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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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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 막을 해법 어디에?

GOSPE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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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경쟁과 생존 불안 막을 호혜의 공동체 복원 필요 …

생육번성의 축복과 사랑의 결실로 하나님 나라 실현하는 한국 돼야 (창 1:28, 창 26:4, 겔 5:31,32)

더 기막힌 일은 정부가 코딱지만큼 할애하던 난임시술비 지원(올해 790억) 사업마저 지난해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한 점이다. 국회 인구특위는 최근 6개월간 회의조차 열지 않았다. 과연 정부와 정치권의 저출산 대책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못 쓴다’는 직장인 비율은 54%로 여전히 절반이 넘고 육아, 출산으로 인해 인사 차별을 받았다는 하소연도 이어진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환경을 방치하고 대체 어디에 예산을 쓰고 있는 것인지 한심스럽다. 저출산 극복 예산을 실효적 집행을 위해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

둘째, 지나친 경쟁 중심의 사회와 교육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지나친 경쟁 사회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서열로 줄을 세우고, 선택받은 몇명이 모두를 갖고, 승자들은 이권 카르텔로 ‘그들만의 리그’를 영속시키려는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경쟁이 심화되고 수단방법을 가지지 않고 불법, 편법과 남을 밟고라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다. 이 같은 잘못된 경쟁 문화가 교육부터 경쟁적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지나친 경쟁으로 육아와 교육에 소득의 많은 부분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 사회의 이런 오래된 관행이 출산기피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 가족사회학회 회장인 저명 인구학자 야마다 일본 주오대 교수는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세미나에서 한국의 저출산의 원인으로 ‘경쟁’을 꼽았다.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사회에서 배제돼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부모들이 격렬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우리 부모들은 다른 아이에게 뒤지지 않도록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남보다 잘 키워야 한다는 욕망과 이를 위한 과대한 양육비, 교육비는 출산기피의 원인이 된다. 경쟁에 대한 이 같은 진단은 한국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직장에서도 경쟁에서 뒤쳐질까봐 아이를 못낳고 육아휴직을 못쓴다. 남보다 좋은 직장, 좋은 집에서 못살면 결혼도 쉽지 않다. 모든걸 갖춘 뒤 결혼하려다 보니 결혼 연령이 자꾸 늦어지고 출산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여자의 신체는 35세 이후에는 임신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특성이 있어서 저출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도 경쟁의 산물이다. 인구과밀에서 빚어지는 지나친 경쟁, 취업난, 높은 집값이 우리나라 초저출산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인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머스 맬서스는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이 심해지고 이는 생존경쟁을 위한 저출산으로 연결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한국의 경쟁 문화가 바로 저출산의 원인인 것이다.

성적순 경쟁이 아니라 저마다의 특성과 자질을 키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쟁적 교육으로 혼자만 이기려는 이기적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상호 호혜, 협동, 상생의 가치를 가르치고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길을 가르쳐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할 때 시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체험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성적을 매기지 않고 사회성, 창의성, 발달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만 하는 독일 교육.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르치고 대입 자격시험의 관건이 독서인 프랑스의 교육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도 바뀌어야 한다. 각자의 개성과 삶의 방식이 존중받는 사회, 정당한 경쟁을 저해하고 남의 분량을 빼앗는 독식과 카르텔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나눔과 협동이 각광 받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세째, 새로운 가족과 공동체의 역할이 살아나야 한다. 전통적인 높은 가족 역할 부담의 반작용으로 발생한 한국의 지나친 개인주의화에 저출산의 원인이 있다.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별화된 사람들이 어떤 제약도 없이 즐기는 문화와 인프라로 굳이 결혼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식사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해결이 가능하고, 빨래는 세탁기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고, 치안도 안정되어 있어 혼자 사는 것에 불편함이 없다.

인터넷 덕에 타인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사는데 지장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에 따라 감정 소모, 정서적 소모를 하면서까지 타인과 연애, 결혼을 해야 할 당위성,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연애, 결혼을 위한 비용 대신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일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결혼과 출산율은 점차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개별화된 사람들이 별 거리낌 없이 성을 사거나 찰나적 연애를 쉽게 하고 애완동물로 외로움을 달래거나, 게임 등을 취미로 하는 등 자유롭게 혼자 지내는걸 즐기게 되면서 정서적, 감정적, 금전적 소비 대상이 달라지고 힘들게 연애나 결혼을 해야 될 필요성이 옅어지게 되었다. 전통적 성 역할 거부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여성의 경제적 눈높이가 높아져 상대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결혼 ‘구애’받는 정도도 감소했다.

경제 양극화로 소득격차의 고착화와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계층간 이동 사다리가 없어진 대신 고용불안, 높은 교육비, 부동산 폭등을 감당할 수 없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상이 늘어나고 그만큼 출산에 대한 책임과 리스크가 늘어나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것도 저출산의 원인이다. 생활비 증가로 출산과 육아를 위한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이나 과도한 노동도 저출산의 원인이다. 이 같은 사회 구조와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은 혼자가 아닌 공동체의 역할이 살아날 때 가능하다. 양육에 대한 불안을 없앨 공동 육아 개념의 도입으로 사라진 공동체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관계와 소속감을 높이는 가족의 경험이 사회로 이어져 결혼과 출산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제는 권위적, 전통적 가족과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돕고 의지하는 가족과 공동체로 전환돼야 한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은 현재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사상 최악으로 추락시킨 원인이 되었다. 이대로면 경제 위기를 넘어 사회 안전 시스템의 붕괴와 국가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을 ‘생육번성’으로 설정하시고 실제로 지속적으로 ‘생육번성’을 명령하셨다. 인류를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 때 하나님은 가장 먼저 생육번성의 복을 주시고 인류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아담 때만이 아니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해 인류를 물로 심판하실 때 남기신 노아와 자손들에게도 다시 생육번성의 복을 주셨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창 9:1)”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셨을 때도 생육번성의 복을 주셨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 22:17)”

생육번성의 축복은 이삭과 야곱으로 대대로 이어진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4)” 생육번성은 복의 근원인 것이다.

땅이 쓸모 있어지고 좋아지는 것은 사람이 번성할 때 가능하다. 하나님은 빈 땅과 산에도 말씀하신다. “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을 성읍들에 거주하게 하며 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겔 36:10,11)”

땅이 싸움의 원인이 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오랜 전쟁을 보며 우리나라는 복에 겨운 고민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살 땅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구가 없어서 국가가 소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스스로 차버리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복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으로 비유할 만큼 신성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결국 결혼으로 인한 생육과 번성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자 피조물의 신성한 의무이다. 결혼과 하나님 나라는 모두 사랑으로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결혼과 생육번성으로 가족과 사회를 사랑이 편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교회와 우리 기독교인이 만들어가야 할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