생한지 20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그의 저서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영국 전역에서 무려 300여개의 기념행사가 열리고 강의, 전시회, 투어와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 유럽은 물론 미국, 아시아와 세계 각국에서도 다윈 200주년 학술제 및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진화론 관련 출판이 러시를 이루고 ‘다윈 3부작’ 기념출판(다윈포럼)도 진행중이다. ‘다윈 탄생기념 공개강연’(23-24, 서울대)을 비롯, 국립과천과학관이 11월 개관기념 전시회로 ‘다윈전’을 계획하는 등 강연, 전시회도 잇따를 예정이다.

진화론에 대한 조명 움직임이 확산되자 창조론과의 대립과 논쟁도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대립은 학계를 넘어 종교계, 교육계와 일상에서 광고 대결로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광고대결은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 영국 옥스포드대 교수와 영국인도주의협회가 손잡고 영국 전역의 버스 800대에 무신론 캠페인 광고를 거재하면서 시작됐다. 광고문구는 “신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은 그만하고 인생을 즐겨라”다. 이 무신론 버스캠페인은 최근 스페인으로까지 확산됐다. 그러자 3개의 종교단체가 연합하여 9일부터 런던 시내버스에 유신론 켐페인으로 맞섰다. 광고엔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는 시편 53편 문구가 적혀 있다.

진화론은 창조론과의 운명적 대립속에서도 과학적 수단을 통해 범위를 계속 넓혀왔다. 오늘의 시대는 가히 ‘다윈의 시대’라고 할만하다. ‘왜 다윈이 중요한가’의 저자 마이클 셔머는 근대를 대표하는 세 석학,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중에서 다윈만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의미를 지니는 이유를 “그의 이론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과학계와 교육 교재에서 진화론은 ‘정설’로 굳어진지 오래다. 세계의 자연사박물관에는 세균과 같은 원핵생물로부터 각종 생물 종이 만들어지고 유인원이 변이를 거쳐 인간이 만들어져온 과정을 전시해놓고 있다. 진화론은 계속 발전해오다 “개체는 유전자의 증식을 위해 이용되는 운반체일 뿐”이라고 주장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서 절정을 이룬다.

오늘날 진화론은 모든 정치 경제 사회 현상과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는 원리로도 사용된다. 진화론은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의학, 물리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심리학, 법학 등의 전 학문분야와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사학자들이 ‘다윈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진화론의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생물은 변이를 일으키고 그중에서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가 살아 남는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 것이다.

첫째는 초경험적이며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존재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진화론은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탄생이 창조주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저절로 그리고 우연히 나타난 결과라는 무신론으로 귀결된다. 이로써 종교적 아집과 이로 인한 갈등이나 종교적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진화론자들은 모든 존재를 평등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생존은 우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자연선택의 결과이며, 인간은 더이상 다른생물에 비해 우월적 존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같은 진화론적 인식은 인본주의와 자연주의를 강화하기에 충분하다. 진화론은 바로 이점 때문에 중대한 위험인자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진화론은 얼핏 인간의 우월성이나 존재의 우열을 부정하는듯 보인다. 그러나 진화론은 신의 존재를 거부할 만큼 인간의 자존감이 강한 이념이다. 진화론에서 인간을 제어할만한 인간 이상의 존재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 있는 자’(출 3:14)는 하나님 뿐이시다. “스스로 있는 자가 있으므로 가치계의 창조가 있을 수 있게“(1960.나운몽.존가능(存價能)이론, 이 존가능론은 한 한국인학자에 의해 2003 노스웨스턴대학교 Ph.D.(종교학) 논문에 인용되 미국학계에 주목받게 됨:편집자주) 된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와 피조계를 구분짓는 구분선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안에 있는 피조물로서 창조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위치를 자처하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처럼(창 3:5) 되라는 거짓말에 넘어간 하와와 같이 되는 범죄이다. 그러나 인간은 오늘날 직접 유전자 변형과 복제를 통해 새로운 종을 스스로 추가해 나가는 ‘종의 기원’ 2편을 쓰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오만함의 극치일 뿐이다.

실제로는 인간은 번식하는 박테리아 하나도 스스로 만들지 못할만큼 신의 영역엔 까마득히 못미친다. 진화론이 말하는 생명의 기원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하등생물에서 인간으로의 진화를 증명하는 일도 불가능할 뿐이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점령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진화론적 인식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침략에 이용되었다. 민족적·인종적 차별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데까지 활용되었다.

둘째,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이 강조되면서 경쟁에서 이기는것, 살아남는 것이 곧 옳음으로 해석되었다.

독일의 나치가 진화론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연히 선과 악의 개념이 희석돼 책임이나 정직과 같은 도덕관념 대신 거짓과 탐욕이 자리했다. 오늘날 세계금융위기는 그 결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창 1:27) 인간에겐 생존원칙만이 아니라 다른 생물에 없는 양심이 있어 하나님을 증거한다. “이런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게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5)

진화론으로는 바울사도가 길거리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평소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인생이 180도 바뀐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스데반집사가 자신을 돌로 쳐죽이는 자들을 향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자 말아달라”(행 7:60)고 호소하며 죽어간 그 마음을 해석할 길은 없다. 오순절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오늘날 전세계를 뒤엎은 기독교의 부흥을 가져온 사실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생존의 반대 개념인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꺽이지 않았던 인간의 신념과 의지, 사랑의 숭고한 가치, 그리고 그속에 임한 초월적 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많은 부작용과 오류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라는 전제위에서 이제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 기독교와 창조론을 위협한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진화론은 과학을 가장하고 있지만 하나의 이데롤로기일 뿐이다. 확증되지 않는 수많은 전제와 가설을 증명된 과학적 사실들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전체를 하나의 무신론 신념체계로서 사용하므로 문제가 있다.

과학적 사실들이 무신론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데 사용되어선 안 된다. 진화론을 위해 사용된 과학적 진실들을 떼어내 우리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지구의 나이나 우주의 탄생,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물종의 변이가 일어나는 부분들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루빨리 인정해야 한다. 기존 신념대로 지구의 나이는 6천년이라고 고집하거나 창조 6일이 지금의 6일과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다.

과학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과학적 발견이 하나님의 창조의 오묘함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과학적 발견마저 대립각을 세울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성경과 상충할 수 없다는 기본논리로 다가가야 한다. 그것이 진화론을 보다 큰 틀인 창조의 섭리 안에 있게 하는 길이며 오늘날 신앙의 구원을 찾는 한 사람이라도 실족지 않게 하는 길이다. 모든 만물과 현상은 하나님의 창조계 안에서 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할 때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롬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