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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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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사회가 만든 아동학대

정부와 사회가 만든 아동학대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기존 복음신문 「정부와 사회가 만든 아동학대」 기사 사진 · 사진 복음신문 제공 · 복음신문 보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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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

하나님 가르침대로 어린이를 귀히 여기는 나라 돼야 할 때 (눅 9:48)

지난 8일 인천 송도신도시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네 살 여자아이를 나가떨어지도록 얼굴을 내려치는 폐쇄회로(CC) TV 영상이 13일 공개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보육교사가 급식판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김치를 남긴 아이에게 억지로 김치를 먹이다 구토하자 폭행한 것이다.

이 폭행 교사는 1급 자격증에, 어린이집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평가 인증에서 95.6점의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이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이번 폭력은 처음”이라고 밝혔지만 폭력을 당한 아이의 행동은 처음 당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바닥에 쓰러지자 울거나 멍해 있는게 아니라 떨어진 음식물을 주워담고, 이를 본 원생 10여명도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이곳만이 아니었다. 19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어린이집에서도 아동학대 사건이 드러났다. 이 곳 보육교사는 원생 9∼10명의 머리와 얼굴 등을 주먹 등으로 때리고 밀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19일 원주에서도 보육교사가 상습적으로 아이들의 머리와 얼굴을 폭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는 등 인천 어린이집 사건 이후 불과 사흘(16~18) 동안만 155건의 유사 피해사례가 접수됐다.

급기야 지난 19일 어린이집 아동 학대에 분노한 엄마들이 가슴에 녹색 리본을 달고 거리로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김무성 여당 대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최고의 충격”이라며 대책에 부심하고, 야당도 ‘우리는 말 못하는 아기다’ 대책위원회를 꾸려 개선 입법에 나섰다.

국회 복지위원회는 28일 보건복지부 장관을 불러 ‘어린이집 아동학대’ 긴급 현안보고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보육교사의 아동학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천 어린이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며 아이를 머리 높이까지 들었다 바닥에 내팽개치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장면이 공개된 것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이 어린이집의 평가점수도 94.33점의 높은 점수였다.

불과 2달 전인 지난해 11월엔 서울 관악구의 어린이집에서 생후 11개월 된 영아가 잠을 자다 숨진 사건까지 발생했었다. 사인은 저산소성뇌손상이었는데 인천 사건이 불거지면서 경찰은 보육교사가 두꺼운 이불 사이로 영아를 넣어 눕힌 뒤 다리로 누르는 학대 영상을 확보하고 재수사에 나섰다.

같은 달 인천 서구의 어린이집에선 교사가 아동의 손목을 노끈으로 묶은 사건이 발생하는 등 지난해 어린이집 아동학대만 265건으로 매해 증가추세에 있다.

왜 어린이집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을 뿐 아니라 증가하는 것일까. 질적 보완 없는 양적 팽창 때문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무상복지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시작된 ‘0~5세 무상보육 전면실시’ 이후 전업주부들이 가정에서 키우던 아이들까지 어린이집으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돈을 타내기 위해 어린이집 사업에 마구잡이로 뛰어든 민간업자들까지 어린이집은 현재 4만3770곳(2013년)에 이른다.

더우기 자질이 검증 안된 보육교사가 양산되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학점은행제나 양성원을 통해 자격증을 딸 수 있는데다 보육교사 신청자의 95% 이상이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응시자의 대부분이 합격하고 있다.

2011년부터 작년 8월까지 3년 남짓 새 45만명이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남발되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보육료 지원은 무상보육이란 포퓰리즘이 만든 막대한 수요를 충족하기에도 벅찬 나머지 시설, 교육, 처우 등 인프라 확충을 도외시했다. 하루 10시간씩 일하며 평균 144만원을 받는 교사에게 질적 우수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현실은 더 열악해 많은 경우 70~100만원 사이의 보수를 받는다. 지금의 획일화된 정책으로는 원장들이 아동을 늘릴 생각만 할 뿐 교사 처우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작년 정부는 무상보육을 위해 10조원의 천문학적 돈을 투입했지만 보육 여건의 개선이 빠진 양적 확대의 부작용을 불렀다.

