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화한 베이징 올림픽,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야심표면화...
중화 속에 숨은 거짓과 제국주의 막아야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역대 최고로 세계 86개국 정상이 만사를 제쳐두고 앞다투어 개막식에 참가했다.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 25명의 정상이 참석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어떤 국제정치 회의나 유엔총회를 능가 한다. 중국 언론은 각국 정상들이 개막식 참석을 위해 베이징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 옛날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러오는 외국 사신들의 행렬을 연상케 한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마음이 엿보인다.
중국은 올림픽 준비에 역대최대인 420억 달러를 투입했다. 숨이 막힐듯 장엄하고 환상적이던 개막식 행사엔 1억달러(1천억원)를 투입했다. 세계인들은 거대 중국의 위압에 전율마저 느꼈다. 초대형 행사는 미래가 아닌 과거에 집중돼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신 중국이 과거의 영광을 재연해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유감없이 전했다. 그 오만한 당당함이 ‘중화’의 본질이다.
실제로 개막식에서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주요 간부들은 냉방된 널찍한 귀빈석을 모두 차지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등 세계 정상들은 비좁은 일반석 바닥에 앉아 상의를 벗고 부채를 흔들어야 했다. 일본 교토신문은 “세계 각국 정상들에 둘려 쌓여 환호를 받고 있는 후진타오 주석은 마치 중국 고대황실의 황제를 연상시켰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중국 당국의 외교결례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고 분석한다. 세계 언론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나치의 선전장으로 전락했던 베를린 올림픽만큼이나 정치적이었다고 평한다. 중국은 세계 정상들을 들러리로 세운 가운데 중화의 부활을 선포하는 장으로 올림픽을 활용했다. 1839년 아편전쟁 이래 처참하게 침탈당했던 ‘동아시아의 병자’ 중국이 150년만에 다시 세계를 호령하는 지위에 올라섰음을 선언하는 세기적 사건이라고 서구 언론들은 평했다.
중화의 부활은 왜 필요했던 것일까. 자본주의를 채택한 공산당, 이것이 현재의 중국 체제다. 사회주의를 버린 공산당이 집권을 위해서는 그를 대체할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개혁개방 30년의 위업이 명분이 됐지만 작금은 곳곳에서 위기가 튀어 나온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공산당 정권을 위협할 뇌관으로 등장했다. 소수민족의 분리운동도 고개를 들고 있다. 티베트의 독립 요구 시위에 이어 최근까지 신장 자치구에선 위구르 독립을 외치는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가 감행되고 있다.
따라서 중화의 부활은 현재의 위기국면을 타개할 공산당 정권의 명분강화를 위해 절대적이 됐다. 13억 자국민의 결속을 위해, 이젠 잠에서 깨어난 중국이 과거 한과 당의 영광을 재현하는 강성대국, ‘강한성당’(强漢盛唐)의 길로 가자는 강력한 메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권의 지지기반이 탄탄해질수록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중화제국주의는 더욱 강화될 상황이다.
중화주의가 무엇인가. 과거 무력으로 주변을 끊임 없이 복속시켜온 제국주의에 뿌리를 대고 있다. ‘오랑캐’의 복속을 정당화하는 이념일 뿐 약한자에 대한 포용과 관용은 없다. 철저히 ‘내 중심’이라는 점에서 민족주의를 부추기지만 보다 우악스럽고 무력적이며 오만하다. 문화나 역사, 민족, 영토를 물론하고 강제적이거나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하나로 삼키는 무서운 흡입력을 나타낸다. 중화제국주의는 서구열강의 침탈로 19세기에 잠시 주춤했을 뿐 중국의 역사를 관통해 온 저류였다. 그것이 다시 부활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정의와 평등, 자유의 가치들은 국가 이익과 결부되는 중화제국주의의 사고 앞엔 무력할 뿐이다. 위대함은 자아도취로 가득 차고, 완벽함은 거짓으로 조작되었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세계인들은 ‘중국이 다른 나라를 고려하지 않는다’(프랑스 82%, 일본 79%, 영국 71%, 한국 68%)고 불만이 가득한데, 정작 중국인들은 ‘중국은 외교에서 다른 나라를 고려하고’(83%), ‘세계는 중국을 좋아한다’(73%)고 조사됐다(미국 퓨즈서베이 24개국 조사). 서로 너무 다른 인식의 깊은 간극은 앞으로 ‘중국의 세기’에 벌어질 ‘중화’의 부활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계적 권위의 경제전망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는 16년 후면(2024년)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중화주의의 부활이 우리에겐 무엇을 의미할까. 중국 정부는 이미 우리의 장구춤, 환갑잔치, 학춤, 널뛰기, 그네타기, 퉁소음악, 만담 등을 ‘국가급 무형문화재’에 등재시켰다. 간도와 백두산에 이어 북한마저 넘보고 있다.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동북공정에 의해 중국에선 역사만들기 공사가 한창이다. 최근엔 이어도까지 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미 미 국립 지리정보국이 이어도를 무국적 암초로 규정했다. 이름도 이어도가 아닌 소코트라 바위다. 올림픽 이후 중국은 지역적 패권을 강화할 것이다. 남북한 분단 상황을 활용한 실리 정책을 강화하고 미국의 패권을 경계하면서 중국에 유리한 한반도 환경을 위해서 더욱 영향력을 발휘하려고할 것이다.
중화주의로 무장한 13억 인구가 떨쳐 일어날 때 바로 이웃에 위치한 우리는 그 후폭풍을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중국에 비해 인구로는 30분의 1밖에 안 되고 땅의 크기로는 바로 옆 산둥성보다도 작은 나라다. 그들과 집단적 경쟁을 할 때 우리가 이길 수 있나.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내실을 다질 생각은 안하고 그저 눈가림, 순간 넘기기, 겉치레, 변명, 떠넘기기만 하는 나라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포퓰리즘이 판치고 역량보다 이념을 좆아 줄대기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힘으로 우리를 에워싼 열강을 이길 수 없다. 마치 골리앗과 같이 힘을 믿고 다가오는 거대 중국에 맞설 방법은 오직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다. 겸손한 위치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라의 표본을 만드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자.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라는 거짓과 불법이 아니라 정의와 원칙에 바로 선 건강한 나라다.”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 지어다.”(암 5:24) 겉의 화려함이 아닌 내실을 다지며 평화와 안정, 화합과 사랑, 구제와 희생으로 인류의 본이 되는 나라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나라의 미래를 열며 인류에게 새 희망을 전하는 민족의 역할을 찾는 길이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