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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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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민족 사명의 터전 삼아야

세종시, 민족 사명의 터전 삼아야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기존 복음신문 「세종시, 민족 사명의 터전 삼아야」 기사 사진 · 사진 복음신문 제공 · 복음신문 보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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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근본적 문제 먼저 걷어내야…

백년대계를 위한 국민적 합의와 통치자 결단 필요

북주의 관리였던 양견은 출세를 노리고 임금인 선제에게 자기 딸 여화를 바쳤다. 선제가 불과 9살인 태자 정제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일찌기 상황으로 물러앉자 양견은 졸지에 새 황제의 외할아버지가 되었다. 어린 황제의 외척으로 실권을 장악하게 되자 아예 자리를 빼앗고 수나라를 건국, 스스로 문제(文帝)가 되었다. 양견이 황제자리를 강탈하려 동분서주할 때 그의 아내가 말했다. “지금 당신은 호랑이 등에 타고 있는 ‘기호지세(騎虎之勢)’의 형국이어요.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은 도중에 내릴 수 없으니 끝까지 밀고 나가세요.” 호랑이 등에서 내리면, 그 순간 잡아먹히고 만다. 그러니 좋든 싫든 내달릴 수밖에 없다. 세종시 문제가 ‘기호지세’가 됐다.

이미 법제정은 물론 토지수용과 보상, 주민 이주까지 마치고 건설이 시작된 세종시 문제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국가 최대 현안일뿐 아니라 국운을 좌우할 최고 중대사가 됐다. 현 정국의 핵으로 자리잡은 세종시 건설에 내재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첫째, 태생부터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었다는데 문제의 근원이 있다. 세종시는 처음에 정치 이상가의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수도 이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혁 노선의 중심이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부합했고, 200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충청권 민심을 한꺼번에 돌릴 묘책이었다. 당시 노 후보는 수도 이전비용이 4조원에 불과하다며, 큰 국력낭비 없이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고 서울 과밀화현상을 해소할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도 이전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이후에도 정치 바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에 그대로 유지하는 편법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고, 다음 대선을 의식한 야당(한나라당)이 이에 동조하므로써 2005년 ‘세종시 건설법’이 탄생했다. 서울시 면적의 절반 규모로 추진되고, 이미 5조 4천억원이 투입된 지금도 정치권은 주판알을 튕기느라 바쁘다. 이회창 총재는 16대 대선 때 행정수도 이전에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했었지만 자유선진당 창당 이후 지역 민심을 내세워 ‘무조건 원안대로’를 외치고 ‘불복종 운동’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민주당으로서는 정부 여당에 맞설 공격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물론 자유선진당에 충청 표심을 내줄 수도 없다. “지난 7월 법안심사소위에서 세종시법을 통과시킨 것은 한나라당과 선진당의 야합”이라며 선진당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자 선진당은 “민주당이 ‘원안추진’을 주장하는 것은 사이비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충청지역을 놓고 여야를 넘어 야당끼리도 점입가경의 일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세종시 건설법 제정을 거들었던 한나라당의 태도는 더 혼란스럽다. 표면으로는 ‘원안대로’라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내심과 다른 당당하지 못한 ‘이중 플레이’로 비춰질 뿐이다. 정치권 모두가 세종시의 운명에 대한 책임의식은 없이 정략적으로 이용하기에 바쁘다.

둘째, 정략이 앞서다 보니 사업계획이나 법제정이 졸속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는게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모든 국가가 공장이든, 연구소든, 상가든 한군데 모여서 보다 첨단화하고 효율을 극대화하고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애쓰는 마당에,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할 정부 조직을 일부러 쪼개 먼곳에 두려는 것부터가 패착이다. 아예 수도를 이전하는 것보다 더 큰 낭비와 불편, 비효율의 부담을 국가가 장기적으로 지고 갈 수밖에 없다. 북한과 맞대고 있고 세계 변수가 큰 속도전의 세상에서 위기 대응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므로써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다. 더우기 세종시 건설만 25년 프로젝트다. 그 안에 남북관계가 변화하고 통일 수도 얘기가 나오면 집을 짓다가 말 수도 있다.

‘텅 빈 도시’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현재 이전 대상 기관과 공무원, 연구기관 인력까지 다 포함해도 1만2000명이다. ‘가족과 함께 이사하겠다’는 인원은 30%에 불과하다. 부처 이전으로 생길 주변 상업시설과 학교, 병원 등까지 감안해도 인구 5만의 도시 성립조차 불가능하다. 자족기능 도시의 최소 요건인 50만명을 목표로 한 세종시를 무슨수로 채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세종시의 건설비 부담은 천문학적이다. 수도이전 비용 4조원이란 말장난에 불과했다. 세종시 건설에 드는 정부의 총 사업비 예산이 22조5천억원에 이르고, 실제로는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47조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 세계경제위기에 따른 재정지출 확대로 국민이 조세 등 직접부담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가 급증하고 있다(작년 132조원에서 내년 200조원 육박, 19일 ‘국가채무관리계획’ 자료). 국토개발 및 사회간접자본 건설은 거의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22조원이 드는 4대강 사업, 11조원이 드는 10개의 혁신도시 사업, 얼마가 더 들지 가늠조차 안되는 세종시 건설사업까지 국민의 허리가 휘고 있다. 건설이 되고 난 후의 유령도시인 세종시의 그 어마어마한 적자와 지속은 또 누가 어떻게 메울 것인가. 국민 세금을 얼마나 더 걷어야 하나.

자족도시로서 치밀한 계획이 없다면 국가손실과 국민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뻔하다. 건설의 뚜렷한 목표나 이유보다는 무리와 우려만 쌓이는게 현재의 세종시 문제이다. 그러나 ‘기호지세’의 형국이 된 세종시 건설을 무턱대고 중단할 수도 없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당리당략을 떠나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모두가 양심으로 본질을 직시하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치밀한 검토를 토대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가의 전체 틀을 뒤집을 사안인 만큼 국민의 지혜를 모으고 진지한 국민여론 수렴을 거쳐야 한다.

한국은 지금 세계 경제협의기구인 G20에서, 또 아시아시대의 한중일을 중심한 동아시아와 세계의 세력재편 과정에서 중재국의 위상이 부각되고 있다. 세계속 한국이 드러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다. 말세에 한국이 세계속에 드러나는 것은 힘이 아니다. 하나님이 쓰실 나라는 강대국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기후변화, 경제위기, 자원고갈 등 지구촌 문제에 대한 국제협력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한국이 중재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세계를 위해 일할 상설 국제기구를 유치하는데 나서야 한다.

일본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구체화할 준비사무국을 방콕 등 타지역에 두고 싶어 한다. 일본에도 중국에도 둘 수 없는 동아시아공동체 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할 수 있다. 미래 한국의 역할이 날로 확대돼야 하지만 국제적 역할을 할 터가 없었는데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춘 곳에 벌써부터 세종시가 준비되고 있다. 세종시는 우리나라 속에서가 아닌 국제 중심도시로서 역할하도록 준비돼야 한다.

이제 한국인의 저력을 모을 때다. 온 국민이 하나되어 하나님이 함께하실 한민족이 만들어갈 세계적 사명을 준비할 터로 세종시의 환골탈퇴를 이뤄내야 한다. 세계의 관심이 한국에 모아지는 지금, 실제로 인류를 위해 일하고, 세계와 함께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한 위상을 다질 터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명은 인류에게 공존과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