모든 아동 학대의 심각성은 학대보다 더 무서운 정신적 후유증을 낳는다는데 있다. 인천 어린이집 학대 피해 아동의 부모는 맑고 명랑했던 아이가 대답도 안하고 기어다니거나 이유없이 어리광을 부리는 등 퇴행 현상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학대 아동이 그대로 자라면 더 무서운 사태를 낳는다. 2011년 10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뒤 8개월간 방안에 방치한 사건이 있었다. 이 아들은 평소 최고의 모범생이었지만 어머니가 “서울대 법대”를 강요하며 아들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잠을 재우지 않거나, 심지어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밥을 주지 않는 등으로 학대를 받으며 커왔다. 아동학대는 퇴행현상과 분리불안, 감정조절장애, 대인관계 어려움, 자존감 손상에 의한 소극적 행동 등 심리적 후유증을 남기고, 집중력결핍, 공격적 행동, 우울증, 다중인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비행, 범죄 등 정신병리로 이어질 수 있다. 아동 학대를 방치하면 건강한 사회와 국가의 미래에 큰 문제가 될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젠 고쳐야 한다. 먼저 정부는 아이들이 국가의 미래라는 점에서 지금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기껏 내놓는 처벌강화, CC TV확대, 평가인증제 강화 같은 사후약방문같은 대책이 아닌 근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어린이집 운영에 학부모들이 직접 참여할 길을 열고, 아동 1인당 보육료 어린이집 지원 같은 탁상행정식의 획일화된 정책을 개선하고, 교육제도를 포함한 자격 강화, 보육시설 확충 등 장기적이고 전방위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특히 이번을 계기로 아동 학대가 비단 어린이집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임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한해 발생하는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부모에 의해 저질러지고 지난해에만 22명의 아동이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아동이 폭행을 당해도 신고할 수 없고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어 겉으로 파악되는 아동학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신체 학대 외에 보이지 않는 학대까지 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2013년 한해 아동학대로 판정받은 1만231건 중 정서학대와 방임학대가 65.4%나 된다. 보이지 않는 학대는 지금도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특히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개별 인격체가 아닌 부모에 딸린 부속품처럼 인식하므로 아동 학대에 대한 기준이 내 아이에 대해선 지나치게 관대해왔다. 내 아이는 쉽게 때리고 밀치고 강요하는 환경이 아동학대가 사회에 쉽게 자리잡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성공’이 최우선 과제인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자유가 박탈된 채 공부를 강요받는 자체가 또다른 아동 학대라는 칼럼을 실었다. 

신문은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끊임없는 스트레스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 칼럼을 통해 “학생은 학교나 집에서 모두 권력에 복종하도록 강요당한다”며, “학업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증상과 자존감의 상처를 경험”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아동에 대한 강제 문화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발표대로 한국 아동의 정신건강 실태를 OECD 국가중 만족도, 행복도가 꼴찌로 만들고 있다.

한국의 현실에서 아이들이 부모가 짜놓은 일정대로 공부에 시달리며 반 로보트같은 삶을 시작하고, 반항하면 욕설과 손찌검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강제 문화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예수님은 어떤 귀한 어른보다도 아이들을 가장 소중하게 대하셨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따라서 우리 사회의 어린이가 꺽이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어른들이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 어떤 이해타산이나 계산도 없는 어린이는 순수하고 진실해야 통하는 하늘나라의 모형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쉽게 학대를 정당화하기에 우선해서 아이들에게서 배우고 아이들과 같지 않음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을 자신을 영접하는 것과 동일시하셨던 예수님처럼 아이들을 소중히 대할 때만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회와 국가의 미래가 있음을 명심할 때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눅 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