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사고현장에서 가까운 이태원역을 찾아 조화를 놓고 애도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지는 정부와 상처의 치유, 흔들리지 않는 믿음 원하셔(시 62:5,6, 렘 18:7,8)
10월 29일 핼러윈을 즐기려는 인파가 이태원에 몰려 이태원역 근처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350명이 넘는 대규모 압사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156명, 부상자 197명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보다 더 놀라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사가 발생했다. 매년 핼러윈 때 인파가 몰리는 것을 세상이 알고 있고 경찰은 더 잘 알고 있었다.
10월 초와 26일 용산서 정보과는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거리두기 및 실외마스크가 모두 해제되면서 예년보다 더 많은 시민이 몰릴 것이 예상돼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는 내용의 ‘핼러윈 축제기간 안전사고 우려’ 정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묵살됐다. 참사 뒤엔 폐기 의혹까지 제기됐다. 안전사고 관련 보고를 무시한 책임을 피하려고 윗선에서 삭제 지시를 했다는 의혹이다.
당일 이임재 용산서장의 행보는 울분을 자아낸다. 참사로 인해 신고가 폭주하던 밤 9시 30분 경에 설렁탕집에서 20분간 태연히 식사를 했다. 현장으로 가면서도 도로가 막히는 상황에서도 관용차를 고집해 11시가 넘어서 현장에 도착했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일선 책임자가 길에서 한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차에서 내려서도 뒷짐을 지고 산책나온듯 걷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래놓고 상황보고서엔 사고 발생 직후인 10시 2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고 조작까지 했다.
보고도 하지 않아 김광호 서울청장은 사고 발생(10시 15분) 후 1시간 20여 분이 지나서야 사고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청 상황담당관의 문자메시지·전화 보고를 놓쳤다가 익일 오전 0시 14분에서야 보고를 받았다. 경찰 수장인 윤 청장이 윤석열 대통령(11시 1분), 이상민 행안부 장관(11시 20분) 보다 사태 파악이 늦은 것이다.
주무부처장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보다 늦게 사실을 안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보고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붕괴 수준에 가까울 만큼 엉망임이 드러났다.
경찰의 무대응도 크나큰 문제로 지적된다. 참사 신고는 당일 초저녁부터 줄을 이었다. 6시 34분에 “압사 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들어왔다. 이 때 참사 현장 골목에선 이미 위에서 아래에서 밀린 인파로 옴짝달짝할 수 없는 상태로 “내려가” “내려가”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였다. 6시 30분에 거의 아비규환인 상태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 신고를 묵살했다. 그 후에도 같은 지역에서 연이은 신고를 묵살하다 7차례의 계속된 신고 후에야 경찰은 기동대를 출동시켰다. 사고발생 1시간 25분이 지난 11시 40분에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대규모 참사가 일어난 후였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이라고 할 수가 없다.
경찰만이 아니다. 해당 용산구청은 사고 발생 소식을 지역주민으로부터 접하고도 재난 상황에서 법령에 규정된 대응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용산 소방서도 당시 119 신고가 쇄도했는데도 적절한 구조 행위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참사 발생 전 공동 대응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 해당 정부 부처인 행안부 장관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고 발언한 부분은 충격에 빠진 국민을 더 아프게 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은 희생자 가족과 국민을 공분케 하고도 남았다.
이 정도면 재난 상황의 보고 체계나, 상황 관리나, 예방 조치나, 대응 능력이나 총체적 난맥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맡은자들의 회피성 발언에서 보인 현실 인식, 무배려, 무감각한 소실된 공감능력 등은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마저 들게 한다.
윤석열 정부는 “깨끗하고 유능한 정부”를 표방했다. 그러나 금융위원장도 법 전문가를 앉힐 정도로 법 만능주의에 빠졌다. 이로 인한 경직성과 폐쇄성으로 유연성이나 창의적 사고를 기대할 수 없고 책임의식이나 공감도 없었다. 정부가 참사 첫날부터 “주최자가 없어 대비 못 했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이나 주무부처장관이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이 아니다”고 한 것은 책임이나 공감은 없이 면피할 곳부터 찾는 법전문가들의 경직성을 웅변한다.
무대책, 무대응, 책임회피로 점철된 경직된 관료사회가 먼저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국민 통합이나 지지를 받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국민을 위로할 수도, 앞으로의 재난에 대응할 수도 없다.
아무 잘못없는 적극적이고 활발하고 꿈 많은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됐다. 이 엄청난 재난에 국가는 무한 책임을 지고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특히 우리의 젊은 세대가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은 그 누구보다 크다. 온 국민이 받은 충격과 상처, 불안감도 자못 큰 상황이다. 이 트라우마가 치유되고 국민 모두가 안심하는 나라가 되도록 정부는 더 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국가적 재난 뒤에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와 철저한 진상 규명, 대책과 더불어 위로와 희망이다. 행여나 희생자와 가족에게 상처되는 일이 없도록 남겨진 가족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때까지 정부와 관련 지체체, 기관이 일체가 되어 치유에 나서야 한다.
우리의 전통은 나라에 가뭄이 들어도 왕이 그 책임을 통감하고 기우제를 드리던 우리나라였다. 대통령부터 무한 책임을 느끼는 자세로 비통에 빠진 유가족과 국민의 손을 먼저 잡고 국민과 같이 걱정하고 같이 울며 재난을 같이 극복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 국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을 갖고 안심하고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기도할 때이다.
성도들은 아무리 큰 재앙 속에서도 흔들림없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6 2: 5,6)”
얘기치 않은 재난이 날로 커가는 사회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하는 시대이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 7:25)”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믿음에 서야 할 때이다.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 9~11)”
이를 위해 잘못한 자는 성경 말씀대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 18:7,8)”,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엘 2:13)”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책임을 지므로 안심하고 사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