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의 통일은 미·중·일·러 등 주변 강대국을 우리의 통일외교의 틀로 끌어 들여야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만일의 급변사태에는 중국이 통일한국의 협조세력이 되게 해야 한다.(사진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북한, 통일 임박론 자주 거론 …
하나님 의지한 주도적 통일외교와 구국기도에 올인해야 할 때 (빌 4: 13, 예애 2: 11)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 계층의 탈북이 갑자기 늘어나기 때문에 북한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단순논리는 엄연히 틀린 생각이다. 이 같은 단순한 생각 때문에 쉽게 지금의 심각한 현실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곤 한다.
왜 지금이 정말 위험한 상황인지를 속을 파고들어서 풀어보자. 21일 통일부가 내놓은 ‘최근 탈북 동향 및 북한 태도 평가전망’에 따르면 최근 탈북자일수록 ‘경제적 이유’로 탈북하는 경우는 감소하고 비경제적 사유의 탈북자 비율은 증가추세다. 비경제적 사유는 ‘자유 동경’, ‘정치체제 불만’, ‘북한 당국 감시와 위협’, ‘가족상봉’, ‘아는 사람 혹은 브로커 권유’ 등이었다. 탈북하는 계층도 소득·생활수준이 보통·중산층 이상이라고 자평하는 계층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탈북자 가운데 소득이 ‘충분했다’, ‘보통이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2001년 이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소득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감소추세다. 결국 최근에는 자유 동경, 체제 불만 등의 이유로 중산층 이상이 북한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북하는 경향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북한의 통제와 숙청 등 공포정치에도 불구하고 장마당 경제가 보편화되고 외부 접촉이 증대되면서 점차 많은 북한 주민들이 북한 체제의 실상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태영호 영국 주재 공사의 탈북은 체제 불만, 자유 동경, 미래 불안을 최고위층까지 수긍하고 있음을 보여 준 단적인 예이다.
데이비스의 ‘소유-억압’ 이론은 미국 남북 전쟁, 1960년대의 흑인 폭동,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까지 총망라하고 그 공통점에서 혁명이 왜 발생하는지의 논거를 제시한다. 데이비스의 이론에 따르면 혁명은 경제적으로 생활 전반이 호전되다가 갑자기 악화 되는 시점에 공통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 주민은 장마당을 통해 생활의 호전과 체제에 대한 극한의 불안이라는 이율배반적 요소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이 북한이 더 위험한 이유이다.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이에 더해 북한 정권은 통치자금 수혈이 막혀 엘리트계층을 더욱 쥐어짜고 있고 그럴수록 엘리트 계층의 불안과 불만이 더 확산되면서 주민 통제와 관리 체제마저 더욱 허약해지는 구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급변사태는 갑자기 발생한다. 전쟁도 갑자기 발생한다.
체제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될 때 북한이 생각하는 최후의 해결 방법이 전쟁이다. 매일 일상에 젖어있는 우리는 무감각하지만 이미 북한은 미사일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자적 도발과 실험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하루 앞을 모르는 사실상의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22일부터 한미연합훈련인 을지연습이 시작되자 북한은 “핵전쟁 도발행위”라며 “우리 식의 핵선제 타격을 퍼부어 도발의 아성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위협이며 잦은 도발 위협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드는 북한의 기만술일 뿐이다.
기만술 뒤에는 진짜 전쟁준비가 숨어 있다. 지금도 북한은 승리를 위한 일전에 대비한 실험을 쉬지 않고 있다. 머지않아 북한이 다양한 핵공격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남한이 북한 붕괴론을 거론하듯 북한은 최근 통일 임박론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6일 정당 단체 공동성명에서 “령마루가 가까워 올수록 길은 더 가파롭고 바람은 더욱 세찬 법이다. 오늘 조선반도 정세가 전례 없이 준엄하고 내외 반통일 세력의 도전이 최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통일의 결승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물론 여기서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은 적화통일이고 무력통일이다. 북한도 체제 위기와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가는 지금의 상황이 무엇인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지금 남북한 양 쪽에서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비슷한 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는 현실에 살고 있다.
이제 우리가 갈 길은 무엇일까. 첫째, 전쟁 방지가 최우선이다. 전쟁방지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국제사회와의 공조이다. 북한의 급변사태가 자동적으로 통일에 이르지 않는다. 통일 한국이 주변 강대국인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미국에 한 치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북한 교역량의 90%를 차지하며 북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최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 5월 오바마 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무기수출 금수조치를 해제했다. 남중국해의 갈등에 미국이 직접 개입해 미국 중심의 안보 네트워크에 베트남을 편입시킨 것이다. 미국 상무부도 북한을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지정했다. 제3국의 외환거래까지 막는 이 조치는 북한의 최대 교역국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이 같은 대중국 견제가 확대될수록 중국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올라간다. 중국이 말로는 북한에 대한 안보리 제재에 철저히 동참한다면서도 북한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최근엔 한국 사드 배치까지 결정 되 중국이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됐다. 사드를 배치해 중국의 북한 견제의지를 꺾으므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북한에 핵·미사일로 남한을 공격할 기회를 주는 것은 최고로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우리 정부와는 거리를 두는 대신 대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드 갈등이 동북아의 기존 역학 구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가장 효율적으로 북한을 제재하는 방법은 중국을 움직이는 것이다.
둘째,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해 북한은 우리보다 국민총소득이 45배 작았다. 대회교역량은 154배나 작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며 출구가 없는 북한의 현실에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군사적 도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그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 독일 통일 때 동서독의 격차는 4배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주민이 남북의 격차와 독재의 실상을 알아가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열어주는 것이다.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북한 내부의 변화가 남북의 통일을 만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이와 함께 지금 한국이 할 일은 중국과 미국 두 강대국의 파워게임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독자적인 통일외교를 동북아의 최이슈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독일 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대외적으로 소위 ‘2+4회담(서독, 동독+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만들어낸 통일조약이다. 통일 독일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불신을 씻지 않았다면, 아직도 독일은 분단국가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한반도 통일도 마찬가지이다. 미·중·일·러 등 주변 강대국을 우리의 통일외교의 틀로 끌어들여야 한다. 나아가 남북통일을 전 세계의 공통 이슈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다.
특히 만일의 급변사태에도 중국이 통일한국의 협조세력이 되게 해야 한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더욱 팔짱만 끼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하루 빨리 나서야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 13)
셋째, 하나님께 생명 내댄 구국기도를 할 때다. 나라가 있어야 나와 내 가족이 있다.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성장과 축복에 초점을 두는 것은 편안하고 안일한 신앙 태도이다. 성경은 닥칠 환란을 준비하고 깨어있는 신앙을 주문한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이미 내 동포인 북한 주민은 피폐 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고 북한 정권은 점차 극단적 선택의 순간으로 다가서고 있고 한국은 위협의 가장 큰 당사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한국교회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뢰하는 생명 내 댄 구국기도에 나서기를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애 2: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