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위원회 출범, 한국에도 초청 단순치 않아 …
하나님은 힘과 권력에 의한 통치 불의로 규정 (합2:5~10, 시 146:3-5, 시 58:1,2)
스위스 다보스에서 22일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평화위원회’ 출범 서명식을 가졌다.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서명식으로 헌장이 발효돼 공식 국제기구가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범 서명식에서 “이 기구가 유엔에 필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로 향하기 전인 20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평화위원회가 유엔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은 그동안 유용하지 않았다.”면서 “유엔은 내가 끝낸 전쟁 중 하나라도 끝냈어야 했다”며 자신이 8개의 전쟁을 끝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트럼프의 말대로라면 유엔과 대등하거나 실효적으로 더 유용한 세계 평화를 위한 대표적 국제기구의 출현이다.
그러나 속을 뜯어보면 세계 평화와는 아무 상관없는, 우려가 큰 ‘신제국주의 우산’의 출현이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 심야 폭격을 서슴치 않는 러시아, 친러시아 독재 국가 벨라루스, 가자지구를 무덤으로 만든 이스라엘이 평화위원회에 가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위에 59개국이 서명했다고 밝혔으나 AP 통신 등 외신들은 실제로 행사에 참석한 정상, 외교관, 고위 관리들은 미국을 포함해 19개국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바레인, 모로코, 파키스탄 등 주로 중동, 아시아, 남미 지역 국가들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미국의 우방국들은 대부분 거절하거나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혀하는데 거부감을 갖고 있고, 유엔을 대체하려 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정치적 장치인 점도 우려스럽지만 그 목적보다 훨씬 위험하다.
평화위원회는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20개 항으로 구성된 가자지구 휴전 계획과 함께 제시된 가자 재건을 감독하기 위해 구상된 기구이다. 이 계획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지지를 받은 후 지난 10월 10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에 이르자 국제기구 성격으로 크게 확대됐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비밀리에 조율해 온 이른바 ‘28개 평화구상’ 합의가 평화위원회의 확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합의 후 공개된 이 러·우 평화구상은 말은 평화지만 강자의 편에 선 국제정치적 거래이며 힘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냉엄함을 알리는 선언이다.
러시아의 일부 점령지는 비무장 완충지대로 전환되지만, 크림반도와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 핵심 지역은 러시아 영토로 인정된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영구 비가입을 헌법에 명기해야 하며, 병력 제한과 함께 서방군의 장기 주둔, 훈련 역시 금지된다. 우크라이나 주권을 무시한 것은 물론 영토·안보·미래 전략의 포기를 강요하는, 100년 전 패전국에 가해지는 조약의 형식을 닮았다. 국제법이 금지하는 무력 점령을 인정하는 결과이며, 러시아는 점령 성과의 국제 승인, 제재 해제, G8 복귀, 전쟁범죄 책임의 사면 등의 혜택을 얻는다.
힘에 의한 국제질서를 알리는 새로운 프로토타입인 셈인 이 평화구상은 종전체제 관리기구인 ‘평화위원회’의 의장을 트럼프로 명기했다. 유례가 없는, 특정 국가 지도자를 국제 평화체제의 최종 보증자로 확정하고, 협정ㆍ이행ㆍ감시ㆍ위반 판단·제재 발동 권한까지 쥔 자리다.
이번 다보스에서 공식 발족한 평화위원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트럼프는 종신 의장의 지위도 얻었다. 태생적으로 공정한 세계 평화의 중재 보증자가 될 수 없을뿐 아니라 트럼프라는 일 개인이 사유화하고, 자신의 국제정치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악용할 수 있는 국제기구인 셈이다. 트럼프는 평화위원회를 통해 가자지구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구상을 펼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난 5월부터 가자인도주의재단(GHF)를 설립해 유엔난민구호기구(UNRWA)의 활동을 막고 배급품 유입을 철저히 통제해 가자 주민의 기근을 악화시키고 배급을 받으러 몰려온 주민들에게 총격 사살까지 감행했다. 지난 8월 유엔 기구와 비영리단체로 구성된 통합식량안보단계(IPC)는 가자지구 주민의 3분의 1인 64만1,000명이 기근 상태에 놓인 것으로 추정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 전쟁으로 7만명 이상(25.11.28기준)이 사망했으며 어린미만 1만8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지난 9월 유엔 산하 조사위원회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민간 인프라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75%에 이르는 통제 지역을 확보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이것을 점령지로 생각한다. 실제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소속 점령지국제조사위원회(UNIIP)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는 “미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영구적인 지배를 확립하려 하는 의도를 보여왔다”고 적시했다. 미국은 평화위원회 서명식에서 ‘새로운 가자(New Gaza)’ 건설 계획을 담은 슬라이드를 상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지중해를 따라 마천루가 가득 들어선 가자지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지난해 3월 발표한 ‘리비에라(해양 휴양지)’ 구상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부동산을 잘 알고 있고 부동산의 전부는 위치다. 바다에 위치한 (가자지구를) 보라. 멋진 소유지를 보라”며 마치 부동산 사업가가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인구의 3분의 1이 기아 상태에 처했고, 집과 시설이 거의 파괴돼 잘 곳마저 없이 여전히 고통 속에 사는 가자지구 주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누구를 위한 평화고 개발인가. 무력으로 삶과 삶의 터전을 무참히 짓밟고 식민지보다 더한 영구 지배지를 만들어 새로운 가자 건설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유엔의 대안’이라고 출범하고 ‘공식 국제기구’라고 선언한 평화위원회의 모습인가. 가자 휴전 후에도 이스라엘은 주민 학살에 대해 어떤 경고도 하지 않은 채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를 상대로 거짓 ‘평화’, ‘휴전’의 눈속임을 한 셈이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0일 휴전 후 올해 1월 20일까지 이스라엘 공격으로 1,760명의 사상자(사망 466명)가 또 발생했다. 이를 눈감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평화위원회에 참여시켰다.
세계는 규범을 잃었다. 힘의 논리가 보편적 가치보다 우선인 시대를 맞고 있다. 강자의 편에 선 졸속적 평화는 계속 약자의 희생을 낳고 있고 휴전은 위태롭다. 국제외교 측면에선 이해관계 중심의 비공식적 거래가 국제 규범적 외교 질서를 대체하고 있다.
유엔(UN) 헌장을 기반으로 한 원칙과 합의의 틀 속에서 국가들을 한데 묶었던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가 붕괴하고 있다. 첨단의 21세기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20세기 초로 회귀하고 있다. 여기엔 기존 국제기구에 반감을 갖고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포퓰리즘적 정치 문화가 자리한다.
지도자 개인에게 집중된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외교로 국제 관계는 모래 위 성처럼 더욱 위태로워졌다. 이 같은 새로운 메커니즘을 주도하는 것이 세계의 리더 국가 미국이고, 미국의 대통령이다. 이 새로운 흐름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국제 환경 변화에 어느 나라보다 민감한 우리나라에 닥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게도 평화위원회에 초청했다. 이것은 한번 가고 오고 마는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동맹을 다루는 방식과 연계돼 있다.

