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 …
광복을 통해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과제 감당해야(눅 16:13, 마 7:17~20, 갈 5:1)
일제는 우리 민족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 시작했다. 지하의 광물을 캐내 가져가고, 국내 쌀 생산량의 50% 이상을 일본으로 실어갔다. 쌀만이 아니다. 면화, 누에, 동물가죽까지 닥치는 대로 가져갔다. 한국인의 소득에 대한 수탈을 늘리기 위해 1934년 개정한 소득세제도는 시행하자마자 전해보다 무려 3.5배나 격증한 조세수탈 수단이 됐다. 이것도 모자라 1939년부터는 총동원물자수용령을 내려 백주에 공공연히 물자를 약탈하는 공출제를 시행했다.
남은 양곡은 물론, 송진기름, 놋그릇, 숟가락까지 백주에 강탈해갔다. 한국인은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가며 광복의 그날만을 꿈속에서나마 그려야 했다. 물자만이 아니었다. 징용제도, 징병제도, 근로보국대제도, 근로동원제도, 여자정신대제도를 만들어 인력을 수탈했다.
1939년부터는 ‘모집’이라는 형식도 버리고 ‘국민징용령’을 내려 한국인 청년들을 강제로 잡아갔다. 146만 명이 농촌과 일터에서 강제로 끌려가 광산, 토목, 군수공장에서 노예노동을 해야 했다. 군사기밀과 관련된 강제노동을 한 경우엔 기밀유지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사가 끝난 후 집단학살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했다. 징병제로 20만 명의 한국 청년들을 전쟁터의 대포 앞에 세우기 위해 강제로 끌고 갔다. 20세의 꽃다운 처녀는 물론 12세의 어린이까지 ‘여자정신대 근무령’에 의해 수십만 명을 끌고 가 전선에 군대위안부로 내모는 천인공노할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러나 경제수탈과 인력수탈만이 아니었다. 일제는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혼까지 말살하려했다. 우리의 역사를 훼손하고, 바꾸고, 강제로 일본 천황을 섬기게 하고, 창씨개명으로 조상의 뿌리조차 없애려 했다. 한민족의 정체성까지 침탈하려던 민족말살정책은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악랄하고 무모한 전대미문의 수탈을 감행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민족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요절한 심훈의 ‘그날이 오면’은 일제치하의 우리 민족이 한결같이 품었을 애끓는 한이었다. 조국의 광복을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시인도 정말 그런 날이 실제로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죽어 갔을지 모른다. 꿈에서나마 그려야 했던 그날은, 그러나 꿈결처럼 오고야 말았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정인보작사 광복절노래)할 정도의 환희였고 감격이었다.
전혀 끝날것 같지 않았던 일제의 통치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지 며칠 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꿈같은 일이 기적처럼 온 것이다. 광복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이루어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해방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광복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광복’이란 단어가 “빛이 다시 돌아왔다”는 기독교 사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 4:16)” 성경은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표현하였고, 예수님 역시 그리스도인을 ‘세상의 빛’(마 5:14)이라고 하셨다. 광복은 우리 민족에게 비췬 최고의 크고 값진 ‘빛’이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이 광복을 주시면서 과제를 동시에 주셨다. 광복이 준 과제는 첫째, 한민족이 하나님의 사명 받은 백성으로 성숙되기 위한 숙제가 주어졌다. 과거에 기독교는 물질문명의 꽃을 피운 서방세계의 대표적 종교처럼 자리하고 우리에게 전파됐지만 근본적으로 기독교와 물질문명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물질문명은 기독교정신을 왜곡할 뿐이었고,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양극화의 기형적 세계상을 낳았다.
기독교는 물질문명과 정 반대의 입장에 선 정신문명이자 신령문명이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 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따라서 기독교가 신령문명의 제 꽃을 피우고 마지막 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가치를 중시하던 동양의 토양위에서 마지막 사명을 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우리 한민족이 그 사명을 다해야 한다.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빛이 돌아온 것처럼, 세계만방에 물질문명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아직 영적인 포로 상태에 있는 인류를 깨워야 할 사명이 한민족에게 있는 것이다.
둘째, 미완의 해방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민족은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으며 분단되고 말았다. 북쪽은 산업기반과 지하자원이 풍부한 우월한 조건에서 출발했고, 남한은 지하자원도 없고 과반이상의 산업시설과 가옥이 파괴된 폐허 위에서 시작했다.
북쪽은 기독교를 용납하지 않고, 대신 ‘주체사상’으로 유일 독재를 신격화했다. ‘주체사상’은 세계 10대종교의 반열에 랭크되고 있는 현실이다. 반대로 남한은 민주주의의 토양위에 기독교 부흥의 꽃을 피워 단기간에 세계 유례없는 기독교 강국이 되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선진 대열로 부상했고,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 되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7~20)”
오늘날의 한국은 하나님이 이루신 기적이며, 은혜의 표상임을 증명한다. 이제는 우리의 기독교의 능력과 사랑으로 북한 동족을 향할 때다. 북한 땅의 우리의 형제들이 자유는 물론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잃고 매일 허기와 병마로 죽지 못해 연명하고 있다.
유엔 산하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2018 세계인도주의지원 보고서’에서 북한 주민 1800만 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과 대북제재로 식량, 의료 상황이 올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고립무원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는 북한 주민에게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나서서 하나님께 동족들을 위해 간구해야 한다. 교회마다 통일헌금을 제정하고, 급증하는 새터민의 자활을 돕고, 통일 교육에 나서는 등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큰 물결로 번져 북한 동포의 기적같은 해방을 만드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게 해야 할 사명이 한국 교회에 있다.
셋째, 광복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대를 이어 끊이지 않아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민족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방을 주시면서, 영원한 규례로 해방절기를 기념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출 12:17)” 해방을 주신 우리 민족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때 통일된 동방의 한나라를 통해 땅 끝까지 이르는 증인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명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는 한민족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광복을 기념하는 절기를 지켜가야 할 책무가 있다.
어느 때보다 큰 과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놓여 있는 오늘날 모든 위협요소와 갈등을 이길 힘 역시 민족적 해방을 주셨던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을 때다. 민족의 장래를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 뜻을 쫓을 때 이스라엘 민족의 연단과정이 그러했듯 지금의 연단 과정을 통과해 우리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완성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민족이 통일된 동방의 한나라를 이룩하고, 진정한 영적 자유를 알리는 신령한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계앞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